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학습지도의 굴레
국민학교 시절, 엄마는 나와 여동생을 작은 앉은뱅이책상에 우리 둘을 앉혀놓고 공부를 가르치셨다.
그 과정이 내게 남긴 것은 분명하다. 내 선택권은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학습지를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지속했다. 덕분에 연산은 곧잘 했다. 물론 대입수능의 결과는 이와는 큰 관련이 없었다.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엄마들의 자녀로 구성된 인원으로 영어과외를 시작했다. 기억으론 이것도 불미스러운 일들로 몇 해 지속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국민학교 내내 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50분 학습, 10분 휴식의 스케줄로 엄격히 지도한 엄마의 덕분임은 분명했다. 난 공부가 즐겁지 않았으나, 안 하거나 못해서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리고 그때의 공부습관을 주도적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난 여지없이 무너졌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어느 지점에서인가 현재의 내가 되기까지 연관성이 전무한 일들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때 내가 더 좋아하던 일에, 요즈음의 분위기처럼 더 시도해 볼 수 있었다면 억지로 피아노 학원을 다니거나 합기도장에서 매일 대련을 하며 얻어맞고 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매일 해야 하는 과목과 분량을 정해둔다.
올해로 4학년이 된 첫째는 곧잘 적응했다. 속도도 빠르고 수학경시에서 매번 상도 탔다. 물론 고난도의 높은 수준에 이르는 시험은 아니나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이겨낸 결과 좋은 보상을 받은 것은 분명했다. 지금 이 시기에 이런 결과는 엄마가 만든다는 생각이다. 물론 문제는 아이가 풀고 공부는 아이가 하기에 당사자의 노력이 가장 큰 부분이겠으나, 스스로 통제력이 높은 수준에 있지 않은 아이들의 기준을 잡아주는 것은 오롯이 부모의 역할이다. 그래도 첫째는 첫째다. 이제 2학년이 되는 아들 녀석에 비하면 책임감 있는 누나의 모습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여준다. 종종 둘째의 공부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엄마도 곧잘 돕는다. 자기 방 청소는 알아서 잘하고 이젠 제법 내게 잔소리도 잘한다. 시간이 지나며 딸이 하는 잔소리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말투도 사용하는 언어도 엄마를 닮았다. 역시 아이들 앞에선 특히나 말을 조심해야 한다.
아내는 나에 비해 인내심의 강도가 높다.
오래 참고 기다린다. 답을 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을 진지하게 주시한다. 그래서 이 흐름을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여기거나 하면 언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도록 유도한다. 첫째는 요즘에야 예습을 할 정도에 도달했고 둘째는 여전히 서툴다. 자정이 되어야 그날의 공부를 끝내는 경우도 많았으나 성장에 대한 우려로 21시까지 마치는 것으로 제한을 두었다. 늦어도 22시 전에는 취침을 해야 한다.
이제 두 아이의 개학이 한 달여 남은 시점에서 아내의 마음은 분주하다. 강남 8 학군의 아이들은 어떨까도 궁금해진다. 아내의 말로는 이 정도는 아주 낮은 강도라 하는데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나는 아내의 방식을 존중한다. 무엇보다 아내 스스로 아이들의 문제를 직접 풀어보고, 자녀교육과 관련된 책에서 정보를 얻는 방식에 대해 동의한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정보의 획득과 계획의 정교함이 높은 수준으로 향상되는 것은 비단 나의 아내만은 아닐 것이다. 'K-엄마'의 노력은 무엇을 향해 있는 것일까? 나의 엄마가 그러했듯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따박따박 월급을 받는 그런 삶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러한 출발이 내게 줬던 기회들을 생각해 보면 이곳을 향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내가 지향하는 곳에 '읽고 쓰고 생각하고 질문하라'는 가훈을 지켜낼 수 있는 기준이 늘 베여있길 바란다.
부모로서, 가정의 선생님으로서 자녀들에게 해줘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그것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