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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희 Sep 20. 2020

당당한 자폐 9

진단

        내 아이 상윤이는 남자아이이고 지난 2월에 12세가 되어서, 진단은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이지만, Regional Center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진단에 대한 글이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 보라고 했던 분은 문화센터 선생님이 셨다. 그 당시 아이가 2살이 막 지났을 때쯤이 아니었나 싶다. 이유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단체 활동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8개월이 지나면 다른 아이들이 다 앉으면 뭔가 나도 앉아있고, 뛰어다니면 나도 뛰어다녀야 할 것 같은 눈치가 생기는데, 상윤이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나도 느낀 바가 있어, 그 당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아이를 데리고 검사를 해 볼 요량이었는데, 그 얘기를 듣던 엄마는 “너는 언제까지 니 아이를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길 거냐? 도대체 뭐가 그렇게 큰 문제란 말이냐!”라고 화를 냈고 나는 일단 검사를 보류했다. 이혼을 한 데다가 엄마한테 늘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러 가는 죄인인 나로서는 육아에 있어서 엄마의 의견에 크게 반하는 의견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 3-4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날 교회 선생님이 다른 소아정신과 선생님으로 일하는 분과 함께 상윤이는 검사를 받아보았으면 좋겠다면서 내가 살던 주변 병원에 어디에 가서 진단을 받는 게 좋은 지를 알려주셨다. 이 때는 엄마도 그다지 나를 비난하지 못했으며, 모든 검사가 그렇듯, 얼마간의 대기 시간을 거쳐 진단을 받고 놀이치료와 언어치료를 시작한 것은 상윤이가 30개월 때쯤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처음에 진단을 내릴 때 자폐라는 용어를 명확하게 쓰지 않는다. 처음에는 보통 ‘애착장애’ 일지도 모르고, 발달이 좀 느릴 수도 있고, 자폐 스펙트럼 중 어느 부분일 수도 있는데, 나이가 어리고 아직 언어 능력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서 정확한 검사를 하기 어려우니 교육을 시키면서 좀 두고 보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진단 시 들었던 이야기이다. 



        정말 그 ‘애착장애’ 아이디어는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한동안 그 ‘애착장애’라는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난을 감수했어야 하는지 모른다. “네가 그렇게 애를 족쇄처럼 여기니까 애가 저렇게 된 거 아니냐, 네가 문제다”라는 얘기를 엄마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었다. 그 당시 나는 정말 내 아이를 더 사랑하려고 노력해 보았는데, 남는 것은 말로 형용할 수밖에 없는 깊은 우울감뿐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더 이상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것이 나의 성공적이지 못한 결혼 생활 때문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일단 그 아이의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밤에 자주 일어나야 하는 것도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샤워를 할 때도,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마음이 편할 수가 없는 것이 힘들었다. 뜨거운 커피를 뜨겁게 마신 게 언제였는지, 차가운 커피를 차갑게 마신 게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았고, 조용히 앉아서 나를 돌아봤던 시간은 모두 사라졌다.  



        어떤 사람들은 보면 아이를 맡기고 잘 놀러도 다니고 여행도 다닌다. 나의 문제는 누구에게 아이를 맡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가 전적으로 아이를 봐주셨지만, “사랑한다”는 본인의 말과는 별개로 얼마나 아이를 보는 것을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일하는 시간도 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결혼도 실패하고 아이도 그다지 반기지 않는 것으로 이미 죄인인 내가 일하느라 아이를 맡기는 것도 너무나 큰 죄인데, 내가 재미있게 놀아보겠다고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나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사람을 구해 놀러를 간다 한들 단 1분도 마음 편하게 놀 수가 없었다. 모든 나의 재미는 반감되었고, 나는 늘 죄인처럼 전전긍긍 살아야 했다.  



        내 삶은 아이가 없을 때도 너무나 소중했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누구를 만나거나, 아이가 생겨서 의미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없고, 결혼을 하기 전에도 내 삶은 그 자체로도 너무 찬란했고, 매 순간이 치열했다. 나는 하루하루 내일이 없어도 후회 없이 살고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남으로 인해서 내일이 없을 것처럼 살 수가 없어졌고 이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굴욕이었다. 아이를 지켜야 하고 키워야 했기 때문에, 거칠 것 없던 내 삶이 정말 제대로 찌질해졌다.  



        내 삶의 자세를 송두리째 바꿔야 하고,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하고, 나의 모든 즐거움이 반감된 삶을 받아들이는 데는 나도 시간이 걸렸다. 더 이상 나는 만사에 쿨 할 수가 없었으며, 전전긍긍 눈치를 볼 곳이 훨씬 늘었다. 이런 삶이 뭐가 그렇게 좋기만 했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내 아이를 그렇게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다른 엄마들보다는 아이에 대한 기대가 적었다. 그것은 20대부터 경제적으로 부모님을 부양하면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빠 대신 엄마의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어야 했던 나의 경험상, 나는 내 아이에게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일찌감치 이 아이가 20살이 되는 순간, 내 아들은 그의 친구와, 나는 내 친구들과 인생을 살고 서로 간섭하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가끔 딸을 원하는 사람 중에 평생 친구가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딸은 본인의 남자 친구와 자신은 자신의 배우자와 행복한 것이 정상적이고 건전한 삶이다.  



        어쨌거나 그 말도 안 되는 ‘애착장애’ 언급 때문에 한 1년 정도는 나도 마음고생을 좀 했다. 그 이후 세브란스에 가서 다시 진단을 받으며 (이 과정도 유쾌하지는 않았다), 자폐는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고 애착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 무슨 죄 사함을 받은 기분이었다. 사실 진단을 받을 때 나는 시댁이 없었기 망정이지, 시댁이 있는 여자들은 얼마나 더 많은 비난을 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정신이 다 아찔하다. 대한민국의 ‘애착장애’ 진단에는 절대 아버지와의 애착은 언급하지 않는다. 사실 애착은 반드시 어머니와 형성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애착은 반드시 어머니와 형성해야 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내 넋두리가 좀 길어졌지만,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의 진단은 모호하게 시작한다는 것이다. 의료진은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 또 부모들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모호하게 진단명을 얘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이 그렇게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단이 모호하면, 부모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지 계속 잘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처럼 전혀 관련도 없이 “나는 왜 더 아이를 사랑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의사 선생님이 “요새는 자폐도 스펙트럼이라고 보고 있어서..”라고 말했을 때 그 스펙트럼은 당연히 일반인으로부터 자폐인에게로 연결되는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했는데,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이 스펙트럼에 대해서는 아직 통일된 의견이 없으며 혹자는 이를 자폐인들 내에서의 스펙트럼으로 생각하고, 혹자는 자폐인과 일반인 모두 사이의 스펙트럼으로 생각하며, 나머지는 자폐장애 내에서의 다양한 다른 증상들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반인인 나는 처음에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정말 장애인지, 아닌지도 모호했으며, 발달장애와 자폐의 개념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발달 장애는 자폐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발달장애 안에 자폐나 ADHD, 지적 장애, 다운 신드롬 등이 포함되는데, 대한민국은 자폐라는 단어가 너무 금기시되는 단어라서 인지, 의사 선생님들은 이를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폐라는 장애에 대한 태도는 국가마다 조금 다른데, 무조건 학급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가만히 있는 학생이 최고인 대한민국은, 돌발행동이 많고 지시 따르기가 잘 되지 않는 자폐는 가장 혐오되는 장애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중국의 경우 지적장애보다는 자폐를 선호한다. 아마 중국도 한국 못지않게 공부를 못하면 사람은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국가인 것 같다. 미국은 자폐에 대한 태도가 동양만큼 부정적이지는 않은데,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자폐 진단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경미한 자폐도 자폐 진단이 많이 나오고, 이러한 진단을 받은 사람들 중, 사회적을 성공을 거둔 예도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자폐는 장애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절망적인 장애는 아니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조금 깔려 있다.  



        나는 미국의 모든 시스템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현재의 자폐 진단 과정도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소아과 의사가 발달 장애에 대해 더 지식도 많고 초기 진단을 제대로 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결정되면 Regional Center 같은 기관에서 이 장애가 무엇인지, 어떤 치료가 적절한지, 그리고 어떤 도움을 받아야 되는지에 대해서, 부모를 교육시켜준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진단이 애매하기 때문에 부모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본인이 믿고 싶은데로 믿는다. 그리고 부모가 알아서 교육방법을 찾아다니고, 치료법을 찾아 헤맨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많은 치료실은 대부분 개인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이러한 치료실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법을 쓰고 있는 곳인지를 알기도 쉽지 않다. 장애 신청도 부모가 결정한다. 아마 나도 통합 어린이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장애 신청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가 되는 과정은 쉽지가 않다. 처음에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는 과정은 기쁨과 설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낯설고 혼란스러운 과정이다. 이럴 때 아이가 장애가 있다면, 이 과정은 더욱더 혼란스럽고, 슬프고, 두려울 수 있다. 정확한 진단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시스템, 명확한 설명, 그리고 친절한 진단 후 안내 시스템이 잘 정착되어 이러한 부모들의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어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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