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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팔 Jul 22. 2021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또) 죽였을까?

“할머니, 별똥별이 떨어졌어요.”

“그렇구나. 별똥별이 떨어지면...”

“나도 알아요, 할머니. 누군가의 영혼 하나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라는 걸.”

“그래, 아가. 네 말이 맞단다. 근데, 그게 너라는 얘긴 할미가 안 해줬지?"


내린 눈이 하얗게 낀 거리의 시작은 평온했으나 곧 분주해졌다.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 오가는 인파들로 채워졌고, 분위기에 들뜬 아이들의 북적이는 소리가 쌓인 눈만큼 풍성하게 들려왔다. 길 한복판에 세워진 대형 트리로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내일 없는 오늘을 즐기기 위한 기대로 반짝거렸다. 울려퍼지는 캐롤은 산타클로스를 부르기도, 내쫓기도 할 만큼 무거운 소음으로 퍼져나갔다.     


혼수상태로 발견된 소녀는 여전히 의식불명이었다. 소녀는 생과 사의 중간 어디쯤 갇혀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게 의사의 진단이었다.

“눈에 덮여있어 처음에는 사람인지 몰랐어요. 그 앞을 지나가는데 뭐가 꿈틀거리더라구요.”

소녀를 처음 발견한 목격자는 아직도 당시의 충격에서 못 벗어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녀는 오랜 굶주림으로 탈진상태에 있었다. 장시간 추위 속에 저체온증으로 온몸이 경직 되었고, 맨발 탓에 걸린 동상으로 두 발은 검게 변했다. 소녀가 살아난 건 기적이 아니었다. 순전히 고집  때문이었다. 


성냥은 오늘도 완판되었다. 성냥 중독을 막기 위해 의사의 권유로 마스크를 있었지만, 충격적 사건의 주인공을 사람들이 모를리가 없었다. 다리를 잃은 후 의지하게 된 휠체어도 한 몫을 했다. 

"성냥 몇 개 만 다오."

"몸은 괜찮니?열심히 살아야지."

"오늘은 내가 남은 성냥을 다 사주마."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다.

크리스마스라는 대목이긴 하지만 소녀가 몰고 온 사회적 파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실 소녀에게 성냥팔이는 더는 생계 수단으로서 일거리가 되지 않았다. 한때 남루한 삶으로 하루하루가 버겁던 시절, 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운명을 바꾼 그 사건이 일어난 후 겨우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성냥팔이를 그만둘 수 없었다. 소녀는 겨울을 떠올릴 때마다 소리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여전히 가슴이 답답해 오고 기억의 단편들은 호흡을 압박했다. 신음하듯 읊조리는 말이 흘러나와 입술이 떨렸다.

‘그때 할머니를 따라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소녀는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불현듯 되살아났다.     


몇 칠째 성냥은 한 개도 팔지 못했다.

“아저씨, 성냥 하나만 사주세요. 부탁드려요. 네?”

무관심한 행인들, 갑자기 달려드는 마차에 치여 죽을 뻔했던 순간, 벗겨진 신발을 아이들에게 빼앗기고 맨발로 눈길을 헤매야 했던 고통. 소녀의 눈시울이 흐릿해졌다. 성냥 한 개비의 따스함에 현혹돼 어차피 얼어 죽을 목숨이라면 온기라도 실컷 쬐고 죽겠다는 일념에 불이라도 지르싶었다. 추위와 배고픔은 소녀를 생의 끝자락으로 몰고 갔다. 성냥을 그어 일어나는 작은 불꽃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난로와 풍성한 음식이 차려졌고,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른거렸다. 곧이어 할머니 품에 안겼을 때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  

“할머니, 별동별이 떨어졌어요.”

“그렇구나. 별똥별이 떨어지면...”

“알아요, 할머니. 누군가의 영혼 하나가 하늘나라로....”  

할머니의 꾐은 집요했다.

“얘야~ 나랑 같이 하늘나라로 가자꾸나. 그곳엔 엄마도 있단다. 엄마도 널 기다리고 있어.”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아버지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술은 아버지를 지탱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주사는 날로 더해갔다. 엄마의 부재로 기인한 분노라는 걸 알기에 한편으론 아버지가 측은한 생각도 들었지만 가해지는 폭력은 참기 힘들었.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까지 꾸려야 했던 소녀에겐 가혹한 현실이었다. 살아서도 고통이 이리 큰데, 죽어서의 지옥을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차라리 엄마의 뒤를 따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지금보다는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

모든 고통을 끝내고 이대로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을 때 붙잡지 않았다.

“싫어요, 할머니, 난... 지금 갈 수가 없어요. 아직 갈 준비가 안 됐어요. 저를 놔주세요!”

"아니 얘가. 할미가 가자는데 고집을 부려. 이리 , 얼른 가자."

"싫어요.나 안가. 가기 싫단 말이야!"

거절한 이유는 자신도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얘, 정신 좀 차려, 정신. 애, 애야~. 눈 좀 떠보거라.”    

소녀가 가까스로 눈을 뜨자 내려다보고 있 낯선 얼굴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다행히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쏟아오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소녀는 하얀 눈에 덮여 있었다. 따뜻했다. 더 깊은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눈을 떴을 때 그 온기는 눈이 아니라 몸을 감싸고 있는 담요라는 걸 알았다. 소녀는 이 포근한 공간의 정체를 눈으로 었다.

병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결국, 맨발로 눈 속을 헤매다 걸린 동상 때문에 썩어들어가는 두 발을 잘라내야 했다. 소녀는 충격으로 몇칠 동안 어떤 음식도 넘길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안정을 찾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이미 사회적 이슈의 히로인이었고, 특종 기사의 주인공이 된 후였다.     


“이 추운 날, 눈 위를... 그것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맨발로 다녔는데 아이는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수술 후 기자들 앞에 선 주치의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그건...아마도 황린 중독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황린 중독이요?”

의사의 충격적인 발표에 회견장은 술렁거렸다.

“아니,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런 독가스에 노출될 수 있었나요?”

“원인은 가지고 다녔던 성냥으로 추정됩니다. 성냥의 원료인 황린을 태우면 이황화탄소가 발생하는데 이 가스를 많이 마시게 되면 황린 중독에 걸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지요. 그 때문에 감각이나 통증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심하면 얼굴이 끔찍하게 변형되면서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마는 아주 치명적인 독가스입니다.”*

“그렇다면 아이가 이 황린 중독으로 신경세포에 영향을 받아 환각 상태에 빠졌던 건가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네. 맞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태로 있었던 게 아이한테는 천만다행이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일시적인 가사 상태에 빠져들게 해서 얼어 죽지 않고 버틸 힘을 제공한 것 같습니다. 아이가 병상에서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헛소리 하거나 이상한 몸짓을 하는 것도, 아직은 중독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녀는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언 손으로 겨우 성냥을 그었다. 불꽃이 피어오르면서 추위를 녹였다. 잠시 고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황홀한 순간들을 보았다.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 따뜻한 난로, 크리스마스트리.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잔상이었다. 곧이어 별똥별이 떨어졌고 강요하는 할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현실로 튕겨져 나왔다. 행복하면서도 무서웠다. 격한 감정들이 밀려와 소녀는 흐느꼈다.


소녀의 사연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가정의 역할과 공공의 질서, 나아가 사회의 책임에 대한 재정립의 빌미를 가져왔다. 아버지의 가정폭력, 거리에서 공공연히 발생하는 마차들의 위험천만한 과속질주, 일면식도 없는 소녀의 신발을 빼앗은 아이들의 묻지마 식 장난을 규탄했다. 죽어가는 소녀를 눈길 바닥에 그냥 놔두고 무심하게 지나간 시민들을 향해 죽음을 방조했다는 비난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정부차원에서 사회의 소외된 계층이나 아동학대, 소녀 가장과 같은 저소득자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청원과 동의하는 글이 쏟아졌다. 시민들은 동참의 의미로 성냥불을 상징하는 노란 불꽃 리본을 달고 다녔다.  

결국 들끓은 민심에 소녀의 아버지는 딸에 대한 폭력을 시인하고, 거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소녀를 칠 뻔했던 마차를 타고 가던 저명인사는 무리한 마차 운행을 사과했다. 그날 사고에 대해 또래의 딸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가슴 아픈 일이라며 소녀가 완치될 때까지 모든 치료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소녀의 신발을 빼앗아 갔던 동네 아이들에게는 어리다는 이유로 반성문과 함께 훈방 조치로 끝났지만, 현 형사책임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사건의 파장은 정치권도 뒤흔들어 놓았다. 국민 개개인에 대한 인권유린 및 비윤리적 행위가 자행되면서 몰인간성에 대한 회의와 반성으로 이어져 관련법의 제정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일명 <성냥팔이소녀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다른 사안에 밀려 계류 중이던 <착한 사마리아인법>을 수정.보완한 것으로, 성냥팔이소녀 사고를 계기로 당리당략을 넘어 모처럼 일치된 의견으로 신속히 통과되었다.

<성서>에 나오는 한 구절로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보고도 사람들이 모른 체 다 지나갔으나 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만이 그를 구해주고 치료해줬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법은 자신에게 해를 입히거나 피해를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가 중대한 위험에 빠져있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적극적인 구조에 나서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의 제정으로 더는 소녀와 같은 불행한 일을 국가가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렇게 한 조그만 소녀의 이야기는 사회를 움직이고, 국가안전시스템를 재정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쉽게 달아오른 쇠가 쉽게 식듯 시간이 지나자 성냥팔이 소녀의 신화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한동안 사랑받던 국민 소녀로서의 사랑도 식어갔다. 여전히 시민들은 소녀에 대한 관심을 보였으나 예전만큼 호의적이지 않았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차츰 꺼져갔다. 성냥도 다 팔지 못하고 남는 날들이 늘어났다. 이제 성냥은 소녀에게 더는 삶의 의욕을 돋아주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예전처럼 굶주리거나 추위에 시달리는 육체적 고통은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물 흐르듯이, 해가 뜨면 밝아지고 날이 저물면 어두워지듯이, 그저 그런 일상에 잘 적응해나가면서도 마음 한구석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이 있었다. 그것은 관계의 영역에서 멀어진 혼자라는 고독이었다.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감,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했다. 거리에 오가는 가족의 행복한 모습, 창문 넘어 보이는 단란한 가족 식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참기 힘든 외로움이 밀려왔다.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마저 자신에 대한 폭력으로 감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그리웠다. 가족 모두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았다.

 

그날도 소녀의 성냥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휠체어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조차 힘들었다. 소녀는 지루함을 달래려 무심코 성냥 한 개비를 그어 불꽃을 일으켰다. 타들어가며 내뿜는 독한 냄새는 마스크를 쓴 소녀의 코를 자극했다.

(황린중독으로 뇌신경세포가 영향을 받아 환각 상태에 빠졌던 거지요.)

문득 의사가 기자들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갑자기 소녀는 뭔가를 찾은 듯 기뻐하며 소리쳤다.

'맞아, 그거야! 성냥불.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할머니를 만났던 순간, 다시 한번 그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이번엔 꼭 엄마를 보고 말 거야. 어쩌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할머니 손을 놓치 않을 테야. 그러려면 성냥이 아주 많이 필요하겠지.'

소녀는 어떻게든 사랑의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마침내 생명줄과도 같은 마스크를 벗고 남은 성냥을 모두 꺼내 급하게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노란 불꽃이 소녀의 눈동자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주위는 밝은 빛으로 어둠을 태우고 있었다. 이윽고 성냥불이 토해내는 연기 속으로 소녀의 얼굴이 점점 잠겨가기 시작했다.  


“결국 황린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랫동안 환각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게 아닌가 추정됩니다.”

주치의가 휠체어에서 잠든 소녀를 살펴보고 말했다.

“음...그렇게 힘들게 살아오다 이제 좀 안정된 생활을 하는가 싶었는데...”

경관은 안타까운 듯 내뱉었다.

“근데.... 대체 저 아이가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간절히 보고자 했던 무엇이었을까요?”

경관의 질문을 들으며 소녀의 주검을 바라보던 의사가 뭔가를 발견한 듯 입을 열었다.

저기... 아이의 손이...”  

의사의 시선을 따라 소녀를 보던 경관도 고개를 기웃거리며 말했다.  

“그러게요. 한쪽 손이 주먹을 쥐고 있네요. 뭔가 소중한 거라도 지키려는 듯 말입니다.”

두 사람은 얼어붙은 소녀의 주먹을 펴기 위해 힘을 썼다.

“아니....이건....”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펴진 소녀의 손에는 다 타버려 부서진 성냥개피 하나가 그을린 채 있었다.

“왜 이 성냥개비만 손에 꼭 쥐고 있었을까요? 그것도 다 타버린걸.”

경관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의사는 뭔가 한참을 생각하곤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마...마지막으로 본 것을 간직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요.

“네?

경관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지난번 사고로 깨어났을 때 아이는 할머니를 봤다고 했죠. 물론 그때는 무서워서 할머니를 따라가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의사는 뒷말을 아꼈다.  

“네...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그 얘기와 이 아이가 뭘 보고자 했는지는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경관이 되물었다.

"그때 이 아이가 할머니의 손을 뿌리친 건 아버지 때문이었을 겁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비록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으나 자기마저 가버리면 혼자 남을 아버지에 대한 연민 같은 거겠죠."

계속 말을 이어가던 의사는 경관에게 물었다.

“이제는 아버지마저 곁에 없는 상황에서 혼자 남은 아이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보다 찾고 싶은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족이라는 말씀인가요? 음..... 그럴수도 있겠네요." 동의하는 듯 경관이 대답했다.

"다만 선택의 기준은 달랐겠지요. 한번은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서, 또 한번은 먼저 떠난 가족을 생각했던 걸 겁니다." 의사는 소녀를 내려다보며 무겁게 말했다.

"결국 아이는 혼자된 현실보다는 가족과 함께 있는 꿈을 택한 거군요."

씁쓸한 입맛을 다시던 경관은 주변을 조사한 후 자리를 떠났다.

 

잠시 멈췄던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했다. 잠든 소녀의 머리 위로 눈꽃이 피어났다.

의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하늘 아래 공평한 것도, 공평하지 않은 것도 없다고 했는데...***이 아이한테 짧은 세상은 어떤 의미였을까?' 속삭이듯 읊조렸다. 의사는 스며드는 눈송이에 메마른 얼굴이 촉촉해져 감을 느꼈다.  


소녀는 마지막 성냥을 그어 불을 밝혔다. 할머니가 마중 나와 계셨지만, 똑바로 쳐다보기가 민망했다. 엄마도 함께였다. 크리스마스트리와 맛있고 풍성한 음식들이 식탁에 차려졌고 가족이 둘러 앉았다. 소녀는 너무나 기뻤다.

한쪽에 자리 하나가 비어있는 게 눈에 띄었다.

"엄마, 이 자리는 누구 자리예요." 소녀가 물었다.

"응. 그 자리는....곧 알게 될 거야." 엄마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저기 오신다." 엄마의 말에 소녀는 뒤를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아..버...지가.. 어떻게 여길.."

아버지는 지금 감옥에 계신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계실 아버지 생각으로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는데 여기까지 찾아 오시다니.... 소녀는 좋으면서도 한편 불안했다. 이곳은 살아있는 사람의 공간이 아니지 않는가.

"다들 모였군. 자 그럼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겨볼까?" 아버지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소녀는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온 가족이 모였다는 것,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기에 오늘은 그냥 잊기로 했다. 늘 그리던 따뜻함과 사랑 속에 있고 싶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에...                                    - The End -

                                       <출저: 네이버 이미지>



* 황린가스 : 네이버 지식iN 참조

** 착한 사마리아인법 내용 :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 영화 '모정(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 의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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