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어있다 나는

아저씨냐 요즘애들이냐 나는 둘 다 아닌데 말이다

by Dean

나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날,

굴렁쇠 소년이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을 가로지르던 그 시간에 태어났다.


부모님은 지금도 그 이야기를 자주 꺼내신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아줌마 때문에 개막식을 못 봤다”라고 투덜댔다는 이야기.

그리고 확인된 바는 없지만 KBS에서 올림픽돌이가 태어났다고 전화도 왔었다는 이야기도 하시지만

아마 이건 뻥일 것 같다.

그만큼 '넌 특별한 아이야'라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시는 말씀이셨을 것이다.


대학 시절, 선배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1학년 땐 놀아도 돼'

'군대 갔다 와서 공부해도 안 늦어'

'학점은 3점만 넘으면 돼'


그들은 3점 정도 학점과 특별하지 않은 스펙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턱턱 합격하였다.

그래서 나도 믿었다. 낮에는 수업을 빼먹고, 밤엔 술자리에 나갔다.

결국 출석 미달로 학사경고를 받았다. (아직도 부모님은 모른다.)

재수까지 한 나에 대해 그간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해주듯이 놀았다.

학점이야 뭐 군대 갔다 와서 메꾸면 되니까.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학교는 내가 신입생일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이제 신입생들은 놀지 않았다. 모두 눈빛이 달랐다.

'요새 애들 공부 열심히 하네'하며 나는 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선배들의 낭만 속에 머물렀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도 우리는 서울 공대니까’라는 근거 없는 위안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내가 처음 취업 준비를 시작한 2014년, 갑작스럽게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다.

놀며 학교 다니던 선배들처럼 준비해서는 그들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 갈 수가 없었다.

영어 시험 점수 커트라인은 더 올라가고, 더 많은 경험을 요구하고, 자기소개서는 더욱 어려워졌다.

성격, 성장환경을 묻는 게 아니라 회사와 지원하는 직무에 맞는 경험과 경력을 원했다.

선배들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들겨 맞듯 사회로 겨우 나올 수 있었다.


2025년 지금, 나는 서른일곱 살이다.

회사에선 후배와 선배 사이에서 허리 역할을 해야 하고,

밖에선 결혼, 집, 재산 같은 사회적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그들 눈엔 이미 ‘아저씨’이지만, 또 다른 세대 눈엔 여전히 ‘요즘 애’다.

나는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있다.


지금의 나는 '요즘 애'와 '아저씨'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내야 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생각과 경험일 수도 있다.

각자의 삶의 속도와 방향이 모두 다르니 '88년생들은 다 이래'라고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겪으며 자라온 우리 세대는 분명히 '끼어있다.'


30대 후반이지만 미혼도 많다. 그러므로 아직 아저씨는 아직 아니지 않을까.

외모도 각자 나름의 관리로 꽤 젊어 보인다.

그런데 '요즘 애'도 아니다.


그래서 갈팡질팡한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느 템포에 맞춰야 하는가와 같은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박진영의 노래 중에 'Half Time'이라는 곡이 있다.

박진영이 40대가 되면서 인생의 전반전이 끝났음을 느끼고 이를 되돌아보면서 쓴 가사라고 했다.

이 곡의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갤럭시를 똑바로 쓰려면 삼성에게 물어보고 아이폰을 똑바로 쓰려면 애플에게 물어보듯이,

세상을 똑바로 살려면 세상 만든 사람을 찾아 물어보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그동안 내가 뭘 안다고 떠들어댔는지 부끄러워"


세상 만든 사람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나'라는 인생을 만든 것은 '나'이니까

아저씨던 요즘애들이던 나는 나로서 온전해질 수 있도록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이 드는 요즘 아저씨의 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