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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story Nov 01. 2024

팀장의 괴롭힘에 은행 퇴사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그만하자 생각 들 때

 머리로는 어떻게든 부여잡고 있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의 영역이 확장될수록 나의 가슴은 답답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만 놓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그리고 그 생각을 난 내 몸의 소리를 통해 듣게 되었다. 좋지 않은 패턴이긴 하나 이만큼 확실한 메시지도 없다. 이후 계획의 불확실함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와 이 두려움을 무시한 채 회피로 일관한 결과물인 퇴사를 선택한다면, 이는 무책임함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나의 뜻대로 빠르게 해결되기 어려울 수 있다. 모든 일이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순탄히 흘러가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런 내가, 그런 선택을 했다.


앞뒤 재지 않고 나만 본 선택을 했다. 당시의 나의 상태는 심각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한 시간 단위로 깼다. 그것도 눈물이 한가득 고인 채로.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1년 동안 업무 시간 내 공공연히 무시하고 회식 때 술 먹고 욕하며 다음 날 기억을 못 하고,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업무지시를 지속했던 팀장을 내가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절대 이런 리더가 되면 안 되겠다는 반면교사를 떠올릴 겨를 없이 나는 무너져갔다. 첫째 딸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을 그 무렵에.


내 왼편 넓지도 않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던 우리 팀, 그중 그 팀장이 있었다. 떠올리는 것조차 버거웠던 감정이 꽤 오래 지속되었고 이제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간다. 괜찮아질 만도 한데 여전히 거지 같은 기억이다. 그 사람의 괴롭힘이 퇴사의 시발점이자 촉발제였고 유일함이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수만 번도 곱씹고 이성을 찾고자 애썼으나 이윽고 실패였다. 그렇게 도망치듯 은행을 나왔고 그 후로 3개월은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 나를 추스르고 가족과 정말 오랜만에 가족처럼 살았다. 아내에게 미안했고 아무것도 모를 6개월 된 딸아이에게 미안했다. 은행 퇴사를 격하게 반대한 부모님과 한동안은 서먹한 관계가 이어졌다. 어렵사리 취업한 곳이 은행이었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기억 끝에 매달려있는 것은 자식 된 도리를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죄송스러움이다. 자식을 둔 존재로 기쁨의 원천일 수 있었던 그것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퇴사후회라고 하는 것을 가져본 적 없던 이유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러 가지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일에 빠지면 다른 것들을 잘 보지 못한다. 의도적으로 끊어내지 않으면 주 7일 365일 시간에 상관없이 일을 하는 사람이다. 덕분에 수면장애가 생겼고 건강은 나빠졌고 체중은 급격히 늘었다. 잘 빠지지도 않는 그 살들은 여전히 내게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다.

시간이 지난 지금, 당시 나의 생각이 나 스스로 만들어낸 마음의 구치소에 나 자신을 수감시킨 것이었음을 느낀다. 충분히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일이고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일이다. 쉽지는 않았겠으나 외부의 자극에 극도로 예민했고 그것이 과했다. 무엇으로라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이 너무 많았으나 그조차 생각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의 편향으로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 사람 때문이라고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런 사람들도 만나는 법이고 늘 문제의 조짐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그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열을 내며 다른 길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음으로 온전히 용서를 했어야 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반응의 정도와 빈도는 내가 통제할 수 있었다. 깊게 가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난 그 지점이 아쉽다. 은행을 퇴사한 시점 이후로 많은 것들이 잘 풀렸으나 마음 한 구석에, 첫 직장을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기억이 가끔 나를 흔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부끄러운 감정들이 피어나기도, 분노에 휩싸인 채로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전히 어른의 마음이 되지 못한 연유로 그렇게 분노하기도 한다. 덕분에 이렇게 잘 살아왔다고, 그때의 그 분노와 오기 덕분에 어떻게든 잘 살려고 노력했다고 듣지도 못할 메아리를 던져댔다.


그럼에도 그만하자 생각될 때, 나는 2016년 그해 봄을 떠올린다.


부러울 것 없는 봄날의 햇살들이 나무 틈 사이로 숲길을 비추고 그 길을 걷던 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제는 직감적으로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그때보다 좀 더 성숙한 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흔다섯이 되었고, 5년 후 난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된다. 지금으로선 도무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뜻이, 어쩌면 나의 계획과 뜻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인생임을 깨우쳐 많은 욕심, 걱정, 기대를 내려놓고 나 자신이 되어가는 인생을 살아야 함 인지도 모른다. 퇴사를 정당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어느 누구도 조직 안에서 완벽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다. 언젠가 끝이 있는 지금의 이 생활이 내 생에 전부인양 굴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이것이 회사생활의 밀도가 낮은 저열함을 추종하고자 함은 결코 아니며, 나의 생각과 판단과 가치관을 존중하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족할 수 있다고 본다. 적어도 비겁한 팀장의 괴롭힘에 퇴사를 선택하지 않을 정도의 당당함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의 결정이,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변수에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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