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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빈 Feb 06. 2022

레트로는 끝났다 말하는 사람들에게

쯔양이 내돈내산 극찬한 황지살 맛집 용산 <상록수> 브랜드 기획 노트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외식업도 마찬가지. 일에 몸담근지 10년차가 되어보니 어렸을때 먹었던 아이템들이 다시금 붐업의 조짐을 기다리고 있는 포인트를 목격할 때 가 있다.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는 이유다. 다채로운 먹거리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외식업의 이상향이지만 실제적으로 우리네 외식은 그다지 다양하지 못하다. 한국 사람들의 보수적인 음식 철학과 입맛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가격이 저렴해 비관여 구매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라면 카테고리 중에서 여전히 신라면과 짜파게티가 부동의 판매율 1,2위를 다투는걸 보면서 사람들의 취향이라는 것이 바꾸기가 참 어렵다는걸 새삼 느끼는 부분이다.


치열한 유행의 흐름과 보수적인 소비자들의 취향 사이의 줄다리기. 이렇듯 재빠른 외식 시장에서 기획자인 내게 국내에서 불패의 외식 창업 콘셉트를 꼽으라면 '레트로'를 말 할 것이다. 앞서 유행은 돌고 돌다는 말처럼 과거에는 트렌디했던 어느 것이 지금에 와서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재생산 된다. 또 지금의 것 역시 미래에 또다른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소비될 것이다. 결국 내가 외식업에서 새롭게 정의 하고자 하는건 레트로란 더이상 과거의 것으로의 회귀가 아닌 늘상 우리에게 존재해오고 꿋꿋하게 살아남아온 스테디한 콘셉트를 의미한다. 컨셉츄얼하게 풀어낸 뉴트로와 레트로가 분명하게 다른 이유다. 레트로는 언제나 우리의 주변에 존재해왔다.


 레트로란 더이상 과거의 것으로의 회귀가 아닌 늘상 우리에게 존재해오고 꿋꿋하게 살아남아온 스테디한 콘셉트를 의미한다.

외식업 격전지 서울. 코로나 상황에도 변함이 없었다. 트렌드가 빠른만큼 산업 플레이어들의 대처 역시 신속했다. 오프라인은 위축되고 온라인은 확대됐다. 코로나 이전의 상황에 최적화 됐던 점포들은 대부분이 도태되었고 코로나 시대에 최적화된 새로운 많은 브랜드들이 도약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빠르게 시장진입에 성공했던 요인은 온라인 SNS와 크게 연결되었기 때문이었다. 오프라인에서 보이는 만큼 온라인에서 비추는 비주얼 역시 못지 않다. 이제 온라인을 부정할수 없는 시대로 완벽히 정착했다. 콘셉트가 무기가 되는 세상이 왔다.


<상록수> 브랜드 기획의 시작을 나는 왜 레트로를 선택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려 한다. 콘셉트가 난무하는 시장속에서 일상적 레트로를 떠올린건 일종의 역발상이었다. 새로운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뉴웨이브 레트로 콘셉트를 입고 멋지게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콘셉트를 개발하기 시작할때 오프라인에서의 룩(look)과 온라인에서의 룩을 구분지었다. 오프라인을 통해 보여지는 식당의 이미지는 편안함, 친숙함을 우선시 했다. 트렌드에 요동치지 않고 안정적인 재구매 유도를 위함이었다. 여기에는 과도한 콘셉트형 식당은 쉽게 피로해지는 것 같은 주관적인 취향도 반영됐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보여지는 식당의 룩은 오프라인과 달리 힙하고 트렌디할수 있도록 의도했다. 이를 위해 동시대의 인기 고깃집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나는 콘셉트를 개발하기 시작할때 오프라인에서의 룩(look)과 온라인에서의 룩을 구분지었다.


벤치마킹은 따라하는 것이 아닌 고찰하는 것


오봉쟁반 상차림과 째한 연두빛 네온 간판의 <잠수교집>, 적별돌 오래된 건물에 샛노란 간판과 짚불구이 우대갈비 퍼포먼스가 있는 <몽탄>, 강렬한 참숯화로와 컷팅방식이 인상적인 특수부위 전문 <남영돈>, 하얀타일과 금장 로고 그리고 연탄그릴링이 믹스된 <금돼지식당>과 샤또브리앙처럼 반듯한 원형으로 정형된 <뜨락>의 안심 그리고 동그랑땡을 연상시키는 <초원>의 등심주물럭까지. 이때 당시 온라인에서 크게 화제된 고깃집 브랜드들을 보면 3가지 시그니처 비주얼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파사드, 상차림, 그리고 새롭게 해석한 고기의 비주얼들이 온라인에서 저마다 고유성을 뽐냈다.


온라인에서 크게 화제된 고깃집 브랜드들을 보면 3가지 시그니처 비주얼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이를 통해 하나씩 도출했던 공식을 정리했다. 스퀘어가 아닌 동글동글 라운드 모양의 고기 모양을 표방하는 곳이 많았다. 소비자들은 동글동글한 모양에 좀더 식욕이 더욱 높아지는거라 추측해본다. 기존의 부위(메뉴)를 살짝 비틀어 새롭게 해석했다는 점 역시 독특했다. 메뉴명 네이밍은 직관적이면서(맛을 어느 정도 상상할수 있게 하는 것) 독창성을 가져가야 하는 어려운 영역이다. 때로는 브랜드명보다 판매되는 아이템의 네이밍이 흥망을 좌우할 때도 있기에 개인적으로 나는 브랜드명보다 메뉴명에 힘을 쏟는 편이다. 유명한 다른 식당들은 파사드에 고유 컬러링 또는 무드와 톤을 확실하게 가져갔고 프랜차이즈가 아닌 직영 베이스의 모델이라는 것 역시 눈여겨 봐야했다. <육시리> 라는 프랜차이즈로 외식업에 입문했던 나는 점포수가 곧 브랜드 인지도에 비례한다고 생각했지만 <상록수> 론칭을 통해 선입견을 완벽히 깰수 있었다. SNS를 움직이는 20-30 대중들의 관심은 유니크함을 쫒고 있었다.


내가 본 용산구 숙대입구 상권의 가능성


용산구 남영동 빌드업 프로젝트를 우리 회사 트렌드빌더에서 2020년부터 시작했고 2년 가량 흐른 지금 실제로 우리를 포함해 추가로 다른 브랜드들이 들어오면서 상권이 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시작한 취지와 숙대입구 상권을 선택한 자세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 다른 글로 써둔게 있으니 참고 바란다.


<상록수>를 론칭할 입지상권으로 용산구 숙대입구역 부근을 선택한건 몇가지 이유에서다. 첫번째는 교통의 요지.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있고 강남, 강북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실제로 용산의 매장들에서는 서울 외 경기권 사람들이 모이기도 한다. 둘째는 최근 용리단길로 핫한 신용산역에서 삼각지역에 이르는 상권이 한강대로를 따라 숙대입구역(남영동,청파동,갈월동)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세번째는 재개발이 되지 않은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보증금과 임차료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는 낡은 상가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서울의 옛 정취가 남아있는 보물같은 컨디션의 건물들이 몇몇 눈에 보였다.


골목 어귀에 위치한 <상록수> 건물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근처에서 미용실을 하시던 아주머님이 운영하는 오뎅빠 자리였는데 아마 주변 사람들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오래된 컨디션의 건물부터 특히 가게로 진입하는 골목길이 만드는 바이브를 보고 "여기다!" 싶었으니까. 중개해주시던 부동산에서는 이런 낡은 곳을 굳이? 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점포를 본 순간 머릿속에는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서울 도심 속 전혀 서울스럽지 않은 추억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골목길 맛집을 구현해보리라. 청파동이라는 동네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뭔가 서울인데 알려지지 않은 동네 같은 느낌.

점포 발견 시 <점포> 내부의 모습

<상록수>를 기획할때 내가 가장 주의했던건 <육시리>를 포함해 프랜차이즈를 설계했던 이전의 방법들을 경계하고 새로운 전략으로 그려보자는 것이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 기획의 경우 전국 어느 상권에서나 통용되어야 하고 대중성이라는 강한 미션을 갖고 시작하기에 대개 복잡한 디테일 보다는 시그니처 메뉴아 한줄 카피라이팅 또는 눈에 띄는 인테리어 구현으로 직관적인 콘셉트를 지향햐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을 보면 대개 몇가지 키워드로 콘셉트가 정리되는 곳들이 많다는걸 볼수 있다. 

<상록수>에서는 이를 탈피하고 직관적인 메세지 전달 보다는 고객이 느낄 바이브 구현에 초점을 맞췄다.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많을수록 고객은 피로해진다. 누구나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식당이 되기를 바랬다.


세계관 정립과 '상록수' 라는 이름이 나오기 까지


<상록수>의 경우 이러한 직관적 키워드 전달 보다는 무드 구현에 노력했다. 요즘 많이 언급되는 일종의 세계관 구축 작업이 필요했는데, 대개 음식에 치중된 과거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아닌 브랜드 자체 가상의 스토리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상록수' 라는 단어가 떠오른건 점포를 계약한 후 안동으로 벤치마킹 투어를 가던 차 안이었다. 지방 소도시에 가면 흔히 '방석집' 이라 불리우는 술집들이 존재하다. 장미, 백합, 로즈마리, 오렌지 등 다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저마다 식물 이름을 상호로 하고 있다. 그 중 불현듯 '상록수' 라는 단어가 나의 눈에 띈 것이다.


전형적인 로컬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 담긴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에 상록수라는 상호의 방석집을 운영하던 아주머님이 가게를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식당을 오픈한다면? 그분의 취향과 손맛을 살려 음식을 차려낸다면? 등과 같이 머릿속에서 일종의 세계관이 잡히기 시작했다. 지금의 <상록수>의 외관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분위기가 아줌아줌 스러운 이유도 그러하다. 술집을 하던 분이셨으니 처음부터 장사가 잘 되진 않았을테지. 처음엔 술집을 운영하시다가 결국 고깃집으로 업종 변경을 하셨을거야. 라는 생각에 간판에 '구. 뒷골목의 추억' 이라는 옛 상호를 배치한 것도 내가 상상했던 일종의 세계관에 의해서다. 간판에 표기되어 있는 삼겹살과 꽃등심 그리고 닭발은 지금도 팔지 않는다. 팔지 않는 메뉴를 굳이 간판에 넣은 이유 역시 술집을 하다 장사로 넘어오신 아주머님의 고민이리 상상했던 세계관에 의해서다.

주변 간판집에 무심하게 주문 맡겼을 법한 <상록수> 간판 디자인


늘 푸르른 상록수처럼. 골목 한 켠에 늘 밝히고 오래 전부터 존재 해왔을 법한 느낌의 식당.  세계관과 네이밍둘의 합이 딱 맞아 떨어지던 순간이었다.


하이퍼-리얼리즘 레트로를 위한 오프라인 공간 구현


<상록수>는 음식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머무면서 공간이 주는 요소 요소를 느끼는 재미가 가득한 곳이다. 실제 지방에 있을 법한 오래된 식당보다 훨씬더 노포스러운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일상적인 공간을 더 일상적이게 만든 일종의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레트로를 재가공하여 새로운 장르를 만든 '뉴트로'와 <상록수>가 추구하는 찐레트로 가 다른 점이다. 오래동안 이 골목을 지켜왔을 법한 분위기 구현하기 위해 오프라인의 경우 새로운 아이디어 보다는 기존의 것을 차용하여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일종의 디테일 싸움이었다. 이를 위해 전국 팔도 지방의 오래된 식당들을 발굴 또 발굴했다. 

<상록수> 하이퍼 리얼리즘 인테리어를 위해 모았던 전국의 노포 식당 자료 중 일부

빅데이터 관점에서 전구의 노포 식당을 바라보니 일종의 코드가 발견됐다. 내가 찾았던 찐레트로의 핵심은 '무질서' 였다. 그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세월이 쌓인 곳들이 많았던 만큼 산만한 요소가 많았다. 간판부터 메뉴판, 가구, 가전, 집기 등이 무질서하게 배치 되었지만 묘하게 어우러지는 느낌. 식욕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파랑색 계열의 배색과 평소에 너무 튈까 망설였던 핑크 색과 같은 과감한 컬러들이 하나의 팝아트처럼 다양했다. 그러한 컬러들이 자연스레 녹아들수 있었던건 세월이 만든 복잡하고 산만한 내부 요소들 속에서 묻혔기 때문이었다. 강한 컬러들은 복잡한 구조로 보완하면 완충 된다. 레트로 무드 구현시 이점을 참고 하면 좋을 듯 하다.


내가 찾았던 찐레트로의 핵심은 '무질서' 였다. 강한 컬러들은 복잡한 구조로 보완하면 완충 된다.


내부 인테리어 역시 복잡한 무질서 속의 멋을 내기 위해 발란스 잡는데 주의했다. 레트로 표현시 '감도'에 민감해야 한다고 강조 하느 부분이기도 하다. 흔히 복고라고 통용되는 기존의 레트로 식당들이 쉽게 피로해지는점 역시 감도에 민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레트로는 과거에도 지금에도 또 미래에도 변함없이 우리 주변에 머무는 것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레트로들은 과거의 특정 시점을 잡고 그것을 구현하는데 목맸다. 나는 이런걸 투머치라고 한다. 기존의 레트로들이 공감할 수 없었던 이유다. 실제로 내가 다녔던 전국 어느 노포 식당에 가도 과거의 무드에 멈춰있던 곳은 없었다. 조금 느릴뿐 그곳들도 점진적으로 시대에 맞게 변화되고 있었다. 이렇듯 레트로 구현시 디테일은 저마다의 변화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요소들이 과한 레트로 콘셉트 구현의 예시


<상록수>는 오픈한지 이제 막 1년 6개월이 갓 지난 식당이지만 여전히 오시는 분들 중 오픈한지 얼마 안된 곳인걸 모르는 분들을 관찰할때면 오프라인 비주얼 구현에는 제법 성공한 것 같다. 하이퍼 리얼리즘의 레트로를 구현하기 위해 기존 점포가 갖는 컨디션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가정집스러운 구조를 살리고 방마다 분위기를 달리했다. 다양한 디테일 요소를 잡고 완성도를 위해 끊임없이 발품을 팔았다. 과거의 시점을 잡고 그 시절을 구현하는 것이 아닌 예전부터 지금까지 천천히 자리를 지켜온 듯한 무드를 지키는 것. 레트로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감도에 예민해지는 것이 필수다.

<상록수> 내부 인테리어 (1)
<상록수> 내부 인테리어 (2)
<상록수> 내부 인테리어 (3)

<상록수> 디테일을 위해 했던 노력들


이곳 청파동 골목에 녹아들기 위해 <상록수>는 디테일 구현에 힘썼다. 디테일에 변태처럼 집착 또 집착했다.

(좌) 공사전의 <상록수> 모습 / (우) 공사 완료 후 <상록수> 모습
새 문에 일부러 덧대는 세월의 흔적
오래된 덕트 녹슨 느낌 연출
일상적이고 친숙한 다양한 소품 세팅
울퉁불퉁 페인트 경계선 연출
빈 LPG 가스통이 주는 정겨움


- 세월이 덧대어진 느낌을 내기 위해 바닥도 일부는 기존 것을 살리고 단차를 두었음

- 노포 식당이라고 꼭 에어컨이랑 tv가 낡을 필요가 없음. 요즘 할머니들도 신형을 좋아하심.

- 추억의 LPG 가스통 디스플레이

- 업소용이 아닌 가정용 김치냉장고 사용

- 희미해진 벽면 페인트 경계선

- 낡은 고객용 앞치마를 위해 전국 팔도 식당들을 다니며 앞치마를 하나씩 구걸해왔음

- 대기 고객을 위한 캔커피, 캔코코아 제공

- 가정집을 하나 하나 개조한 느낌을 내기 위해 섹션별 테이블 크기와 모양을 달리함

- 의도적인 에어컨 배관과 전선을 노출 시킴으로써 오래된 분위기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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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요소들을 포함해 <상록수> 공간 곳곳에는 연출된 디테일 요소들이 가득 하다.


'황지살' SNS에서 터지는 음식과 비주얼 공식 찾기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를 친한 친구로 두면 좋은 점 중 하나가 피드별로 달리 나오는 반응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팔로워인데도 피드에 게재된 식당의 콘셉트에 따라서 좋아요와 게시물 저장의 갯수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상록수>를 SNS 상에서 알리기 위해서는 이곳만의 독특한 메뉴 콘텐츠가 필요했다. 그래서 삼겹살보다 키워드 경쟁이 덜한 특수부위 전문점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특수부위는 오랜 외식업 경험을 통해 한계성이 있다는걸 인지 하고 있었다. 뽈살, 관자살, 하얀살, 덜미살, 가브리살, 항정살 등 다양한 특수부위가 있는데 결국 소비자들이 익숙해 하는 돼지고기의 맛은 삼겹살 목살 그리고 그 다음 가브리살, 항정살까지다. 섣부른 단언일수 있지만 지금껏 내가 경험해온 고깃집 시장에서는 그러했다. 소비자들의 입맛은 여전히 보수적이다. 굴지의 돼지고기 브랜드들은 삼겹살, 목살, 가브리살, 항정살 이 네개의 카테고리에서 놀고 있다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상록수>의 '황지살' 이라는 키워드는 어렸을 때 부터 머릿속에 있었던 단어였다. 충청 지역에 친척분들이 많이 살고 있어 그곳에 놀러가면 삼촌이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사다 구워 주셨는데 이름이 '황지살' 이었던게 기억이 난다. 항정살을 충청도에서는 황지살이라고 불렀다. 참고로 경상도 지역에서는 항정살을 천겹살이라고 부른다. 항정살 하나에도 지역마다 달리 이름을 붙여지는 걸 보면서 분명히 한국 사람들은 항정살에 대한 무언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렇든 나는 사람들이 음식을 부르는 이름에 대해 주목하는 편이다. 같은 음식일지라도 불려지는 이름에 따라서 느껴지는 감도가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음식을 부르는 이름에 대해 주목하는 편이다. 같은 음식일지라도 불려지는 이름에 따라서 느껴지는 감도가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주변에 황지살이라는 단어를 물었을때 다들 무슨 부위인지 생소해하는걸 보면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특수부위... 황지살... 보통 기획자는 이럴 때 영감을 얻었다고들 한다. 나도 그러했다. 황지살이라는 어감이 새로우면서 친숙하게 느껴졌다. 외식업에서 새로움과 편안한 뉘앙스를 동시에 갖는건 매우 축복받은 일이다. 역시 새로움은 창조가 아닌 발견이라고 했던가. 그 후 나는 기존 충청 지역의 다소 지루한 황지살의 비주얼을 업그레이드 하여 황지살이라는 네이밍에 걸맞게 비주얼을 연구했다.

어렸을 때 접했던 충청 지역 황지살의 모양
냉동한 항정살을 원형으로 말아 썰어낸 <상록수>의 새로운 황지살


<상록수>만의 황지살 콘텐츠를 위해 의도적으로 수고스러움을 더했다. 껍데기항정이라 불리우는 두항정에서 지방층을 제거한후 항정살을 랩으로 돌돌 말아 하루 냉동한 뒤 분홍 소세지처럼 잘라 지금의 동글동글한 황지살을 완성했다. 기름기를 제거하는 수고스러운 과정을 위트있는 카피라이팅을 더해 고객에게 부가가치로 전달했다. 철저하게 온라인상의 비주얼 아이덴티티 구현을 위해 의도된 작업물이었다. 사람들 머리에 꽂히는 <상록수> 시그니처 비주얼을 만들기 위함이다. 접시에 담긴 고기 사진만 봐도 사람들이 "아~~ 그집!" 이라고 할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게 완성된 인스타그래머블한 황지살의 비주얼은 많은 고객분들이 자연스러운 SNS 게시물을 올릴 수 있도록 강력히 유도했다.

온라인 상의 <상록수> 시그니처 비주얼
황지살 메뉴에 대한 설명


앞어 언급했던 오프라인(공간)과 온라인(황지살) 시그니처 비주얼을 달리해 전략을 잡음으로써 기존에 없던 새로운 브랜드로 빠르게 알릴 수 있었다. <상록수>의 황지살은 곧 자사 쇼핑몰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판매 되어질 예정이다.

자사몰 브랜드 <캠핑정육점> 을 통해서 출시 예정인 상록수 황지살세트


사이드 메뉴, 마지막까지 강력하게 기억될 타이밍


고깃집 기획시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되는 부분이 사이드 메뉴다. 고깃집 차별화의 절반 이상이 조연 메뉴에서 갈리게 된다. 고기를 먹고 난 후 에는 면식 또는 밥식으로 고객의 식사메뉴 구매 니즈가 열리게 된다. 애초에 고객의 구매 의사가 가득 찬 상태에서 평범한 된장찌개와 냉면으로 어필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격이다. 사이드 메뉴는 고깃집에서 우리는 이정도 연구했어! 이렇게 달라! 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구매시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무차별적인 사이드 메뉴 차별화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록수>와 같은 노포식당에서 트러플치즈또같은 메뉴를 판매 하게 되면 쌓아온 콘셉트와 전문성까지 떨어뜨리게 된다. 고깃집에서는 사이드 메뉴의 구성이 전반적인 메뉴의 무드를 완성 짓는 것을 명심하자. 친숙함을 베이스로 적당한 위트 한 꼬집이 셀링 포인트가 된다. 

(이러한 감도를 익히기 위해서는 끊임 없는 벤치마킹과 고찰이 답인 것 같다)

2022년 <상록수> 최신 버전 메뉴판

<상록수>에 오면 익숙한 듯 하면서 새로운 메뉴들을 볼 수 있다. 기존의 뽈살을 스테이크처럼 재해석한 '후추뽈살', 오도독한 식감의 삼겹오돌뼈를 양념한 '오도독갈비', 새콤달콤 맵달 양념장이 중독성있는 '비빔수제비'와 시골에서 할머니가 해주시던 맛 그대로 '오이지냉국수' 그리고 잎새주와 솔의눈을 믹스해 만든 칵테일주 '잎솔루트' 까지. 어딘가 있을법 하지만(친숙함) 찾아 보면 없는(새로움) 메뉴들의 연속이다. 콘텐츠가 있는 메뉴들은 지루해지기 쉬운 식당 콘셉트에 끊임없이 재미와 활력을 채워준다. 가장 최근에 출시한 주사위 모양의 목살 역시 반응이 좋다. 앞서 강조했던 것 처럼 평범한 메뉴나 식재료일지라도 약간의 트위스트를 주고 새로운 네이밍을 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메뉴들이 탄생된다.

전국 최초 <상록수> 에서 개발한 잎솔루트
세기말 디자인 콘셉트를 입힌 <상록수> 주사위 목살


남들이 알려주지 않는 레트로 식당의 강점


<상록수>에서 판매하는 황지살의 가격은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다. 황지살 1인분 가격이면 프리이엄 돼지고기 전문점에 가서 그릴링 서비스가 더해진 형태로 고기를 맛볼수 있다. 실제로 필자는 프리미엄 돼지고깃집과 레트로풍의 고깃집을 동시에 운영중이다. 프리미엄 고깃집에서는 기본 상차림부터 그릴링 서비스를 포함해 부가적인 서비스가 많이 포함됐음에도 추가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요구가 잦고 가격에 대한 민감도도 높다. 반면에 레트로풍의 <상록수> 에서는 실제로 가격에 대한 언급이 다른 매장에 비해 적다는걸 발견하게 됐는데 이는 레트로 고유의 편안한 분위기가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을 상쇄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레트로 편안한 분위기는 고객이 느끼는 가격에 대한 민감도를 낮춘다. 


또한 레트로풍 콘셉트의 가장 큰 장점은 주류 판매율이 높다는 점이다. 주류 판매는 고깃집 운영시 수익률 극대화에 필수 조건이다. 불편한 의자에 좁은 간격의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내부일수록 반대로 테이블위 빈 소주병은 늘어난다. 접객 서비스에대한 기대치가 낮다는 것도 장점이다. 분위기를 잘 구현할수록 직원에게 기대하는 서비스보다 방문한 고객간의 이야기 소통에 집중하게 되는 걸 관찰할 수 있다. 레트로풍 식당에서 판매는 상품의 유니크함을 비롯해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불편함을 넘어선 또다른 경험의 가치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새롭게 레트로풍 콘셉트를 기획한다면 선술형 베이스가 가능한 아이템, 저가형보다는 중고가형 메뉴를 두는게 효과적일 것이다. 


온라인에서 노포식당 투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울경기권 내에서는 오래된 식당을 찾아 다니는 것 자체가 일종의 놀이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노포식당을 다녀보면 오래된 식당의 바이브와 업력만을 내세우고 기대보다 불친절과 상품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곳들이 많다. 하지만 분위기에 매료돼 SNS상에서 맛집으로 포장되곤 한다. 이 역시 내가 레트로 콘셉트가 여전히 시장 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단, 웰-메이드된 콘셉트라는 조건 하에서다) 


마지막으로 내돈내산으로 맛있게 먹고 가신 유투버 쯔양님의 <상록수> 영상

콘텐츠로 중무장한 식당은 끊임없는 콘텐츠 재생산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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