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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팔 Aug 08. 2021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덥다.

혓바닥을 축 늘어뜨린 개 모양 종일 할딱거린다. 제철다움 날씨가 이리도 환영받지 못하는 계절은 아마 여름뿐 일게다. 직업 특성상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나한테는 더더욱 밉상이다.


“고마워요, 도쿄는 찌는 듯이 더워서 그대로 있다가는 쓰러질 것 같더라고. 의사한테 그렇게 말하고 바로 달려왔어요.” (p239)   

                         

계절마다 걸어야 할 이유가 있다. 봄은 따뜻해서 걸어야 하고, 가을은 서늘해서 걷고, 차가운 겨울은 언 몸을 데우기 위해 걷는다. 숨쉬기만으로도 땀을 뿜어내는 이 여름만 굳이 걸어야 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열치열이란 치기 어린 젊음의 객기도 한때의 거들먹이지 이 더위에 대들다 팔뚝에 바늘 꽂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아주 오래전 일사병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다. 그 끔찍함이란.) 자연으로 들어가 적당히 더위를 품고 그것을 한 방에 날려줄 시원한 그늘에서 청량함을 만끽하는 상상을 잠시 해보지만 탁한 구름 사이의 설핏한 햇살 한 줌조차 마른 그늘을 태워버리는 이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호사를 기대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라 곧바로 걷어드린다. 다행히 그 비슷한 느낌을 나는 퇴근길에서 경험한다. 아주 짧은 시간과 공간이 주는 한여름 날의 소.확.행이다.


비는 한 시간 남짓해서 그쳤다. 유리창을 열자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흘러 들어왔다.

비에 씻긴 초록에서 솟구치는 냄새. 서쪽하늘이 이상할 정도로 밝아지면서 일몰 직전의 광선을 숲에 던진다. 완전히 황혼에 가라앉아 있던 나무들의 잎사귀 가장자리가 오렌지색으로 빛났다. (p151)



집이 외곽이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서울과는 온도 차를 느낀다. 홍대입구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열차를 갈아타고 김포공항역을 지나면 서울을 벗어난 첫 번째 역인 계양역으로 들어선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조금 전까지 빌딩 숲 유리창을 달구던 태양은 진짜 숲 사이로 성긴 햇살을 쏟아낸다. 배경을 바꾸기 위해 잠시 불을 꺼 논 무대처럼 터널의 어둠은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자연이란 무대장치로 바뀐다.  

분장한 도시가 자연의 민낯으로 바뀌는 경계, 인위적 공간이 날 것의 영역으로 교차한다. 회색이라는 거친 도시의 질감이 터널의 어둠을 빠져나오자 무자비한 초록이 일렁이는 계양산이 슬라이드 사진처럼 툭 튀어나온다. 음악으로 친다면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을 듣고 있다가 포크송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마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로 시작하는 <설국>의 첫 문장처럼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초록의 고장이었다.


파란 하늘을 오려낸 것 같은 능선에 작은 구름을 올려놓은 것처럼 정상 부근에 희미하게 연기를 길게 뻗치고 있는 아사마 산이 아오 쿠리 마을로 돌아가는 우리 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p228)


계양역을 벗어나 철로와 평행하게 이어진 아스팔트를 따라 흐르는 풍경이 산을 넘어 마을에 이르면 초점 없이 흐르던 내 눈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논, 밭길을 그저 편히 다니기 위해 아무 데나 다져 만든 흙길과 자드락길을 따라 미끄러진다. 촌 동네의 듬성듬성 파묻힌 정겨운 슬라브 지붕이 아닌 철옹성처럼 지어진 공동주택이 대부분이라 한복 윗도리에 정장바지를 입은 것처럼 뭔가 어긋난 듯 보이지만 분위기만으로 전원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잔인한 여름에서 누리는 호사다.  

쉼 없이 쫓던 눈길은 멀리 산 입구의 소실점까지 길게 이어진 널찍한 신작로에 다다라서야 한 박자 쉬어간다. 주마간산으로 길 양쪽에 돋아난 여름꽃을 보게 되는 것은 덤이다. 이렇게 역에서 다음 역까지 이어진 초록의 기운을 따라가다 보면 여름의 마음이 한결 가붓해진다.



유리창이 열려있을 때에는 거리의 술렁거림이 기분 좋게 울린다.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 자동차 소리가 지나가는 소리, 그러나 일단 닫히면 이번에는 자기 맥박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고요함이 가득 찬다.(p74)


눈으로 차장 밖의 풍경을 다독이고 지하철 안의 시원함을 피부로 느끼면서 내내 곤비케 했던 오늘을 잠시 잊는다. 다만 지하철이라는 밀폐된 공간과 기계음으로 자연이 노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면 아쉬울 일이다. 청각은 닫아 놓은 채 시각과 촉각만으로 사진기의 연속셔터를 가동하듯 눈이 깜빡일 때마다 한장 한장 이 여름을 담는다. 사소한 감정의 영역에서 만나는 자연의 표정들이다.

고작 한 정거장을 지나는 공간이지만 그 몇 분의 흐름 동안 무겁게 가라앉은 이 계절의 기운을 일삽시 식혀가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도시와 전원을 넘나드는 나 같은 출퇴근 자들 만이 유장한 여름에 입는 혜택이다. 그래서 어쩌면 '마쓰이에 마사시' 소설의 글들 처럼 여름의 풍경이 스치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어 차오르고 있는지 모른다.


낮에는 한여름 기온에 가까워도, 저녁나절에는 바람이 숲을 지나가면서 햇살의 흔적을 빠짐없이 지워간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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