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기

2021년의 봄을 기억하며

by Davca

근 한 달간 여러 가지 이유로 기록을 쉬었다. (사실 이런 패턴이 반복되긴 한다. 그럼에도 다시 시작한다는 건 나에게 꽤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적어도 '포기'한 것은 아니기에.) 현안을 해결하는 것에 포인트를 맞추다 보니, 5,6년 전 은행원으로 근무할 때가 떠올랐다.


오늘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 연장 건에 대한 심사 진행과정과 결과에 내 하루의 무게중심이 쏠려있었다. 검은색 작은 은행용 포켓 수첩에는, 업무와 관련해서 챙겨야 할 일들만 적혀 있었고 이에 대한 생각과 고민 만으로 하루를 채워갔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 자기반성, 피드백을 통한 성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이걸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렇게 8년이 흘렀고, 결국 정체가 아닌 퇴보하던 나는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안정된 직장을 내 발로 걸어 나왔다.


그래서 더 동의하기 어려운 표현이 있다. '원래 직장인들이 그런 거지, 다들 그러고 살아'


위험하다. 나를 잃어감에 당위성을 불어넣고, 어쩔 수 없다고 다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얘기하는 건, 어차피 우리는 우리의 삶은 지켜내고 찾을 수 없는 것이며 스스로가 아닌 누군가가 원하고 디자인 해 놓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때의 난, 왜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얘길 해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리석게도 말이다.



내가 지금 후회하는 것은, 좀 더 일찍 책을 가까이하고, 사색을 하며, 나의 삶을 고민하고 생각하며 기록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마흔이 넘어 버린 지금에라도 이렇게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삶의 궤적이 있다는 것이고, 이에 감사한 마음 정도는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듣고 감상에 젖고 글을 써 내려가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리곤 이내, 늘 가까이 두던 '음악'을 잊고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만큼 내 삶이 팍팍해졌구나 싶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하루를 보내며, 나의 감성과 감상에 영감을 불어넣었던 음악을 들어가며 글을 쓰는 게 행복했던 그때가 있었다. 사랑을 하던 때, 이별을 감내하던 때, 그 어떤 것들도 피하고 싶었던 그때마다 난 늘 음악을 들었고 Groove 함에 내 감정 모두를 실었다. 유약했고 우유부단했으나 솔직했다. 나다웠다. 덜 성숙한 그대로, 있는 척하지 않아도 됐던 그때 난 나를 온전히 내 삶의 중심에 두었다.



그러다 현실을 알게 됐고 적응했다. 카멜레온처럼. 피부에 닿는 가벼운 봄바람마저 온몸으로 흡수할 만큼 예민해졌다. 눈치를 보게 되는 일상의 크기가 커질수록 상사의 이쁨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라 생각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생존해야 했기에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판단했고, 그랬기에 '나'라는 존재에 대한 숙고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멀어졌다. 어렸던 그때의 나다웠던 자신과.


그때의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았고, 음악을 들으며 한없이 걸으며 잡다한 생각을 하며 행복함을 느꼈다. 별 것 아닌 사실에 웃고, 자연과 계절의 변화에 감탄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공상하는 것을 즐겼다. 그랬기에, 여럿이 있는 자리가 어색했고 불편했다. 그저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누군가와 '엮이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이 있었다. 감정에 솔직했고 그랬기에 더 출렁였다. 그래도 나다웠고 그게 나였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나는 변했다.


어느 순간부터 난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리더십도 뛰어난 새로운 인물이 되어 있었고, 마치 양가를 반복하던 삶에서 생활기록부 상 전형적인 모범생으로 탈바꿈한 기분이었다. 양적 팽창을 거듭하는 인간관계에서 발만 담근 채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시간들이 늘어났고, 마치 그것이 내 자산이 된 것 같았다. 많은 이들이 나를 찾을 때엔 우쭐함마저 있었다. 착각이었지만 인지할 수 없었다. 그때 내가 쓰고 있던 탈과 어울리던 춤을 추고 있었으니까.


그곳에 '나'는 없었다. 직장에서 나를 내려놓고, 직무에 충실한 또 다른 인물로 거듭나는 것이 당연하다 말하는 이들에게 반론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들의 얘기도 맞는 말이기에. 다만 하루아침에 새로운 인물로 탈바꿈하면서 나는 더 눈치를 보게 되었고, 틀에 맞는 인격체를 주조하기 시작했으며 나를 잃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니 무엇이 맞는지는 논의할 대상은 아닌 듯싶다. 카멜레온으로 내 삶에 충직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시 음악을 듣는다.
그때의 나를 또 한 번 만나보고 싶기에





그때의 음악을 찾아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를 설레게 했던 그 음악과 나의 상황들을. 25년 전 일인데, 해묵은 감정과 특정 상황에서의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떠오른다. 소름 돋을 만큼 생생하게 올라오는 기억들의 조합은 그때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던 음악들과 버무려져 있다.


미숙했지만 솔직했고, 곁에는 나의 사람들이 있었다. 아픔도 나였고, 환희도 내게 있었다. 온전히 나의 것을 누리고 나의 하루를 살았다. 명상 없이도 '나'로 살 수 있었고, 하루하루 설렘과 감사함으로 가득했다. 좋고 싫음의 경계가 명확했고,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때고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과는 달랐다.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고민과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혹 누군가 그때와 지금의 행복감의 차이를 물어온다면,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주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참 오랜만에, 그 음악들을 들으며 글을 쓴다.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감정과 티끌만큼 남아있는 순수함을 끌어안고 싶은 마음으로.


그때의 봄날도,

오늘처럼 눈부셨다.



다시 한번,

나는 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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