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by Davca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다이어트라는 주제로 놓쳐버린 기쁨과 행복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난제였던 이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충격이 컸다.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하루의 자양분으로 삼고 있던 삼십 대에는 포기한 유희의 대가가 신경질로 발현되었다. 그때는 내가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이 비단 음식이 아닌 지금, 오늘이라는 시간을 알지 못했다.


다이어트라는 단어에 집착하며 병적으로 몰입하며 균형을 잃은 삶의 가장 큰 손실은 '오늘'이었다.


건강한 삶에 집중하는 것이 다이어트보다 더 효과적이다. 물론 체중감량 자체가 목적이라면 과정과 결과를 보게 되는 시점은 다소 늦어질 수 있으나, 오늘을 온전히 살아가며 그 순간 내 손에 쥐어지는 소소한 행복의 기회들을 눈치 보며 멀리할 이유가 없어진다. 체중 감량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건강한 삶이다. 습관을 바꾸고 먹는 것을 바꾸고 술 담배를 멀리하는 이유는 나에게 주어진 이승에서의 시간을 건강하게 누리고자 함이다. 부수적으로도 이는 나의 돈도 아껴준다. 잘 들어둔 보험이 숱하게 있다 하더라도, 보험금을 받기 위해 몸져누워 병원 신세를 질 필요는 없다.




아픈 동안에도 내가 지불해야 할 가장 큰 손실 또한 '오늘'이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대 위에 올라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내가 기억하지 못할 시간이라고 나를 위해 멈추거나 기다려주지 않는다. 돈을 지불하고 시간 또한 잃는 셈이다. 이러한 삶을 원하는 이들이 없으니 다이어트를 하는 것일 텐데(표면적으로 다른 이유인 경우도 물론 많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외형적인 모습에 집착하며 이를 악물고 참는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참아야 한다고 허벅지를 주먹으로 내리찍으며 스스로의 뇌를 설득하며 참아낸다. 그 과정이 유쾌할 리가 없다.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대상이 건강으로부터 '살'로 옮겨가면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피로도가 높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시도만큼이나 다양했던 실패의 이력을 복기하지 않더라도, 체중은 여러 가지 이유로 늘고 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근육이든 수분이든 그리고 그날의 대외활동과 대사에 따라 변화가 올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숫자에 비중을 두고 추적하는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두 발 사이에 찍혀있는 숫자만이 보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무작정 굶어버린다거나(이때의 금식은 평온함을 주는 단식과는 거리가 멀다) 무리하게 땀을 빼며 운동을 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놓아버리는 시점이 가까워지게 되면 하루에 두 번, 아침 그리고 자기 전에 체중계 위에 올라가며 이제는 이 체중계가 '싸구려'라 믿을 수 없다는 소리마저 하게 된다. 다시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 그나마 줄여놓은 체중은 하루 이틀 사이에 내가 가장 꺼려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지금의 이러했던 나의 모습은 잊은 채 이 과정을 반복한다. 망각의 동물에게 내려진 가혹한 형벌과도 같다. 고군분투의 역사 속에서도 시간은 모범생이다.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한다. 후회와 반성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둔 채.



건강한 생각, 건강한 음식 그리고 건강한 몸. 하루를 견인하는 좋은 에너지를 단편적인 집착으로 고갈하지 않는 삶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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