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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휘 Feb 18. 2024

선택지가 있는 삶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다.

우리 가족 중에 내가 제일 음식을 두루두루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다. 나는 고기만 안 먹는다뿐 회도 먹고, 생선, 어패류도 먹고, 고수나 허브 종류도 대체로 잘 먹는다. 나의 언니는 고기는 기본적으로 안 먹고 거기에 더해 회를 못 먹는다거나, 갑각류를 못 먹는다거나 등등 더 많이 가린다. 신념 때문이 아니라 비린내를 못 견뎌서 그렇다. 그래서 바닷가에 가면 갈 식당이 없어서 엄청 곤란한데 작년에 거기에 대한 글을 쓴 적 있다(여기)     

얼마 전 서울나들이를 온 언니를 데리고 다니며 외식을 하면서 느낀 단상.

점심을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먹으려고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언니는 유부우동을 골랐다. 나도 그걸 골랐다. 사실 메뉴판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언니는 “어차피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제한적이잖니”라고 말했다. 유부우동은 맛이 없었다. 


저녁에는 언니를 데리고 비건 식당에 갔다. ‘여기 있는 거 다 먹을 수 있는 거니까, 먹고 싶은 거 다 골라봐.’라고 하고 메뉴판을 들이밀었다. 언니는 한참을 메뉴판을 정독하더니, 메뉴를 골랐다. 그 중 하나는 비건 팟타이였다. 나는 언니가 팟타이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 날 알았다. 언니는 동남아 음식을 먹어 본 적 없었다. 똠얌꿍을 먹어본 적 없냐는 나의 질문에 “새우가 들어가서,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라는 대답을 들으면서, 그렇구나, 가뜩이나 친구도 없으니 외식도 안 하고, 나처럼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지방에는 비건 식당도 없으니 다양한 음식을 먹을 기회가 없었구나.



메뉴판에 있는 모든 메뉴를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게 아니다. 나는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다. 학창시절, 급식표를 보며 내가 먹을 수 있는 국과 반찬이 세 개 이상 있는 날(아주 드문 날이다)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고, 지금도 식당에 가면 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지 훑어본 다음 다행히 선택지가 두 개 이상이라면 그 중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곤 한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지 없는지 찾는 건 너무 당연한 거라서, 메뉴판에 있는 모든 메뉴를 먹을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것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비건 식당에서는, 모든 메뉴를 먹을 수 있기에 ‘먹고 싶은지’만 생각해서 고르면 된다. 이게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인지!     


언니는 나보다 더 가리는 것이 많으니 ‘메뉴판에 있는 모든 메뉴를 다 고를 수 있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언니는 평생 ‘아무 거나 먹어라’ ‘이것도 좀 먹어 봐라’는 타박만 받으면서 살아 왔다. 사실 나도 언니와 여행을 할 때 같이 갈 식당이 안 맞아서 짜증을 많이 냈다. 그런데 비건 식당의 수많은 선택지를 보며, 개인 입맛의 잘못이 아니라 선택지가 없는 사회가 문제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같이 옷을 사러 가서도 ‘선택지 없는 삶’에 대한 생각을 했다. SPA브랜드 매장에 가서 이것저것 입어 보라고 권했는데, 언니 몸에 맞는 사이즈가 없는 디자인이 많았다. 언니는 흔히 한국 여성복들이 만드는 55~77사이즈 외의 사이즈를 입는다. 그러니 보통 옷가게에 언니 사이즈가 없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집어도, 사이즈가 없어서 입어 볼 수 없다. 이 넓은 매장에 이렇게 다양한 디자인이 있는데 왜 XL, XXL는 매장에 없는 거지?


언니는 평생 “살 빼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들어 왔고, 몸매품평이 더 일상적이었던 20여년 전에는 운전할 때 길에서 옆 운전자로부터 – 생판 남인데! - “이 돼지야! 집에나 있지 왜 차 끌고 나왔냐!”는 말도 자주 들었다. 고백하자면 나도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들어 왔기에 언니가 뚱뚱한 게 문제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그날에서야, 언니가 뚱뚱한 게 문제가 아니라 매장에 다양한 사이즈가 없는 게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빅사이즈 의류를 파는 곳도 몇 군데 없고, 디자인도 다양하지 않고, 지방에서는 더 없고! 그리고 주어진 사이즈에 몸을 맞추지 않아서 계속 비난받는 현실. 몸매품평을 하고, 남에게 폭언을 했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최소한 면전에 대놓고는) 비난받지 않지만, 몸매품평을 당하는 사람은 계속 겪어야 하는 현실.     


채식도 마찬가지다. 채식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이나 비아냥을 들어야 하는 일은 잦다. 내 앞에 나를 위한 선택지가 펼쳐져 있는 게 아니라, 선택지에 맞추려고 노력해야 하고, 맞추지 못한다고 또는 그저 존재만으로 비난받는다. (김밥에 햄 뺀다는 내 글에 달린 많은 분들의 경험담을 한번 보시길


비건 식당의 수많은 메뉴와, SPA브랜드 매장을 보면서, 나보다 더 많은 제약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겪었던 삶은, ‘나한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당연한 사회’이다. 비난은 들어도 긍정이나 수용은 없는 사회.     


아, 그래서 언니는 저런 이상한 옷만 입는구나, 가뜩이나 자기 관리에 무심한 사람인데 맞는 옷 사기도 힘들어서 사이즈가 맞고 가격이 저렴하면 아무거나 입어 왔구나, 그래서 저렇게 볼품없는 차림새로 다니게 되었구나.     


메뉴판에서 내가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해서 음식을 고르고, 가게에서 입고 싶으냐 입고 싶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옷을 고르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전혀 당연하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처음 겪는 일, 누군가는 아직도 경험해보지 못 한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맞는 생일상에는 선택지가 가득하다. 우리는 좋은 것을 가득 올리고 무엇이든 집어 보라고 한다. 여기 복이 있다, 무엇이든 너의 것이니 마음껏 집으라고 한다. 그 많은 선택지와 그 많은 사랑과 칭찬은, 점점 자라면서 사라진다. 아주 적은 선택지와, 비난만이 남을 뿐. 다시 우리의 삶이 선택지가 많은 사회였으면 좋겠다. 우리의 식탁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식탁이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모두를 포용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잘못된 게 아니라 상차림이 부족한 것이라고, 네가 잘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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