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의 발견

양가적인 마음

by 리븐제이

이상하게 정신과 약을 먹으면 더 취하는 것 같았다.

정신이 몽롱했다.

속으로 ‘이거 맞아...? 계속 먹어도 되는 걸까...?’

의심했다.


결국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병원을 찾지 않았다.

스스로 나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단단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취향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평소 가고 싶었던 카페와 소품샵들의 리스트를 뽑았고 전시회 일정도 체크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점점 늘려갔다.

굳이 둘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찾았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면서 욕심도 많아졌다.

사고 싶은 것들은 내가 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잔뜩 사들였다.

마음이 헛헛할수록, 외로울수록 집에 택배상자는 쌓여갔다.

저녁만 되면 야식을 멈추지 못했다.

-배고픔과 외로움을 느끼는 곳이 같다는 걸 추후에 명상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즐거움도 잠시.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보이는 삶을 위해 사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것들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 또한 겉으로 보기엔 부부가 같이 일하면서 돈도 그럭저럭 버는 것처럼 보였고

여행도 많이 다녀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우린 그저 쇼윈도 부부에 불과했다.

어느 순간 둘이 무얼 하거나 어딜 가는 게 마냥 설레거나 들뜨지 않았다.

예전 같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한 순간들도 생겼다.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티가 났던 것일까?

친구와 대화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종종 SNS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글을 보면 외로워 보여.’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이 답답했다.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을까.

물론 행복하고 즐거웠던 날도 많았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엔 늘 외로움이 함께 있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흐려지고 희미해졌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했던 나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 당시 보고 있었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


"당장 야금야금 부지런히 행복해야 돼!"

현재를 재미있게 즐기면서 살고 싶었다.

같이 할 수 없다면 혼자라도 해봐야 했다.

그렇게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다듬어갔다.


그 해 호주와 멜버른을 다녀왔다. 처음으로 혼자 한 해외여행이었다.

10일간의 여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이 짧고도 긴 여행으로 인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당시 쓴 일기엔 이렇게 적혀있다.


- 감사한 건 비행기 연착 없이 무사히 왔다는 것. 소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는 것.

- 난 내가 원하는 걸 해야 만족감이 크고 돌아오는 행복도 크다.

-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이제 겁이 조금 없어진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하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는 것.

- 혼자가 편하다. 혼자가 좋다. 그래도 내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좋은 것.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어차피 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에 또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 발길이 닿는 대로, 내 마음이 향하는 대로, 혼자 여행이 이렇게 좋았던가. 행복하다 많이.


여행 후반 부에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X에게 서운함이 잔뜩 밀려온 다음의 일기는 이러했다.


- 갑자기 문득 너무 우울해졌다. 내가 너무 부정적이고 감정적인 걸까.

근데 확실한 건 마음과 마음이 맞닿지 않는 것 같다.

왠지 끝일 것 같은 그런 느낌.

아무래도 상대의 진심이 이젠 더 이상 느껴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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