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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 도서관장 Oct 30. 2022

엄마의 음식을 기록하다 울고 웃는 사람들

킁킁! 도서관에 들어온 사람들이 코를 킁킁거린다. 어디선가 매콤한 기름 냄새가 폴폴 풍긴다. 주방도 없는 도서관에서 그것도 카펫이 도톰하게 깔린 도서관 강의실에 전을 부친다고? 그렇다. 오늘은 엄마의 음식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도서관에 오는 날이다.      


동네 사람들하고 친해지는 게 일이기도 한 나는 도서관에서 만난 어벤저스 친구들이 많다. 뭐든 해보자고 하면 달려오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한 어벤저스가 무심코 말했다. “나는 언젠가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 레피시를 책으로 만들어주고 싶어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 그거 같이 해봐요. 지금 해봐요!” 며칠 동안 머리를 맞대자 기획서가 완성되었다.  <맛의 기억, 엄마의 음식을 기록하다> 출판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돈이 없으니 공모사업에 지원했더니 덜컥 붙어버렸다. 아싸!     


제법 큰돈을 받은 나는 어번져스들에게 기획한 사람들이 진행도 하는 거라고 우겼다. 동네 사람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잠을 줄여가며 준비한 어벤저스들이 강사로 데뷔하는 첫날 참여자들이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단어는 눈물과 동격이란 걸 깜빡했다. 당황한 병아리 사서가 테이블마다 티슈를 놓아주었다. 눈물을 한 국자씩 흘린 사람들이 이번에는 까르르륵 웃어젖혔다. 엄마의 음식을 요리하는 시간은 눈물과 웃음이 반반씩 섞인 짬짜면 같은 시간이 되었다. 삭힌 깍두기, 가지로 만든 가지 버거, 방앗간 집 딸이 따온 아카시와 쑥으로 떡을 만들었다. 요리하는 틈틈이 엄마를, 엄마의 레시피를 글로 썼다.   

   

엄마의 음식을 기록하는 날이면 어벤저스들이 초긴장을 했다. 주방이 없어서 전날 집에서 재료들을 최대한 다듬고 소분해왔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와서 카펫이 깔린 강의실 바닥에 비닐을 깔았다. 고추장떡을 굽는 날은 그야말로 장사진이었다. 치지직 부침개 부쳐지는 소리에, 연신 터지는 웃음소리에, 서로 맛보라고 먹여주는 모습에, 강의실 천장 가득 채워지는 연기에, 우리의 재미난 소식을 담겠다고 출동한 EBS 방송국 스텝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어우러져서 잔칫집을 방불케 했다.    

   

아침 10시부터 1시까지 3시간 강의를 끝내고 나면 기진맥진한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넋을 놓고 앉았다가 뒤늦은 허기를 급하게 채웠다. 엄마의 음식을 기록하는 일은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졌다. 가을에는 한겨레 21에서 취재를 나왔다.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며 살아온 엄마들의 레시피가 완성되었다. 기록을 다듬고 고치는 동안 쓰고 달콤한 기억들이 숙성되어 책이 완성되었다. 여전히 티슈는 필수품이었다.      

눈물도 흘릴 만큼 흘리고, 웃음도 넘치게 웃어젖혔던 우리에게 남은 것은 출판기념회. 강의실 한편을 가족사진으로 꾸몄다. 줄기차게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엄마들이 손님으로 오셨다. 한컷 차려입고 온 딸들이 엄마를 보며, 그동안의 소회를 말하는 자리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누군가 울면 함께 박수를 치고, 누군가 웃으면 또 함께 박수를 치면서 우리의 출판기념회를 치러냈다.  

   

내 사서 인생 최고의 프로젝트였다. 어벤저스들에게도 최고의 순간이었다. <맛의 기억, 엄마의 음식을 기록하다> 출판 프로젝트가 한창일 때 초등학생인 딸들에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음식을 물어보았다. “스팸 주먹밥!” 일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나는 조금 반성했다. 나중에 딸들이 스팸 캔을 따면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조금 슬퍼졌다. 딸들의 기억에 남을만한 나만의 레시피를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직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오늘도  딸들이 가장 반색하는 나의 음식은 스팸 주먹밥이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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