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을 바라보든, 건너에서 나를 바라보든 상호 간 다름의 영역이 커지면 상대는 '이상한' 것이 되고 만다. 내가 하는 생각과 판단과 행동은 지극히 이성적인 것이고, 그들의 그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독선적인 행위로 규정되기 쉽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속 얘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얘기를 먼저 꺼내는 쪽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그러면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겠지 하고 덮어둔 적도, 이건 대립의 날이 결국 나를 향해 오는 칼날이 되겠구나 싶어 무게중심이 쏠리는 방향으로 적절히 편승한 적도 있었다. 뭐가 되었든 불편한 사람들과의 섞임은 불편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게 업무적인 것이든 개인적인 것이든.
학창 시절에 유독 그 학급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세력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운과 여파는 파도처럼 넘실댔고 종종 백사장에 그려둔 내 영역을 아무렇지 않게 침범했다. 마음속 깊은 동조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그러려니를 반복했다.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체념은 가능했다. 하지만, 불편했다.
그런 기류는 직장에도 있다. 여태껏 있다. 바뀌지도 않는다. 콘텐츠만 다를 뿐 맥락은 유사하다.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좋은 성과를 내는 이들이 날 돋친 시선으로 권력에 대한 욕심과 더불어 칼자루를 잡게 되는 날이면 조직의 방향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동일한 역할을 하는 동료들과 상위 관리자 사이에서 자발적인 가교가 되고, 유약한 이들은 따개비 마냥 가교에 들러붙어 에너지를 빨아먹는다. 아이러니 한건 따개비들에 의해 에너지를 빨릴수록 가교는 더 강해지고 견고해진다. 정말 불편한 상황의 서막이다.
나는 따개비였을까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러했었다. 한참을 생각해도 따개비가 아니었던 때를 손쉽게 찾아낼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따개비가 되기를 바라다가 멈춰버린 적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철저하게 따개비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때도 있었다. 생각과 말과 행동 모두, 기준이 잡힌 '나의 것'은 없었다. 당시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주류에 속해있는 편이 여러모로 수월할 것임이 자명했기에 너무 '쉬운' 선택을 했고 그 결과 '불편한 사람들'과의 동침이 시작되었다. 생각해보면 딱히 승진에 대한 욕심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동 떨어짐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그것이 나의 평판(이라기보다 험담에 가까운 이야기)에 영향이 미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머지않아 드러난 사실. 두려움으로 말미암은 선택은 나의 불편함을 압도하지 못했다. 한두 번의 동조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매 순간 영혼 없는 지지를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불편한 사람들과의 불편한 이별.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별의 순간도 참 불편했다.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이고 몇 번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미련함의 대가였다. 단지 '일'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불필요한 생각이 불편한 상황을 만들었다.
끝이 보이는 관계, 선별적으로 대응해도 내 삶에 지장이 없는 관계, 무엇보다 내 마음이 동하지 않는 관계라면 애써 불편한 관계를 시작할 이유는 없다. 직장에서 만난 인연이든 악연이든, 기본적인 업무의 영역을 벗어난 친분의 영역은 분명한 '선택사항'이다. 그들과 이어가는 이야기의 끝은 행복과 거리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멀어지는 것이 어렵고 벗어나려 애쓸수록 올가미처럼 더 죄어온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호존중은 기본적인 매너이다. 최소한의 예를 다하지 않는 이에게 나의 곁을 내어 줄 이유는 없다. 또한 나의 자리를 침식당해서도 안된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업무상 불가피한 최소한의 영역만 공유하는 것이다. 조직에서의 업무란 단독적이기 어렵기에 100% 완벽한 철벽은 불가능하다.
불편한 이들과는 딱 그만큼의 사무적 관계. 그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