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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미래를 본다

틀린 적 없는 아내의 일갈

by Johnstory

아내는 지난 10년간 누구보다 나에 대한 데이터를 가공하지 않은 채로 보유한 유일한 존재이다.


서른다섯 해를 함께한 나의 엄마가 갖고 있을 아들에 대한 미화된 정보와 비견할만한 아내의 정보는 신뢰도가 높다. 극 F의 성향인 뼛속까지 문과출신의 나와는 정반대 편에 서있는 극 T의 공대생인 아내와의 대화는 여전히 어렵다. 어렵다기보다 '쉽지 않은' 쪽에 가깝겠다. 인지 구조상, 어떤 말을 할 때 아내는 그 말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한다. 그 말속에서 화자 혹은 등장인물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부터 하는 나는 닿을 수 없는 우주와도 같다.


그런 아내는 평소에도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게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신혼 초에는 표현에 인색한 아내의 성향, 그리고 반대인 나의 습관으로 투닥거린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결혼 10주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이건 그리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 나로선 심각하리만치 중요한 문제였다. 역시나 인간관계에서의 답은 한 가지다. 상대가 나와 같길 바라지 않아야 한다. 특히 부부라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할 필요가 있고, 그러한 존중으로 잔잔한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어쩌면 몇 번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던 위기의 상황들을 큰 탈없이 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 서로의 이해와 인내 그리고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말수가 많지 않은 아내는 정말 필요한 얘기를 한다.


내가 어떤 것들에 대한 질문을 할 때, 아내는 단 한 번도 건성의 대답이 없었다.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더라도 그것은 그간의 데이터에 근거한 '이유 있는 사실' 기반 답변이었다. 물론 그런 답변을 잘 받아들이고 따랐는지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늘, 아내가 애초에 우려하거나 예상했던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최근에 난 아내를 노스트라다무스 라 칭했다. 그러고 보니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나의 호시절은 언제쯤일까




아내는 성실하고도 계획성 있는 전형적인 은행원이었다.

그런 직업을 애들을 낳고 4년간의 육아휴직 끝에 퇴사를 하였으니, 많은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뜻도 있었지만 두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한다는 양가 부모와 남편의 시선이 더 큰 부담이었을 테니, 완벽하게 자신의 뜻으로 일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아내는 매우 현실적이며 기복이 없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이러이러한 일들을 잘 해왔으니 좋은 결과 있을 거야 라는 말보다, 지금의 상황과 오빠의 쓰임을 보니 이럴 수도 있겠다는 현실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해준다. 동기부여를 해준다거나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친절하고 상냥한 이는 아니란 얘기다. 그럼에도 난 그런 아내의 냉정함이 그 어떤 응원보다도 나를 깨우게 만들어준 요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은 응원 좀 해달라는 말 보다, 당신의 판단은 어떤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이럴 때 아내는 가끔 다음 수, 그다음 수를 보는 것만 같은 전망을 내어놓는다. 역사적 시뮬레이션 기법과도 같은 아내의 분석은 놀랍다. 과거의 내가 행한 데이터들을 통해 미래의 결과들을 추정하며, 지난 시절에 있었던 극단적 사건들을 자신의 판단에 반영한다. 과거의 데이터가 없는 경우 분석을 유보하거나 어려워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놀랍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나는 다시 한번 놀란다.


아내는, 어쩌면 대한민국의 모든 아내들은 남편의 미래와 위험을 예상 혹은 인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자의 직감이 무섭다고 하는 이유는 감각적인 말과 행동에 이미 반영되어 있는 과거의 경험치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알지 못하는, 남편들은 알기 어려운 그녀들만의 사고회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다. 그러니 예전부터 '엄마말 들어서 손해 볼 건 없다' 거나 '아내 말 잘 들어라' 하는 얘기들을 왕왕 해왔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때론 아이 같기도 하지만, 유능한 팀원이 되어주기도 하고 많은 경우 컨설턴트로서 나를 지지하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하늘이 부여한 역할을 매 순간 수행하면서도 아내는 내게 '친절하지만은 않은' 다양한 역할을 해준다. 물론 그 어떤 아내가 남편의 성장과 성공을 바라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것이 가정의 안정과 풍요로움, 정신적 위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아내는 나의 호시절이 언제일지 기분 좋은 예측을 내어놓지 않는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십분 활용하고 계단 삼아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면서도 나의 흔들림에 대해 스스로의 불안을 내색하지 않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미안하다. 이럴 때도 아내는 여전히 말을 아낀다.



어쩌면 아내가 바라보는 나의, 우리의 미래가 곧 호시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기 때문인지 내심 반가운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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