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만'의 외출을 기대했을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아내'와'의 외출은 그래서 특별한 것이 없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보험금 지급신청을 위해 병원을 방문하여 서류를 발급받고, 근처 백화점으로 갔다. 들어서자마다 도넛 가게 앞에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을 봤다. 도넛세트를 사면 브로마이드를 주는데 우리 부부는 둘 다 그게 누군지를 알지 못했다. 오랜만에 온 백화점이기도 했는데 아침 일찍, 대략 11시경부터 도넛을 사려고 줄을 서 있는 광경이 우리에겐 낯설었다.
우리는 도넛가게를 지나 지하 식당가를 둘러본다. 이제 막 식사가 시작한 11시라 사람은 많지 않았고 여기저기 분주하게 음식을 하는 가게들의 메뉴를 살폈다. 아내는 쌀국수가 먹고 싶다 했다. 그렇다면 나는 볶음밥. 늘 지하 식당가에 오면 느끼지만, 미식을 경험하기보다는 한 끼를 때운다는 생각이 강하다. 밖에서 파는 같은 메뉴라고 해도 그런 생각을 떨치기 어려운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맛이 없는 것은 아닌데 또 엄청 맛있어서 자꾸 생각나는 그런 맛도 아니다. 뭘 먹어도 그렇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1인 샤부샤부 가게에서 어떤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아 정말 너무 오랜만에 해방됐어!
아내는 그 말이 유독 크게 들렸다고 했다. 누군가의 학부모였을 그분의 마음이 결국 아내의 마음이었다.
처음으로 온전히 두 아이의 방학, 근 두 달을 옆에서 지켜봤다. 집에 있던 난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도 가끔 돌리고 이불정리를 하는 등 집안일을 했다. 매주 화장실 청소도 깨끗이 했고 아이들의 학원 픽드롭도 함께 했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방학 때 매일 이걸 혼자 다하고 밥까지 챙겼어야 했단 사실이고 여기에 남편의 식사와 자질구레한 것들도 챙겨줘야 했을 것이다. 일부만을 하면서도 분주하다는 생각을 했던 나인데 이걸 그간 혼자서 해온 이 여자는 '엄마'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경외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에겐 백화점 지하 식당가 쌀국수의 맛이 좋고 나쁨이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밖에서 먹는 음식'이기에 의미는 충분한 것이고 맛까지 있다면 좋겠지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이거 저거 해달라는 아이들의 요청에 답하지 않고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존중받는 시간이니 부차적인 것은 중요치 않아 보였다.
이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올라가서 구경도 좀 하고, 애들 학원에서 올 시간에 맞춰 여유 있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개학에 맞춰 아내가 누리는 지극히 소소한 행복의 시간이다.
아까 도넛가게의 브로마이드 속 주인공은 아내와 나 둘 다 누군지 알지 못했다.
아내가 검색해서 찾긴 했는데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 같은데 가수라 했다. 이미 나이가 들어 요즘 나오는 연예인들에 대한 정보가 없는 우리는, 둘 다 웃었다. 그게 뭐 중요한가 싶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이 있는 것이다. 일곱 살 어린 아내가 곧 마흔이라니. 우리의 삶이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고되거나 즐거울 때에도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흐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 있고. 그래서 시간은 더 소중하다. 함께하는 시간도 소중하고, 나만의 시간도 소중하다. 물론 아이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애쓰는 시간의 가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 시간은 가족과 사랑 그리고 부모라는 명분으로 희생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으나 하루 24시간을 오롯이 쓸 수 있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희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근 두 달을 지켜본 이번 두 아이의 방학에서 몸소 체험한 것은, 나의 시간이 아이들의 일과를 중심으로 짜인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계획해도 아이들의 식사, 학원, 과외 등의 일정에 맞춰서 움직여야 한다. 개인적인 업무를 보더라도 그 시간을 피해서 해야 한다. 물론 개별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고 그러한 가정도 있을 것이라 본다. 다만 아직 모든 면에서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에 정서적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하는 선택을 우리 부부는 하지 못했다. 좀 더 편히 놓아주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내의 개학과 방학이 큰 차이가 없는 시기가 곧 찾아올 것이고 되려 그때는 아주 작은 크기의 공허함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내가 출산할 때에 이어 아이들의 방학기간 중 느낀 아내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희생을 생각하게 됨은 내겐 수확이었지만 아내에겐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랑을 받고 있는 두 아이와 그런 아이들을 지키는 아내 그리고 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