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기차여행의 묘미, 지역 쪼꼬미 기차
오늘은 기차여행 4일 차, 나가사키에 가는 날이다.
구마모토에게는 미안하지만, 애초에 규슈의 정중앙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로써 거쳐가는 거점으로 활용했을 뿐이라 체류시간이 12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말고기에 술 한잔 거하게 걸치고 터벅터벅 숙소에 돌아와 씻고 잘 준비를 하던 때였는데, 갑자기 내 휴대폰은 물론 호스텔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휴대폰에 알림이 왔다. 한국에는 이런 재난문자가 자주 오기도 하고 까보면 별게 아닌 경우가 많아서 무뎌진 경향이 없지 않은데, 이 문자엔 첫 단어가 Earthquake인 것을 보고 졸아서 머리가 굳어버렸다.
다행히 시코쿠 섬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이라 내가 아침에 떠나온 벳푸(오이타 현)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고 지금 있는 쿠마모토에는 미약하게 느껴졌다. 문자를 보면, Strong Shake is expected soon이라고 적혀 있는데, 진짜 저거 받고 한 5~6초 뒤에 진동이 오더라. 지진 강국 일본 ㅇㅈ..
그건 그렇고, 오늘은 나가사키로 가는 날이다. 나가사키가 그렇게 이쁘고 볼게 많다고 해서 아침 일찍 체크아웃하고 떠났다. 총 3개의 열차를 탈 건데,
쿠마모토 역 -> 신토슈 역(쿠루메) : 규슈 신칸센
신토슈 역(쿠루메) -> 타케오 온센역 : 릴레이 카모메
타께오 온센역 -> 나가사키 : 니시규슈 신칸센
이렇게 된다. 우리가 북규슈 레일패스로 탈 수 있는 신칸센이 두 종류인데 하나가 규슈 최상단(후쿠오카)부터 최하단(가고시마)을 잇는 규슈 신칸센이고, 다른 하나가 타께오 온센에서 나가사키를 잇는 니시규슈 신칸센이다. 즉, 내가 탈 수 있는 신칸센은 다 타는 경로인 셈.
릴레이 카모메는 기타큐슈, 벳푸를 갈 때 탔던 소닉과 같은 계열인 Bullet Train(특급열차)다. 생긴 것도 날렵하고 속도도 빠르다. 소닉과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여하튼 첫 번째로 신칸센을 타러 왔다. 신토슈 역까지는 15분도 안 걸린 것 같다. 어마무시한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원래는 나가사키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움직일 계획이었다. 나는 항상 그렇게 움직였으니 몸이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움직였다. 이런 특급 J의 여행이 요세 특급 P의 여행이 되고 있다. 완전 계획을 틀어서 하는 여행의 재미를 느껴가고 있다고나 할까.
나가사키로 가는 니시규슈 신칸센을 타고 가는 도중에 검색하다 보니 너무 타보고 싶은 열차가 생겼다. 나가사키 지역 열차였는데, 나가사키 직전 역에 정차하는 이사하야 역에서 출발해 동쪽 바다 마을인 시마바라 역으로 운행하는 1시간 20분짜리 기차, 시마바라 선이었다.
아래와 같이 나가사키의 Isahaya 역에서 shimabara 역까지 운행하는 단일 노선인데, 지도에 나타나듯 바다를 끼고도는 열차라 풍경이 넋이 나갈 정도로 좋다.
기차여행을 좀 다녀보니 느끼는 게, 일단 기차가 예뻐야 한다. 안타깝지만 기차에도 외모지상주의는 신랄하게 적용된다. 사마바라 선은 한 량짜리 작은 열차다. 색깔은 빛을 아무리 받아도 개나리 색 정도인 진한 채도의 노란색이다. 그대로 유치원 아가의 모자색으로 써도 위화감이 없을 만큼 녹진하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위에 전기선이 없다. 전동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디젤 기관차라 시끄럽고 승차감도 좋지 않지만 이 열차는 도심을 지나지 않기에 어떤 불편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헤리티지 또한 한스푼 첨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플랫폼도 그냥 시골 그 자체다. 노선표를 보면 우측 상단에 노란 잉어가 있는데, 이건 시마바라 역의 역장이 잉어여서 그렇다. 인스타에서 고양이 역장이나 시바견 역장을 본 적이 있을 거다. 그런 종류. 하지만 내가 갔을 땐 없었다. ㅠ.
이렇게 로컬로컬 하지만 가격은 사악을 넘어 사탄이다. 종점부터 반대편 종점까지 1시간 20분이 걸리고 속도가 느려서 이동 거리 자체는 적다. 하지만 가격은 편도 1,500엔가량이다. 기차는 물론 버스도 탈 수 있는 원데이 패스가 3천 엔이길래 탈건 아니지만 가격차이가 나지 않아서 그냥 이 티켓을 샀다.
경험자로서 추천을 하나 하자면, 플랫폼에 열차가 오기 전에 미리 플랫폼에 도착해서 맨 앞자리를 고수하자. 기관석 바로 앞에서 보는 기찻길과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 그건 웃돈을 주고라도 보고싶을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는 선점을 못해서 한 시간 내내 좋은 풍경의 바로 뒷자리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버금가는 풍경을 즐겼다. 다행히도.
이렇게 바다도 가로지르고,
산과 나무, 풀들도 많다.
맨 뒷자리에 앉으면 이런 풍경도 구경할 수 있다.
바다와 산, 작은 집들이 한 프레임 안에서 큰 만족감을 선사했던 풍경이다.
그리고 아래 동영상은 내가 가장 좋았던 풍경이다.
이 영상은 반대편 기차와 바다가 절묘하게 엇갈리며 낮과 저녁 그 어딘가에 있는 햇빛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졌다. 당시에 동영상을 찍으며 눈은 창밖을 향해 있었는데, 황홀하게 마치 홀린 듯 쳐다보다가 동영상을 1분 넘게 찍어버릴 정도였다.
단점이라면 나가사키에 볼 게 아주 많은데, 여길 오면 거의 반나절은 할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마바라 자체도 예쁘고 매력적인 작은 도시지만 나가사키에 비 할 곳은 아니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작은 단점이라면 가격이다. 너무 비싸다. JR 규슈 레일패스가 적용되지 않기에 추가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가격도 3만 원가량이라 딱히 기차여행에 관심이 없다면 가치 없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도 유니크함과 노선을 지나가며 보는 풍경을 결합하면 너무나도 매력적인 열차다. 이건 자부할 수 있다. 나가사키에 올 일이 있고, 지역 기차를 좋아한다면 나처럼 관광으로라도 방문할만한 가치가 차고 넘치는 여행이다. 나와 같은 여행 스타일을 가진 사람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