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직원들이 얘기하는거 잘 못알아듣는데.. 어떻게 앤드류랑은 대화가 되지? 이게 너무 신기하다. 내가 호주 영어 알아듣나? 싱가폴 영어를 못알아듣나? 사적인 영어는 알아듣기 쉽지만 공적인 영어는 알아듣기 힘든걸까?
앤드류랑 한식당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다. 혼자서도 갔던 곳이었는데 소주가 너무 비싸고 혼자서 다 마실 수는 없었는데 소주를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다.
삼겹살을 구우면서 반찬 하나씩 먹을 때마다 내가 그 반찬에 대해 설명해주고 소주를 마실 때에는 두 손으로 따르면 두 손으로 받아야 돼, 그게 폴라이트야, 라고 했다. 한 손으로 따르면 한 손으로 받고 그런데 너보다 높은 사람하고 먹으면 그 때는 그 사람은 한 손으로 따라도 너는 두 손으로 받아야해, 라고 했는데 앤드류는 자신이 완벽히 이 룰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자기는 폴라이트한 사람이라서. 그래서 맞아, 너 진짜 폴라이트 퍼슨이야, 했더니 자신의 누나는 그래서 자기를 놀리기도 한다고 했다. 너무 폴라이트해서.
한식을 먹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정말 행복했다. 삼겹살 쌈 싸먹는거 가르치면서, 아 나는 내 진로를 잘못 선택한 것 같아, 외국인에게 한식 먹이는 그런 뭐 없나? 이런 생각이 들정도로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는 자신을 여기로 데려와서 너무 고맙다고 너무 맛있고 즐겁다고 했다. 그래서 니가 즐거워서 나는 너무 행복해! 했다. 그리고 삼겹살을 다 먹고도 계속 수다를 떨었는데, 나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좀비 얘기도 한것이다. 나는 원래 좀비 안좋아했는데 코비드 후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28일 후> 얘기도 했다. 좀비가 있는 세상에서 좀비로부터 도망쳐서 얼마 안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서도 강간을 하려는 남자가 있어서 등장인물들이 도망쳐야 했다. 좀비로부터 도망쳐 인간에게로 갔는데 다시 인간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다고. 이게 너무나 인상적이었다고, 좀비 월드는 곧 휴먼 월드라고 했더니 앤드류는 자신도 그 영화를 봤다면서 얘기할 수 있었던거다. 아니 내 영어 무슨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먹고 맥주 한 잔 하자고 하면서 내가 클락키로 가자고 했다. 거기 강 보면서 술 마실 수 있다고 해서 둘이 걷다가 자리잡고 앉아 맥주 마셨다. 앤드류는 일단 한 번 간곳은 다시 찾아갈 수 있고 방향도 어디인지 알아서 같이 걸으면 내가 지도를 안봐도 된다. 나는 지도 보는 내내 핸드폰을 함께 보면서 다녀야 하는데 앤드류는 처음 가는 길도 지도 찾아서 딱 익히고 핸드폰 집어넣고 가는거다. 내게는 없는 장점이다. 나는 이런것에 좀 약한편. 아니 근데 이 클락키가, 내가 밤에 온 적이 없어가지고 이런 분위기인줄 몰랐는데 하아- 미쳐버려. 분위기 진짜 죽이는거다. 밤이지, 야경 난리났지, 바다 보며 술마시지... ㅋ ㅑ ~ 낭만 쩐다 진짜.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고. 진짜 너무 좋아서 나도 그렇고 앤드류도 그렇고 정말 좋다는 말을 천번쯤 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술 취하면 영어가 더 잘되나봐. 완전 입터져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중엔 나 페미니스트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너는 백인남자라고 했다. 오늘 생각해보니 갑자기 너무 웃겨서 혼자 개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내가 인생을 살면서 백인 남자 만나서 너는 백인남자야 이럴 줄은 몰랐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다시 생각해도 너무 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는 내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그리고 그는 내게 '오늘이 나의 베스트데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갑자기 이런 시간이 온다고?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하여간 진짜 낭만 터지는 밤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어쩌다가 내가 여기에 와있고 이런 기분을 느끼지? 그는 내가 Can I ? 라고 시작되는 말을 할 때마다 Yes, you can 이 라고 해준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었다. 네가 굳이 영어를 공부하려는 이유가 뭐야? 라고. 영어를 공부해서 하고싶은게 있어? 라고. 그래서 나는 영어로 책을 쓰겠다는 얘기를 자세하게 했다. 그는 내 말을 곰곰 듣고 있다가 너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영어로 책 쓰면 앤드류에게도 보내줘야지 껄껄.
그는 '우리가 그 때 호텔 로비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어디서 만났을지 생각해봤어.' 라고 말했고,
'음 내가 어쩌면 호주 여행 가서 만났을 수 있겠지' 라고 내가 말했다.
그는 '한국 레스토랑에 가서 만났을 수도 있어.' 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다른 어딘가에서 만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만나지 못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거 맥주 때문이야. 내가 맥주 꺼냈더니 니가 굿 아이디어라고 했잖아."
"응 나는 생각도 못했거든."
"응 그래서 내가 같이 마시자고 했고 그래서 우리가 만났잖아. 나는 이게 다 맥주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빨래!"
"맞아, 너 빨래중이었지!"
"응 빨래가 되기를 기다리며 로비에 잇었잖아. 빨래를 안했으면 거기 없었을거야."
"맞아, 그러면 맥주랑 빨래 때문이네!"
우리가 만난 얘기와, 반짝거리는 강의 조명들과,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분위기 덕에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와 헤어지는데 그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건 지금 안하고 내일 할게 '라고 말했다. 나는 오늘 그에게 톡을 보내서 너가 어제 하고 싶은말 있는데 내일 하겠다고 했잖아. 기억해? 라고 물었다. 그는 I do remember 라고 했다. 말하기 민망하다고, 그리고 '네가 웃을거야' 라고 하더니, 결국 말했다. 그건 이런 문장으로 내게 왔다.
I don't have a wife or a girlfriend Or a family.
이게 니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었어?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했다. 비밀은 아니지만, 나는 와이프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어, 라고.
나는 '알아, 전에 니가 너 싱글이라고 말했잖아' 라고 답햇다.
나는 그의 말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냥 그랬다. 그런데 그는 내게 그걸 굳이 말하고 싶어했다.
내가 헤이팅 게임 읽으면서 진지한 남자에 대한 매력을 느꼈었는데, 어디서 이렇게 로맨스 소설 속에서 걸어나온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