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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 도서관장 Oct 30. 2022

조부와 손주가 함께?

 하루 종일 동동거렸더니 녹초가 됐다. 오늘은 9주 동안 진행한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하는 우리는 책 친구> 마지막 날이자 오프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설레는 날이었다. 네 살 진호부터 일흔넷의 영록 할아버지까지 줌으로만 소통했던 일곱 팀의 조부모와 손주가 마스크를 단단히 끼고 도서관 나들이를 단행했다.  

   

  코로나로 인해 기획을 수차례 바꾸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모객이 안 되어 폐강 직전까지 갔다가 기사회생한 프로그램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하는 우리는 책 친구> 우여곡절이 많을 걸 예상했기에 일찌감치 담당자를 나로 정했다. 조부모와 손주가 서로의 책 친구가 되어 그림책을 오감으로 즐기자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그램은 첫 회부터 난항을 거듭했다. 조부모가 줌에 접속을 못하고, 얼굴은 보이는데 소리를 못 켜고, 할머니가 친구 분과 쉴 새 없이 수다를 나누고, 어린 손주는 잠이 들어버렸다. 공동 진행을 맡은 연극배우, 뮤지컬 배우, 안무가 세 사람의 손발도 엇박자가 났다. 폐강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주관하는 선생님 얼굴이 흙빛이어서 열심히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다행스럽고 당연하게도 두 번째 시간부터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몇 번의 들락거림 후에 열 팀 중 일곱 팀이 남았다. 세 분 선생님의 열정이 무색하리만치 반응 없고 소극적이던 조부모와 손주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화면 가득 미소 띤 얼굴과 흥겨운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우두커니 앉아만 있던 영록 할아버지는 단정하고 예쁜 옷을 입고 화면에 등장했다.  『무지개 물고기와 흰 수염 고래』, 『브레멘 음악대』, 『김점분 스웩』을 차례로 읽으며 노래하고, 춤추고,  만들고, 꾸미고, 게임하면서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뭉쳤다. 4시 수업을 위해 2시에 도착해 김밥을 먹으며 수업 준비를 한 선생님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아홉 번의 줌 수업을 마무리하는 피날레는 도서관에서 얼굴 보고 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일곱 팀의 책 친구 맞을 준비를 위해 아침부터 분주했다. 공연장에는 가로세로 5미터 대형 현수막을 걸고, 그 아래로는 미러볼과 풍선을 설치했다. 연극 놀이할 수 의상과 소품도 준비했다. 모두에게 덕담을 가득 담은 상과 선물을 준비했다. 먹거리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음향팀이 도착했고, 촬영팀도 세팅을 마쳤다. 책 친구들이 하나 둘 들어오는데 신기하게도 화면에서 짐작했던 것보다 작고 어렸다. 어른들 눈에 하트가 그려졌다. 준비된 무대 위에서 모두들 신나게 놀았다.     


  하이라이트는 영록 할아버지의 스웩. 74세 영록 할아버지가 랩을 읊었다.     


“내 이름은 진영록! 나이는 일흔넷! 나의 꿈은 모두 건강하게 사는 것! 나에게 언제 행복하냐고 물으면, 나는 책을 읽을 때 정말 행복해! 사랑하는 손녀에게 하고 싶은 말,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렴!”  

    

  이 랩 하나로 나와 선생님들의 피로감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영록 할아버지를 향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손주들이 저녁 내내 귀에 피가 날 정도로 즐거웠다고 종알종알 댄다는 후기들을 들으며 내 사서 인생에 두 번째로 감동적인 프로그램을 갖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힘든 만큼 보람은 찾아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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