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는 누구나 자연을 누릴 수 있다

커뮤니티 가든을 통해 본 '나만의 정원을 가질 권리'

by 파도

건축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매일 경험하는 공간이 사람의 사고방식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주는지를 느꼈다. 운이 좋게도 셀프 건축여행을 마친 뒤 바로 다음 월요일에 'Allotment Garden'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공간 역시 덴마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형성하는 공간을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라 정말 좋았다.


Allotment Garden, 덴마크어로는 콜로니헤베(Kolonihave)라 불리는 이 공간은, 직역하자면 할당된 정원이라는 뜻이지만, 커뮤니티 가든이라 이해하는 게 좀 더 적절해보인다. 다만 모든 주민이 하나의 정원을 가까는 커뮤니티 가든 방식과는 달리, 이곳은 각자의 정원이 독립적으로 존재(할당)한다. 개별 정원과 오두막(세컨하우스로 거주 가능)이 모여있는 형태이고, 단지 전체를 관통하는 산책로, 커뮤니티 센터 등의 공유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어, 하나의 작은 마을처럼 작동한다. 이는 개인 소유의 땅이 아닌, 지자체가 소유한 토지를 임대 형식으로 빌리는 방식이다. 가장 유명한 곳은 브론뷔의 Circular Garden인데, 나는 거길 가보진 못했고 우리 학교 근처에 있었던 'Haveforeningen Solbakken'에 다녀왔다.


브론뷔의 Circular garden (출처: Open culture)


이 콜로니헤베는 19세기 말 산업혁명 시기에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좁고 불결한 주거 환경에서 벗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직접 채소를 재배할 수 있도록 정부와 시청이 땅을 빌려준 것이 그 시작이다. 오늘날의 콜로니헤베는 '여유'와 '휘게'의 상징인 데 반해, 처음 이게 탄생했던 배경은 철저히 생존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먹거리 문제 해결, 공중 보건과 주거 환경 개선, 사회적 통제가 그 이유였다.


산업혁명기 당시 도시 노동자들의 임금은 매우 낮았고, 직접 농사를 짓던 때와 달리 도시에서는 신선한 채소를 사먹는 게 사치에 가까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에 덴마크 정부는 그들이 직접 작물을 재배해 식사를 해결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당시에 결핵이 만연했는데, 이 결핵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은 햇빛과 신선한 공기였다. 노동자들의 주거지는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매우 좁고 습한 방이었기에 이들에게 정원이라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노동자들이 강제로라도(식사를 해결해야 했기에) 야외 활동을 하며 결핵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또한 빽빽한 공장 지대 사이에 의도적으로 녹지를 배치해 도시 전체의 위생 수준을 높이려 했던 이유도 있다고 한다. 비위생적이고 좁은 도시 빈민가에서 발생하는 영양실조와 전염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 복지 정책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노동자들이 '술' 대신 '삽'을 들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거다. 당시 기득권층은 노동자들이 여가 시간에 술집에 모여 정치적 선동을 하거나,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가 시간에 노동자들이 술집에 가는 대신 정원을 가꾸게 함으로써 가족과 함께 땀 흘려 일하며 생산적인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도덕적 장치'로 활용했다. 참 덴마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개신교 국가이기도 하고, 덴마크 정신을 만들어낸 두 사람, 그룬트비(공동체성)와 달가스(근면성실)의 사상과도 잘 어울린다.


초기 콜로니헤베가 '노동자들이 굶지 않고, 아프지 않고, 사고 치지 않게 하려는' 국가의 실용적인 목적으로 도입되긴 했지만, 지금은 덴마크 특유의 '여유'를 상징하는 문화 중 하나가 됐다. 자연과 가까이, 이웃과 함께 사는 삶은 잘못된 길로 빠지기 어려워서인걸까? 직접 가서 본 콜로니헤베는 참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소유가 아닌 임대 방식이기에, 저소득층도 적은 렌트비만 내면 자신만의 정원을 누리면서 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세컨하우스로 사용이 가능해서, 따뜻한 여름에는 여기서 아예 거주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한 번 렌트를 하면 만료기간이 없는데, 다만 지자체에서 이 부지를 활용해 다른 걸 하고 싶다고 하면(예. 공항 건설) 계약이 끝나게 된다고 한다. 막무가내로 내쫓는 건 아니고, 빼야할 시기 1~2년 전에 알려준다고 한다.


이 곳의 몇 가지 독특한 규칙이 있는데, 첫 번째는 '주거 제한'이다. 이곳은 법률상 '정원'이기 때문에, 주거지가 따로 있어야만 임대할 수 있고, 4월부터 10월까지만 숙박이 가능하다. 덴마크는 집을 구하는 게 어렵진 않아서 이 조건이 저소득층을 배제하는 조건은 결코 아니다. 덴마크에서 '집'은 국가가 보장하는 '기본권'에 가깝기 때문이다.


덴마크 내에는 소셜 하우징(사회적 주택) 시스템이 매우 강력하다. 덴마크 인구의 20%는 이 사회적 주택에 살고 있다고 하며, 이는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이기 때문에 '저소득층만 들어가는 임대 아파트'라는 낙인이 없다. 고소득자도, 학생도, 연금 생활자도 모두 같은 단지에 섞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소셜 믹스'가 이루어지고, 이는 특정 계층이 고립되는 '게토화'를 방지한다. 집의 품질도 매우 좋고, 임대료도 매우 저렴하며, 그마저도 정부 보조금으로 많이 충당할 수 있다. 덴마크 주거 보조금의 철학은 '소득의 20~25% 이상을 주거비로 쓰지 않게 한다'는 점이라서, 소득 대비 월세가 너무 높다면 국가에서 그 차액의 일정 부분을 지원한다고 한다. 안정적인 '내 거주지'를 갖는 것이 사회 구조적으로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덴마크는 홈리스 숫자가 매우 적은 편이다. 덴마크 정부는 '하우징 퍼스트' 정책을 펼치면서, 홈리스에게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먼저 제공한다고 한다. 삶의 거점이 생겨야 치료도, 재활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게다가 집만 주는 게 아니라 거기서 잘 적응하고 살 수 있도록 돕는 사회복지사도 배치된다. 물론 그럼에도 홈리스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그들의 삶을 지원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안정적인 거주지'를 갖는 것이 어려운 우리나라와 덴마크를 비교해보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규칙은, 정원을 둘러싼 울타리의 높이가 너무 높지 않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웃과 단절되지 않고 서로 소통하며 풍경을 공유하기 위한 전통이라고 한다. 마지막 규칙은, 임대료가 저렴하게 유지되어 소득 수준에 상관 없이 누구나 자기 정원을 가질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콜로니헤베 협회에 가입된 정원은 '판매 가격 상한제'가 있어서,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터무니없는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게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우리에게 자신의 정원을 소개해주신 어르신의 정원과 오두막


견학 중인 우리에게 자신의 정원을 오픈해주신 어르신 분이 계셨는데, 그 정원은 정말 아름다웠고, 그곳을 가꾸고 있는 그 주민분의 표정은 참 행복해보였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삶이 얼마나 사람의 활력에 큰 영향을 주는지는 내가 몸소 겪어봐서 안다. 강 옆에 살며 매일 아침 내리쬐는 햇살을 즐기고, 푸릇푸릇한 나무들을 보고, 밤이 되면 별을 보던 삶을 의성에서 지난 3년간 살다가, 다시 서울에 와서 아침부터 밤까지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않고 사무실과 다섯평 남짓한 자취방을 지하(철)로 오가며 사는 삶을 살고 있는 요즘. 나의 체력은 훨씬 떨어졌고, 돈 걱정은 더 많이 하고, 에너지를 얻을 공간보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공간이 훨씬 많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이 삶이 디폴트라는 것.


콜로니헤베같은 임대 정원을 우리 나라 지자체에서 도입한다면, 도시민들에게 지역에서의 삶이 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나만의 정원과 오두막을 가지는 것이 땅을 소유(또는 임대)하고, 집을 짓고, 나무를 심고...하는 복잡한 절차 없이 신청 한 번으로 가능해진다면, 그리고 그 삶을 허허벌판에서 덩그러니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좀 더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이 더 쉬워지지 않을까? 모든 지역에 복제하긴 어렵겠지만, 우리나라에도 콜로니헤베를 해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지자체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들을 해보며, 오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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