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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당근

거래의 완성은 떠나보내는 자의 마음에 좌우된다

by Johnstory

나는 당근을 하지 않는다.



중고거래를 할만한 물건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내가 받고 싶은, 받아야 하는 물건의 희망 중고가가 낮게 책정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고민을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가격으로도 중고거래를 한다고? 찾아보니 집도 있고 차도 있다. 나에게는 좀체 이해되지 않는 딴 나라의 우주 같았다. 그리고 그런 우주에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아내가 있다.




어제도 두건의 거래가 이루어졌다.


아내의 당근은 보통 식물이다. 이사 오고 근 2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식물을 보내는 아내의 마음은 현장에서 드러났는데 그 짧은 순간 아내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스스로 보내고자 선택했으나, 보내는 아쉬운 마음과 바뀐 환경에서도 지금처럼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들. 이것저것 설명해 주고 거래는 끝이 났다. 대게 이런 식물을 입양해 가려면 같은 아파트가 아니고선 차량이 필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내에게 물건을 받지도 않았는데 돈부터 보낸 상황들이 나로선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돈만 받고 잠수를 타거나 정상적인 거래로 볼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법적대응 방안이야 있겠으나, 한편으론 일면식 없는 타인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신뢰해야 하는지(물론 그 기반으로 중고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지향점이겠으나) 고민하게 된다.


나의 중고거래는, 2004년도 복학 후 고시반에 있던 시절 신림역 2호선 플랫폼 안에서 주고받았던 헌법과 경제학 강의 테이프가 처음이자 끝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고시생들의 커뮤니티 내에 중고용품의 거래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었고 합격생 혹은 중도 포기한 이들의 물건을 구입하면 정가에 비해 50% 이상은 싼 값에 거래할 수 있었다. 대부분 지하철 역 부근에서 대면하여 물건을 확인하고 현금을 넘겨주는 방식이었다. 지금의 중고거래와 다르지 않았다. 만약 거래의 약조 이후 물건을 보기 전에 돈을 먼저 보내라고 하는 이가 있었다면 나는 거기에 응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5천 원, 1만 원이라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 한 금액이라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물건을 왜 내어놓느냐 하는 것은 올린 이의 글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사고 싶어지는, 어떤 마음으로 내어놓는가 하는 것은 글만으로 알기 어렵다. 현실적인 ISTJ의 아내의 마지막 당부는 '어떻게 하면 이 식물을 잘 키우고 관리할 수 있는지'였고, 그간의 수고와 진심이 묻어났다. 이런 마음 또한 새로운 주인에게도 잘 전해졌을 것이라 믿는다. 중고거래에 그런 것까지 중요하냐 묻는다면, 기왕 돈을 주고 사는 중고물건이라면 나는 나름의 사연과 진심이 담겨있는 것을 사고 싶은 것이다. 비록 누군가가 사용하던 물건이지만 쓰면서도 그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들이 가끔씩 떠오른다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겠는가. ENFJ인 난 또 5천 원짜리 중고거래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해 본다. 식물을 가꾸는 취미가 있는 아내는 그렇게 식물들을 당근 했고 우리는 중고거래에 대한 얘기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저녁 산책을 했다.



떠나보내는 아내의 진심을 머금고 있는 이 친구들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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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른 분께서 이 몬스테라를 잘 키워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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