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손>을 보고
House of the Seasons.
이 영화는 여름에 시작해, 겨울에 끝이 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미화의 자녀인 “늘봄”의 탄생을 통해 곧 겨울이 지나간 다음엔 봄이 다시 찾아올 것을 상상하게 한다. 한 개인의 삶은 그가 살아가는 세대와 무관하지 않다.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말과 행동은 그에겐 당연한 사고의 과정 끝에 나온 것일테다. 영화에서는 네 세대가 등장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장소는 그대로지만 풍경은 변화하듯, 시간이 흐름에 따라 김씨 집안을 이루는 구성원도 달라진다. 다만 다른 점은, 소멸의 가능성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승필과 말녀는 장손인 성진을 끔찍하게 여기고 챙긴다. 말녀는 가을과 함께 떠나가고, 승필은 겨울 풍경과 함께 눈 속으로 걸어간다.
할머니의 죽음, 친척 간의 갈등.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진부하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보편적이라는 말이 더욱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손자의 이름으로 된 통장에 찍힌 말녀와 승필의 이름을 보며, 자녀의 용돈에 손녀 몫은 다시 돌려주시는 말녀를 보며, 한 글자씩 눌러쓴 말녀의 요리 비법 책을 보며 그녀의 사랑의 표현법을 느낀다.
늘 봄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이 지어진 늘봄에게도 몇 번의 여름과 가을,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여러 계절을 통과하며, 삶의 계절을 지나간다. 봄처럼 새롭게 피어났던 어린 시절과 푸르른 청년의 시절을 닮은 여름, 붉게 익어가는 가을과 잎이 떨어져서 다시 땅으로 가는 겨울. 봄과 여름의 계절을 지날 땐 마치 그 계절에만 머물러 있을 것 같지만, 우리에게도 언젠가 가을과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가을과 계절을 통과하는 이에게도 수줍게 피어났던 봄과 찬란히 빛났던 여름이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