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진심 어린 가스라이팅
2008년 초, 갑작스러운 의료사고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어느 주말 밤에 중환자실로 면회를 갔었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지금 난 할아버지를 뵈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 버스를 타고 그 시간에 할아버지를 찾아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몸을 움직이시긴 힘드셨으나 정신만은 온전하셨고 말씀을 하긴 어려우셨으나 손짓을 통해 의사소통은 가능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남기신 메시지:
안정적인 은행에 취업했으면 좋겠다
그리곤 며칠 지나지 않아, 이별이었다.
2007년 한 학기를 연장할 때까지 취업을 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손자가 어떻게든 홀로 일어서기를 바라셨겠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환경이, 시대가 녹록지 않았던 탓도 있었겠지만 그때까지의 안락한 생활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에, 그리 빡빡하지 않았던 집안 환경에 안정적인 생활을 해나갔던 터라 경제인구에 속하여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꿈으로 밥벌이를 하겠다는 다짐도 누구보다 강했었고.
하지만 현실은 나의 바람과는 달랐다. 적당히 나를 내려놓고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일견 보편타당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했다. 부모님, 동기들, 그리고 주위의 이름 모를 이들의 시선들을 무시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며 이를 극복하고 나의 길을 찾아가기엔 여전히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었다. 그것이 삶이고 주어진 인생에서 응당 지불해야 하는 경험의 비용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닫지 못했다. 그리곤 한 학기 연장한 졸업은 큰 의미를 부여해주지 못했다. 여전히 취업은 안되었고 난 근 1년이 지난 시점에야 은행 연수원에서 신입행원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 떠나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기에, 현재의 은행 또한 당시처럼 안정적인 직장의 외면과 내실을 갖추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재직하던 당시에는 충분히 그렇게 비칠만한 국내외 경제상황들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주목받았던 직장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주니어 레벨이었던 계장, 대리 시절에 내가 이곳에서 잘리거나 할 일을 걱정할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현재 차장 말호봉 정도의 동기들이 하고 있는 고민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진급의 경쟁과 성장하는 자녀들을 보며 이 두 역할에서의 괴리로 느껴지는 삶의 무게 때문이기에 직업적 안정성과는 조금 다른 문제라고 본다. 일찌감치 조직을 떠나온 내가 무엇이 옳고, 어떤 직장이 좋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는 없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난 특정의 이유로 인해 중도포기한 것이고 새로움을 선택해 이동하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만한 지표를 제공하는 것은 다소 위험한 편향된 의견일 것이기 때문이다.
직업적 안정이라는 것이 각 개인에게 주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경제적 안정이, 누군가에게는 사회적 명예와 인정이, 또 누군가에게는 쫓겨날 걱정 없이 보장된 정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흔 중반에 있는 내 입장에서의 안정은 ‘심리적 동요 없이 기복이 크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이를 통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함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이 기준이면 얼마의 생활비와 관리비, 아이들의 교육비, 대출이자 정도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벌 수 있다면 그리고 이런 일을 통한 개인의 만족이 클 수 있는 일이라면 이는 안정적이라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 수준의 비용지출이 결코 낮지 않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점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연봉기대 수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 스스로를 옭아매고 갉아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살아보니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고, 우리의 삶은 어쩌면, 언제일지 모르는 이 끝을 향해 누가 좀 더 아름답고 의미 있게 걸어 나가느냐 하는 자기 평가과정 일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외견상 안정적인 직장으로 ‘여겨지는’ 곳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했던 우리 부모의 세대가 이런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평범하게 사는 것을 주문하고, 당신들의 자식들에게 이런 당부를 내어줌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살아오셨을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충고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어떤 자리에서든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사무공간에서 주어진 일을 빠르게 잘 해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시대에 산다. 남들과는 다른 시도와 행동을 하는 이들이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커리어의 시작으로 또 다른 인생을 즐기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우리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해낼 수 있는 별것 아닌 일들이 ‘별 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좀 더 넓은 마당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느끼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올곧은 이성과 읽고 쓰는 역량을 조금씩 갖추어 나가는 것이, 안정적인 직장에의 입사를 당부하는 것보다 현명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