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에 집중할 수 없는 이유가 모자란 지능 탓인 건지 의심이 들던 때가 있었다.
닥치는 대로 읽고 밑줄 치고 정리했던 자기 계발서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는 법'이었다. 늘 부족하다 생각해왔고 지성 인성 품성 모든 영역에서 철들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을 갖고 살아온 탓에 어떻게든 틈새를 메우고 들키지 않는 삶을 살려했었다. 적절하게 포장하는 재능은 급여소득자로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고, 한동안의 시간 동안 무난하게 주어진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꽤나 도움이 되었다. 처세와 삶의 원리에 대한 학습이 문자 대신 경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적당히 성장하고 뒤처지지 않을 만큼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소극적인 공격보다 적극적인 방어자세가 익숙했다. 내일로 나아가기 위한 배움보다 오늘을 읽어내는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리석게도 이를 깨닫는 데에도 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완장을 찼다. 매일 달라져 있어야 했는데 늘 제자리였다. 그간의 처세술로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의 도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막연한 두려움 뒤에 숨어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다. 본능적으로는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길 위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혀야 한다고 외치는 세포들이 늘어났다. 해답을 찾기 위해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가리지 못했고 펴보지도 못할 책들에 집착했다. 쌓여만 가는 장바구니를 털어내듯 한 겨울 롱 패딩점퍼에서 빠져나와 달라붙은 거위털들을 떼어버리 듯 힘써봐도 비움보다 채움이 수월했다. 겉보기의 채움이었고 차오르지 못한 내면은 늘 그대로였기에 매 순간 속은 울렁거렸다.
두통과 현기증과 멀미의 세 박자가 톱니바퀴 마냥 돌아가기 시작할 때쯤 잠시만 현실을 외면해보고자 걸음을 멈추었다. 내 나이 마흔 중반 즈음엔 '성장'을 얘기할만한 책 한 권쯤은 아주 쉽게 써볼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벗어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적절한 운빨들이 따라 준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던 이유를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성장을 염두에 두고 사는 삶의 전제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었기에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내가 가진 감각을 오롯이 모르는 일이 어려웠다. 숲을 보면서 거침없이 행군하는 이등병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던 길 위에 있었기에 많은 시간의 흐름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가 없었다. 내가 누벼온 흔적 위에 뿌려둔 감상과 감정과 감성은 금세 날아가버렸다. 기록하지 않았으니 기억을 되살릴 방법이 없다. 자기 성찰만 늘어가는 다이어리에는 나의 오늘이 없었다. 그저 매 순간 더 나아져야 했기에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늘 나의 목표는 원대했고 꿈은 불가능을 향해 쏘아댔기에 '참 잘했어요'라는 리뷰는 일 년에 하루 이틀 정도. 모자라고 부족한 삶이라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였다.
도피해 온 이곳에서의 시간도 끝이 나겠지. 그럼 그간 난 무얼 했는지 또 살펴보겠지. 이런 건 성장 증후군? 피드백 증후군? 뭐 그런 유사한 이름을 붙여둬야만 할 것 같다. 성장을 꿈꾸고 성장하는 삶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망을 품었던 사람이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게 아니라는 사실을 5년쯤 달리다 보니 알게 된 정도의 기분이랄까. 그 시간 동안 오늘을 차곡차곡 누비는 걸음이었다면, 한 겨울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뽀드득 소리를 내며 새겨내는 발자국을 바라보며 내가 처음이라는 개척자적 우쭐함이 나의 우선순위였다면 나의 또 다른 페이지는 어떤 글로 채워졌을까.
구매의 성취감보다 대여의 즐거움을 아는 성숙함이 있었다면 나의 마음은 더 풍요로웠을까. 두서없이 떠오르는 질문에는 맥락이 없다. 채워야 살았다. 여백이 없으니 될 대로 채워진 삶이었다. 이래서 물건도 사람도 생각도 삶도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한 건가 싶다.
큰 욕심 한번 부려 앞으로 50년을 더 살 수 있다면, 불편하지 않은 삶이길 바란다. 마음이 동하고 진실로 그러길 원하는 걸음을 걷는 그런 삶이길 바란다. 사물을 올바로 보기 위해 밥 한수저에 새우젓, 오이지, 짠지 중 하나만 올려 먹는다 하는 어느 작가처럼 여백이 있는 삶이길 바란다. 언제든 나의 것을 채울 수 있게. 자기 계발서가 아닌 문학에서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생각하며 간결하게 쓸 수 있는 지혜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삶은 현실도피가 아닌 현실안주를 택하고 잠시 멈춰 서서 한 페이지, 한 문장에서 새로운 나의 삶을 그려 볼 여유가 생길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