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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휘 Jan 07. 2024

텃밭을 가꾸며

채소가 저절로 자라는 게 아니었다

2023년의 중요한 성과, 한 일을 돌이켜보면 단연 텃밭모임이다. 4월부터 텃밭 모임을 시작했다. 팜투테이블(Farm to Table)을 해보겠노라고 야심차게 시작했다. 처음에는 온갖 씨앗을 구해다가 싹을 틔워 심었다.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씨앗에서 정말 먹을 수 있을 정도까지 작물을 키우기란 완전 초보자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싹을 틔웠지만 자라지 않았고, 자라도 너무 작은 크기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았고, 잘 자라는데 관리를 잘 못 해서 걷어내 버린 작물도 여럿. 


심기만 하면 잘 자랄 줄 알았는데, 키우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었다.


모종을 사서 심은 것은 그나마 좀 자랐지만, 시장에서 보던 크고 탐스러운 작물은 볼 수가 없었다. 모종 하나에 고추 하나가 열리는 식이니, 팜투테이블은 요원했다. 깻잎은 초보자가 정말 키우기 쉽다고 했는데 벌레가 너무 먹어 온전한 잎이 없었다. 상추도 초보자에게 쉽다고 들었는데, 웃자라기만 하고 잎이 커지지 않았다. 파도 모종 상태에서 전혀 자라지 않았다. 토종씨앗을 얻어다가 싹을 곱게 틔웠지만, 싹을 흙에 옮겨심고 나서 하루만에 다 타죽었다. 엉망진창으로 텃밭을 하며, 많이 반성했다. 정말 큰 문제는 작물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실패의 원인도 몰랐다는 점이다.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발소리를 너무 안 들려줘서 그랬나보다. 


사진으로는 커보이지만 실제로는 작고 가늘고 소중한 수확물 (쪽파와 감자)


결국, 텃밭 가꾸기는 쫄딱 망했다. 그나마 애플민트, 바질과 같은 아이들은 정말 번성하면서 자라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도 잎이 싱싱하고 윤기나지는 않았던 걸 보면 그 아이들도 정말 잡초의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던 듯 하다. 10월에 비실비실한 작물을 다 뽑아내고 밭을 정리하면서, 정말 이게 그냥 자라는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좋은 농부가 아니라는 것도.


영어 표현에 ‘green Thumb’라는 표현이 있다. 어린 시절에 <초록색 엄지손가락을 가진 소년>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초록색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원예 금손, 천부적 식집사를 일컫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초록색 엄지손가락은커녕, 손을 대면 죽고 안 대도 죽는 ‘검은 엄지손가락’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 텃밭 가꾸기와 더불어 요리교실도 기획해서 진행했었다. 원래는 텃밭 작물을 활용해서 요리교실을 하려고 했으나 텃밭 작물이 그 정도로 충분히 자라지 못해서 재료를 결국 다 사서 진행했다. 매월 텃밭 작물을 활용한 반찬만들기도 진행했는데, 애플민트와 바질을 활용한 치미추리(멕시코 음식으로 페스토 같은 것)를 한 번 만들어 먹은 이후 다 재료를 사서 진행했다. 


참 다양하게 만들어 먹었다. 명절 기념 비건 잡채에 나물까지!!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함께 식사를 만들어 먹는 시간은 더없이 행복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야외에서 먹으면서 한껏 낭만을 누리기도 했다. 대단치 않은 음식이어도 함께 재료를 다듬고 만들고, 생각보다 맛있음에 기뻐하고, 남은 재료를 살뜰하게 나누어 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채식 생활에 작은 지지대가 되어 주었다.


결국, 텃밭가꾸기와 식생활 프로그램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생명을 가꾸는 것은 참 너무 어려운 일이고,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텃밭이나 요리모임을 위해 함께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친환경적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그 관계가 남았다. 결국 우리 삶에는 관계와 지지가 가장 중요하니까.


2024년에는 이 모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텃밭을 다시 한다면 정말 마음먹고 공부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더 들여야 하겠지. 작물 하나를 키우는 데 얼마나 정성과 품이 많이 드는지 깨달은 이상, 선뜻 용기가 더 나지 않는다. 아무튼, 올해 나는 마트에서 채소를 하나 사더라도 이걸 키우기까지 얼마나 노력이 들어가는지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중요한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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