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할이 퀀텀점프하던 그때
아이러니하게도 이전에 받아보지 못했던 연봉에 대한 기쁨 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이 책임과 의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처우를 위해 난 온전히 준비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기대감과 현실성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며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을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 생각했으며 이는 예상보다 피로도가 높은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이제와 생각해 보건대, 나의 잠재력과 역량에 대한 확신보다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의 무게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좀 더 솔직해보자면, 자격미달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곳이 나의 자리가 아니었는지도.
그럼에도 이 두려움은 곧 기회였고 흔하게 경험해 볼 수 없는 일이었기에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은 회의실에 1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에 나와 대표가 앉았다. 간결했고 혼란스러웠고 일순간 욕심으로 뒤덮여 대표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기도 했으며 부족하다 느껴지는 감정마저 숨소리에 묻어나지 않도록 침묵했다. 얼마간의 말미를 달라는 부탁과 더불어 그곳을 나서며 한 겨울의 차디찬 공기를 두 뺨으로 받아냈다. 은근히 비추는 겨울날의 햇살에 감사했다.
2년이 흘렀다.
종종 그때를 떠올린다. 시간이 지나며 적절히 포장된 열정과 과장된 진심은 자연스레 거품이 빠졌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유쾌한 반복은 분명 아니었다. 이렇게라도 일을 해서 벌어야 나를 지키고 가족을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게 문제였다. '다들 이렇게 살아간다'는 인식이. 그때의 두려움이 어쩌면 내가 사필귀정의 신호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텨내며 곰삭은 동아줄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안쓰러운 내가 보였다. 변화해야 했지만 그때의 두려움을 벗어던지는 것은 더 큰 두려움이었기에 이도저도 아닌 날들이 켜켜이 쌓였다. 조직을, 회사를, 개인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을 원망한 적도 있었으나 성숙하지 못한 생각이었음을 인정한다. 그저 스스로 준비하지 못하여 벗어날 용기조차 낼 수 없었던 지난날들에 대해 반성함이 옳았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듯 이런 생각이 날 붙들 때, 멈춰 서서 귀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직감이 내 마음을 뒤덮었을 때 나는 이미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