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희미한 점으로 찍힌 작은 섬에서 나고 자랐다. 교과서 아닌 책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대도시로 이사 오고 나서다. 나의 무식함을 안타까워한 둘째 언니가 책 좀 읽으라며 문학 전집을 사주었다. 밤색 하드커버를 펼치면 작은 글씨가 깨알처럼 박힌 책은 지루하고 어려웠다. 쏜살처럼 장식용으로 전락했다. 대입을 앞두고 담임선생님이 처음 들어보는 사서라는 직업을 권했다. 문헌정보학을 접한 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없는 학문도 있구나.’ 사서 할 일은 없겠다고 마음을 접었다.
졸업하자마자 호주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돌아와서는 무역회사에서 일했다. IMF가 터지자 사장님이 잠적을 해버렸다. 가족 같은 회사라고 한 사장님이 가족을 버렸다. 대기업 계약직 사원이 되었다. 회식 때마다 산해진미를 먹었지만 단순 업무에 삶이 지루해졌다. 이럴 바엔 떠나자! 워킹홀리데이로 다시 호주에 갔다. 오전에 어학원이 끝나면 비스트로에서 낮맥을 마시며 이곳이 천국인가 했던 즐거움도 길어야 3개월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눈여겨봐 둔 적십자(RED CROSS)에 들어가서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뜨개질과 바느질로 샵에서 파는 소품을 만드는 곳에서 보조를 했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어느 날, 레드크로스 직원 송별 파티에 초대받았다가 문화 충격에 빠졌다. 젊은 직원이 세계여행을 가려고 그만둔다는데 모두들 포옹과 축복을 아끼지 않았다. 퇴사는 서운하거나 일종의 배신이라는 생각을 가진 곳에서 일했던 나는 정말이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문화의 차이인가? 나도 이런 곳에서 일할 수는 없을까? 물음표들이 마구 샘솟다가 느낌표 하나가 치고 들어왔다. 잠깐, 여기가 레드크로스지! 여기가 비영리기관이지! 영리 목적이 아니라서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 거라면! 도서관도 비영리기관이잖아!!!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결심이 섰다고 바로 돌아오기엔 체류 기간이 많이 남았다. 가져간 돈이 떨어져 주중에는 오피스 청소를 하고 주말에는 펍을 청소했다. 시드니에 머물던 나는 도시 생활이 지겨웠다. 농장이 많은 다윈으로 가자! 이틀 동안 버스를 타고 쌍코피를 흘리며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에서는 월요일에는 트랙터를 몰고 파파야를 탔다. 다른 요일에는 끝도 없이 긴 바나나 둔덕에서 한쪽에는 칼, 한쪽에는 신나병을 들고, 바나나 새순을 파낸 자국에 시너를 부었다. 바나나 수확이 있는 날은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온 바나나를 포장했다. 쉬는 날에는 숙소 근처의 오드 강으로 바라문디를 낚으러 다녔다. 그렇게 훌쩍 1년이 지나고 야매 영어 실력을 보유한 채 한 겨울에 집으로 돌아왔다.
새해 선물이, 나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렸다. 우리 동네에서 6년 만에 사서직 공무원 채용공고가 났다. 이건 나를 위한 계시다. 시험은 4월이다. 시간이 없다. 동네 독서실을 끊었다. 아침 10시에 문을 연 독서실에서 새벽 2시에 총무님이 봉고차로 집 앞에 내려 줄 때까지 공부했다. 반복만이 살길이라는 친구의 충고대로 읽고 또 읽고, 외우고 또 외웠다. 절박해 보였는지 총무님이 독서실 열쇠를 주셨다. 다음 날부터 새벽 6시에 도착했다.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층간 소음으로 신고 들어올 뻔했다. 드디어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마침내 사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