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짧은 글을 한편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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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지금 난, 조금 다른 위치에 서있다.
진로와 인생의 결정은 저질러놓고 수습하는 타입이라 조직 내에서의 체계성은, 혼자가 된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되도록이면 그날 새벽에 눈을 떠 드는 감정과 생각으로 하루를 설계한다. 단,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는 루틴은 새벽러닝.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여유로워진 아침 탓에, 그날그날 '기분에 맞춰' 달린다. 30분만 달리자 생각하고 나갔는데, 유독 호흡이 편하고 몸이 가벼울 때가 있다. 이런 날은 15km 정도를 달리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뛰러 나가서, 하이킹을 하고 오기도 하고 두 시간 정도를 걷다 오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새벽에 땀을 흠뻑 내는 운동은 매일 이어간다.
집에서 와서 샤워를 하고 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정리한다. 보통은 눈을 뜨자마자 명상을 하는데 요즘은 필요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명상을 한다. 확실히 8년 전쯤 처음 명상이란 것을 제대로 해보자 마음먹었을 때에 비해 수월하다. 공원에서든 카페에서든 명상을 할 수 있다. 요즘 나의 명상 화두는 한 가지다.
행위하는 나와 의식하는 나를 완벽히 분리하는 작업
관찰자로서의 삶을 유지해 가는 것이, 내가 간단히 정의한 명상의 본질이다.
작년부터 지속적으로 도서관에서 탐독하는 책 가운데 하나가, <바가바드 기타>인데 좀 더 안정적인 명상을 하는데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매 순간 깨달음을 준다. 특히 감정의 동요가 심해질 때 보다 편하게 '행위하는 나'를 제어할 수 있다. 의식하는 진짜의 내가 설계하는 대로 행위하는 내가 온전히 움직일 수 있도록 마음을 지키고 다스리는 명상과, 심박수를 끌어올려 땀을 내는 운동을 통해 체력을 쌓아가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다.
이런 삶의 깨달음이, 높은 연봉을 받는 직장인으로 사는 것을 포기했기에 얻은 수확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급여소득자로 충실히 살아가며 생활하던 때에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간접경험으로부터의 깨우침이 많았던 것 같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마음과 환경의 어지러움이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내 머릿속은 얽힐 대로 얽혀있는 실타래 같은 상황이었다. 가장 자주 해야 했던 말이 떠오른다.
뭐부터 해야 하지?
시스템을 중요시하는 내가 혼란의 상황을 겪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임원이 되고 보니 오히려 뜻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가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나의 조직을 가꿔나가는 과정에 있어선 자유롭게 디자인하고 싶었으나 그 마저도 많은 제약이 있었다. 한 기업의 임원이면, 그 기업의 방향에 맞춰 지휘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나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난 기업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랐다. 나의 조직이 건강하게 오래 이 사회에서 성장하길 바랐다. 우리의 오늘이 레거시가 되어 자랑스러운 씨앗이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어느덧 내가 병적으로 듣기 싫어하는 말이, 내가 가장 잘해야 하는 말임을 깨달았을 때 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만들어내라
난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조직은 충분히 그러고서도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 시간들의 경험이 나를 지지해 주었고 신뢰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별종이 되어있었다. 혼돈이 시작되었다. 높은 수준의 보상과 직급이 주는 만족감을 반대급부로 하고 난 나 자신을 내어줘야만 했다. 그리고 난, 그럴 자신이 없었다. 뻔한 얘기일지 모르겠으나 연봉 2억을 포기하고 나는 나로 살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소소한 일들을 해내며 기획도 하고 상담도 한다. 여전히 책을 읽으며 글을 쓴다. 다양한 시도도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는 데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 미처 몰랐다. 그래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벼운 일들을 하는 중이다. 어마무시한 두려움과 걱정들이 날 주저앉게 만들거라 생각했는데, 별일 없이 잘 산다.
한발 멀어지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어떻게든 수습은 하고 있으니 난 내 노선대로 잘 살고 있는 셈이다. 회사에 있을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뻔한 내일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 새로운 이들을 알게 되고 일면식 없는 이들의 고민을 장문의 이메일을 통해 받으며 상담을 해주는 과정은 결코 뻔하지 않다. 돈을 버는 사고에서 확장되어 사람과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 자체가 감사하다. 하루를 이렇게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당장 내일 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겠으나 난 내가 생각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생각한 대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니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아쉽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아니나, 더 많은 일들을-나 자신과 사회를 위하 더 많은 일들을-할 수 있는 시간들이 지나버림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러나 이 또한 나의 선택이었다. 언제든지 난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이 내게 준 학습과 깨우침의 순간들은 행운이었고 행복이었다.
그런 밑거름으로 지금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 시간 덕분에 안정적인 가정을 이뤘고 두 아이를 얻게 되었으며 마흔이 넘어 내 명의의 집을 얻었다. 청약당첨이 행운이었고, 은행원에서부터 기업의 임원이 되기까지 지난 삶의 여정이 내게 남긴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지금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고 있다.
뻔하지 않은 내일을 기대하며,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음에.
그리고 그런 나의 삶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음에 더없이 감사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