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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한 Apr 06. 2022

망각의 동물

나는 오늘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마주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비루하게도 나는 1% 뛰어난 재능을 지닌 천재가 아니기에, 오늘도 망각이란 터널을 뚫고 나와야만 했다.

왜.., 나는 꼭 오랜 시간 동안 넘어지고, 실패해야만 깨닫는 걸까?


현존하는 많은 작가들과 어려 작법서들은 인풋과 아웃풋을 강조한다. 나 또한 글을 쓰다 막힐 때면 끊임없이  '인풋' 시도한다.

드라마 혹은 영화를 보거나, 작법서를 붙들고 늘어지기도 한다. 순수문학, 웹소설, 웹툰 가리지 않고 무작정 보고, 듣는다.


나는 언젠가부터 잘못 들어선 길에서 좌로 갔다 우로 갔다를 반복하듯, 끝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고, 뭐라도 보고, 듣고,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망각의 동물 1 - 십 년째 망각과 깨달음을 반복하는 그것. "기본"

글 써서 밥 벌어먹고 산지 십 년쯤 되어서인지,

쓸데없는 강박증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 단 한 줄의 글이라도 써야만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연초부터 한 가지 소재를 붙들고 두 번째 시놉시스를 작성 중이다.

정말 나만 그런 걸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수정고는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한다.

오늘도 꾸역꾸역 시놉시스의  페이지를 적어내려 갔다. 그리고.., 여전히, 오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수정 기획안을 쓰다 보면 수많은 유혹에 시달린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포기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전에 썼던 시놉시스부터 수정해볼까?"

"이 아이디어 괜찮은데? 다른 기획안부터 써볼까?"


이런 순간이 오면 지금까지의 나는 망설임 없이 빈 페이지를 열거나,

이전에 쓴 습작품들을 열어보곤 했다.

요즘의 나는 그 정도의 답답함을 넘어서, 또다시 웹소설을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에 흔들리고 있었다.

'드라마 작가 지망생'의 길에서 가장 유혹에 흔들리는 분야가 바로 웹소설이다.

누군가 좋아요를 하나만 눌러줘도 깊은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 아무도 나의 존재를 모르는 세계, 아무도 나의 잠재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시간들..

이젠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른 어느 드라마 작가님은 데뷔까지 17년이 걸렸더랬다.

정말.., 나는 그분들의 끈기와 집념, 근성, 열정, 그 모든 것들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한다.


어쨌거나 나는 답답한 마음에 웹소설 작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재미없고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 되어버린 나의 글쓰기에 활력을 불러 넣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그런데.., 웹소설 작법을 찾아보다 보니,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속 시원하게 뻥 뚫리는 것 같으면서도, 새로움보단 낯익은 듯한 작법들..

나는 또 잊고 있었다.


장르와 분야를 막론하고, 기본은 결국 같은 맥락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기본을 망각하고 있었단 사실을 말이다.


#욕구 #갈등 #선택 #클리셰 #플롯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 단어들을 나는 잊고 있었다.

매일 똑같은 나의 시놉시스를 들여다보며 분명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결국 찾아냈고, 또 한 번 도돌이표로 돌아온 내가 한심하지만 기뻤다.

드디어 빨간 팬을 어디에 칠해야 할지 알게 되었으니까..




망각의 동물 2 - 취사선택

글쓰기의 숙명은 결국 취사선택인 것 같다.

주인공을 이런 애로 할까 저런 애로 할까?

메인 프롯을 이거로 할까 저거로 할까?

그 수많은 선택 앞에서 나는 항상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고,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부담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요즘은 '드라마 시놉시스와 대본'은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는 것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데, 이상하게도 다른 글을 쓰거나, 돈을 벌기 위해 쓰는 글들은 한숨에 끝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알 수 없는 부담감과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올해에는, 내년에는, TV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되어 당당하게 드라마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어야지. 하는, 일종의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

백수 선언까지 했으니 남들보다  빨리 무언가 되어야만 한다는 압박감. 이러한 것들이 나에게 '글쓰기 싫어병'  옮겨온  같다.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진다 하지 않았는가..

글쓰기에 아주 소심한 사람이 되어버린 나에게,

이제 그만 자유를 선물하려 한다.


네 마음대로 써라.

작법 따위는 잊어버리고, 네 마음대로..
선택은 결국 작가인 너의 몫이란다.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 왼쪽으로 갈 것인가, 그건 아무도 정해주지 않아.
너는 또 작법 따윈 까마득히 잊어버릴 거고,
또 실패할 것이며, 주저앉게 될 테니까..,


어차피 넘어질 거라면
빨리 넘어지고 빨리 일어나자.

또다시 길을 잃으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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