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에 대하여

by Davca

첫째 딸아이의 어린이집 졸업식날.


일반적인 졸업식은 아니다. 회의 때나 하던 Zoom을 통해서, 딸아이 졸업식을 집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10만을 육박하는 시기이니만큼, 기분 내는 외식도 눈치가 보인다. 기껏해야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최선인 상황. 아이는 졸업의 순간을 훗날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기억의 필름을 되돌려 볼 때쯤 난 어떠한 모습일까.




며칠 후면 초등학생이 되는, 마지막 등원을 앞두고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졸업하게 되니까 기분이 어때? 시간이 빨리 간 것 같니?"

"시간은 빨리 갔어. 기분은... 잘 모르겠어."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결혼한 지 2,600일이 지났다는 아내의 말이 귓등을 스쳐갔다.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고 아이는 자랐으며 부부는 나이가 들었다.

화장실을 갈 때도 문을 챙겨 닫는 나이가 된 아이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제법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질투와 경쟁에 눈을 뜨고, 뒤쳐짐에 대한 불안도 생겨났으며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이 분명해졌다. 그림을 그리고 노는 시간보다 학습지를 풀고 엄마와 책을 읽으며 학원을 다니는 시간이 늘어났다. 35년 전 내가 겪었을 긴장의 시간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일상을 보내는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무엇이든 남들처럼 무난하게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도 같은 크기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너무 다행스러운 건, 아직까지 아빠의 품을 좋아한다는 사실. 곧 이때를 그리워하게 될 것임을 알기에 힘껏 달려와 안겨오는 순간을 온전히 누린다.

그렇게 사십 중반을 준비하면서 새삼 나이가 들어감을 느낀다. <서른, 아홉>을 보며 감정이입이 되어도 눈물은 흘리지 않음을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갈수록 어려워지는 줄임말에 대한 해독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먹던 것만 먹기를 원하고, 쓰던 물건만 쓰기를 원하며 복잡한 모든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 '예전 같지 않음'이 서럽다. 어느 순간 휴대전화를 교체하는 행복이 부담이 되어버렸다. 특히 기종을 바꾼다는 사실은 더욱이 그러하다. 변화와 적응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고 길을 찾아내던 나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이 밀려오기 전까지는 그나마 버틸만하다가, 이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며 스스로에게 싱거운 위로를 던진다. 그 시절 같이 교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학교 언덕을 오르던 그 친구들 모두 나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거니까. 누구나 피해 갈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팩트이기에.




아이는 커가고 부모는 늙어간다. 동일한 시간인데, 자람과 시들어감으로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아이에게는 더디 갈 시간이, 나에게는 곱절로 빠른 시간일 것이다. 거부권의 행사가 불가능한 자연의 섭리이기에 이 스펙트럼 위에 앞서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떠오른다.

우리의 부모님도 그러했을까. 1987년도의 추웠을 어느 날, 유치원을 졸업하는 나를 두고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을까. 그 감정은 뿌듯함이었을까 행복함이었을까 아님 약간의 쓸쓸함도 있었을까. 간혹 밀려오는 두려움은 어떻게 감내하셨을까.

감정선이 무엇이든 나의 길 역시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모습이겠지. 의심할 여지없이.



지나 온 시간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아내와 한참을 안고 있었다. 여자에서 엄마가 되었고 학부모가 될 준비를 그야말로 힘들게 했던 5년의 시간은, 별 탈 없이 보낼 수 있도록 매 순간 가슴 졸이고 애썼을 아내에 대한 고마움으로 물들여졌다. 더불어 라이딩에 큰 도움을 주신 어머니께도 졸업의 순간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이 행사의 마무리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집이다. 오늘따라 맛있다. 짜장은 언제나처럼 친숙하고 탕수육은 그때처럼 식탁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렇게 집안의 큰 행사가 마무리되어간다. 주인공의 바람대로 탕수육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영어 과외를 나선다. 학교도 가기 전에 고생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아내에게 몇 마디 투덜댔더니 우리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학교 분위기와 아이들의 수준에 대한 답가가 식어버린 쓴 커피 마냥 돌아왔다. 아니 그럴 거면 그냥 학원만 다니지 학교에는 왜 가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된다. 이 대목에서 다시 느낀다. 나는 분명 나이가 들어버린 아저씨이고 '라떼'를 찾는 꼰대가 된 것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아빠에서,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며 애써주는 낯선 '아버지'가 되어감에 적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어색하다. 스스로 느끼는 책임감이 의무감에 변질되는 마음의 대열에 속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나도 변하고 아이도 변하겠지만, 함께 한 시간 동안 인내하고 기다려 준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마음도 늘 그대로이길 소망하면서.


이전 03화불편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