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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훈 May 09. 2024

풀고 싶지 않은 방정식

영화<미지수>를 보고

지수를 찾아오는 우주. 영화 후반부, 지수가 우주의 엄마인 신애에게도 우주가 찾아오냐고 묻는 것을 볼 때, 지수는 우주가 이미 죽었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주가 지수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지수가 우주를 잊지 못했던 거 아닐까? 지수가 우주에게 “집에서 나가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했던 것, 시체가 화장실에 있는 상황에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우주와 함께 맑은 날 시체를 묻을 곳을 찾으러가는 것. 이러한 상황은 그저 지수가 우주와 함께 하는 꿈같은 시간을 깨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모른 척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나마 함께하고 싶고, 또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지수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현실이 아님을. 그래서 산에서 우주에게 ”알바는 왜 해가지고“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우주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우주가 등장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지수는 우주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반대로, 우주선의 발사가 성공되길 바라는 기완은 마치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우주도 자신의 기억에서 떠나갈 것이라는 비합리적인 기대를 한다. 누리호라는 우주선과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던 배달부 우주와의 연결고리는 “우주”라는 이름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주선이 지구를 떠났음에도 기완의 기억 속에서 우주는 여전히 떠나지 않고 남아있다.


신애에게 우주는 어떤 형태로 남아있을까? 지수가 신애에게 우주가 어머니도 칮아오냐고 묻자, 신애는 갑자기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총을 든다. 사실 이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수와 기완의 서사와 이 장면과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이또한 다소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신애의 서사가 더 다뤄지진 않았지만,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신애는 종종 우주를 만나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세 인물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우주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이었다. 우리는 때로 뉴스에서 안타까운 사고 를 당한 배달부의 소식을 접한다. 짧게 지나가는 그 뉴스의 대본 속 배달부는 누군가의 연인이었으며,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생생하게 살아있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주는 어디에 있을까? 기완의 바람처럼 우주 어딘가로 떠나갔을까, 아니면 여전히 지수와 신애와 기완의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을까. 이 영화의 제목은 “미지수”이다. 수학적 정의로서 미지수는 “그 값을 모르는 수”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값이 정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지수의 의미처럼, 우주의 죽음 또한 이미 정해져있고 달라지지 않을 사실이다. 하지만 지수, 신애, 기완은 그 사실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건 아닐까,우주가 등장하고,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지는 상황을 애써 모른척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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