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 마지막 여행

합의이혼을 결정했다

by 리븐제이


더 이상 악감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날의 상황과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저릿하다.

전 날은 시댁에 행사가 있어 모처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친인척분들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렸다.

결혼식이 끝나고 문래동으로 넘어가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데이트를 했다.


희미해지고 흐려질 테지만 잊을 수 없는 때는 2021년 6월 6일.

모처럼 쉬는 날이라 집밥을 해 먹고 나는 거실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고 X는 안방에 누워 쉬고 있었다. 배도 부르고 나른하니 낮잠이 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바깥은 어스름하다. 방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같은 상황이었던 듯했다. 야구를 보다 잠이 든 것 같길래 핸드폰 화면을 꺼주려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날따라 왜 보고 싶었던 걸까.


그때부터 고난주간의 시작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이다.

육체적인 관계를 가져야만 외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다면 다른 이성에게 집착은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함이 아닌 지속적인 연락을 갈구하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추스르지 못할 만큼 감정이 격양되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집 밖을 나섰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동네에 있는 공원을 몇 바퀴를 돌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 당시 우리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마냥 기뻤고 앞으로 더 잘 살아보자며 의지를 불태웠었지만 모든 게 한 순간에 무너졌고 고통이 시작되었다.

매일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는 일상에서 여차저차 잘 맞추어가고 있으니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잘해보고 싶었던 의지를 짓밟기라도 하는 듯했다. 큰소리치고 싶지 않았고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지만 그게 되지 않았다. 솔직하지 못한 X에게 난 더 실망했고 화가 났다.


불면증은 심해졌고 몇 날 며칠을 감정낭비하느라 에너지가 고갈되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무용한 것 같았고 무엇보다 매일 기도하며 딸과 사위의 행복을 바랐던 친정 부모님 생각에 막막했다. 하지만 난 선택해야 했다.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았고 우는 내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흐르는 눈물이 아까웠고 서러웠다. 잘 준비해서 깔끔하게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비단 핸드폰의 메시지만 보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간의 우리 관계는 끊어낼 수도 없이 간신히 붙들고 있었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살다 간 내가 죽을 것 같았고 숨이 막혀왔다. 소중한 인생을 위해서라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똑똑하게 나를 지키기로 했다.


차라리 메시지를 보지 말걸 그랬나 하고 잠깐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전한 것은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마음에도 내가 없었지만 나 또한 나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린 합의이혼을 결정했고 그 당시 아무에게도 말하지도 말할 수도 없었다. 최대한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었다. 혼자 끙끙 앓느라 한 달 내내 아팠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에 취약했던 나는 이유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대학병원에도 가 보았지만 여전히 몸에 이상은 없었고 컨디션이 영 회복이 되지 않아 링거를 맞으며 간신히 일상을 유지했다.


우린 각자 양가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기로 했다.

그동안 말 못 했던 사연을 풀어놓으니 그 후에야 마음이 편해졌고 아팠던 몸도 슬슬 좋아졌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개월이었다.

미운 마음은 남아있었지만 이혼을 결정한 뒤로는 오히려 친구 같은 편안함이 생겼다.

어차피 곧 헤어질 사이였으므로 굳이 건드리지 않았고 서로 배려하며 이어나갔다.

미리 예약해 두었던 제주도 휴가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었다. 몇 주도 채 남지 않았던 상황이라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이혼을 결정하고 같이 여행 가는 부부가 또 있을까.

‘우리 그동안 힘들었던 과거는 잊고 진짜 잘 즐기다 오자.’하고 떠났던 제주도에서는 가고 싶었던 곳들도 다 들리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다. 운전도 서로 번갈아가며 하고 제주 신라호텔에서 호캉스도 즐겼다.

하필 여행 내내 날씨가 한 몫하는 바람에 정말 그 순간만큼은 최고였다.

나쁜 생각은 접어두고 좋은 기억만 간직하자. 여행의 말미에 산책로를 걸으며 서로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마무리를 잘하자며 대화를 끝냈다.




휴가를 다녀와 감사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그만하고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미라클모닝이 유행이었는데 알람을 맞추고 억지로 일찍 일어나기보단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들부터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우연히 명상을 접했다. 수업을 들으며 아프고 힘든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혼자 잘 살아내리라는 확신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