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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구슬 Mar 11. 2022

3. 우도, 섬 속의 섬. 그리고 집 떠나 집.

이동하는 집

#집 떠나 집.

제주에서 우도로 향하는 배편은 30여분 마다 있으며, 승선이 완료되면 지정된 시각보다 먼저 출발하기도 했다. 다시 우도로 가는 배에 차를 실는 우리는 제주로부터 멀어졌다. train sign을 만들며 바다를 항해해나가는 동안 약간의 불안감과 점점 커지는 우도의 모습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했다. 육지에서 제주를 올 때 탔던 웅장한 배에 비하면 날것 그대로인 것 같은 작은 배 위에서 오랜만에 마주하는 깊은 바다는 색이 더욱 짙었다. 제주의 깨끗한 해변이 에메랄드 빛이라면 이건 코발트블루랄까? 알 수 없는 깊이에 의한 어둠이 미묘한 심경을 자아냈다. 그리고 마치 처음 육지에서 제주 섬으로 왔을 때처럼, 깊은 바다는 다시 한번 섬과 섬을 구분 지었다.

사실,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여행은 익숙하고 편한 곳으로부터 멀어져서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르는 불편함과 위험의 가능성이 있는 모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을 가면 내가 사랑하는 멍멍이를 데려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촉촉한 코와 보드라운 털을 언제든지 만지고 쓰다듬을 수 없는, 미지의 곳으로 가는 것은 항상 고려와 고뇌를 거치는 일이었다. 따라서, 나에게 여행이란 일종의 환경 자극을 위해 스스로에게 지우는 의무와도 같을 때가 많았다.


따라서 이번 여행도, 한 달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그것도 '섬'에서 보내야 한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도 기술했듯, 사람은 어떠한 큰 변화를 겪고 나면 작은 일에는 초연 해지는 모양이다. 갑자기 새로운 자극과 힐링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온갖 애장품과 나름의 인테리어로 꾸며놓은 나의 방에서 나와 옷 몇 가지와 책 몇 권을 추려 이 먼 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엔 멍멍이를 꼭 챙겼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아주 큰 변화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곳에서부터도 또 배를 타고 바로 이곳, 우도로 오게 되었다. 사람일이란... 한번 파도를 타면 어디로 갈지 모른다. 제주까지 왔으니 우도까지도 오게 된 것이다.

대부분 시바견을 쫄보, 겁쟁이 등등 다양한 별명으로 부른다. 특히, 동물병원에서의 그들의 행태는 병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자자하다. 보호자로 하여금 "지금 우리 애가 큰일이 났나요?" 하며 달려 나오게 만드는 시바 스크림은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고작 혈액검사를 위해 손을 잡은 것이 시바 스크림의 트리거일 뿐인 경우가 많다.). 나 또한 병원에서 일하지만, 쿠에게 속아 병원에서 애간장을 태운 적이 많다. 시바. 겁쟁이들이다. 따라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쿠였다. 여유로운 척하면서도 속으로 스트레스받고 있는 누나와는 달리 쿠는 자기주장이 뚜렷해서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편이다. 이 시바견이 다시 스트레스를 받고, 배변 실금을 다시 나타내고, 실외 대소변에 적응하지 못하면(쿠는 자기가 심적으로 편안한 동네 멈머들과의 마킹 존을 꽤나 가렸다.) 아름다운 제주 힐링의 한 달은 어떤 괴로움으로 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시바견은 새로운 환경에서 완벽히 적응해냈다. 배변 실금도 내외부 구충제를 먹였을 때만 딱 한번 (평소에도 그렇듯) 소량만을 하였으며, 제주의 자유로운 개들이 만들어놓은 훌륭한 마킹 구역을 십 분 활용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집을 너무나도 즐거워했다. 육지의 아파트 환경에서 있기 힘든 복층 구조를 이 강아지는 무척 흥미로워하며, 오르내리려 하였다.(하지만 디스크 소견이 약간 보이므로 요즘은, 가족이 인간 엘리베이터가 되어준다.) 신기했다. 어디 가면, 혹여나 자신을 잃어버릴까 초조해하던 쿠였다. 여행 가는 날에도 자신을 꼭 데려가라고 케이지 옆에 달라붙어있던 쿠였다. 무슨 일일까? 또한 우도에 와서도 이 작은 강아지(이것은 나의 주관이다. 중형견은 심적으로 소형견에 가깝다는 것은 나의 주장이다.)는 이방 저 방 기웃거리며 즐거워했다. 마침 며칠 전에 이중섭거리를 갔다가 발견한 생가가 너무 코딱지 만해서 눈물이 날 뻔 한 이후로, 발견한 이 작은 방(하루만 묵을 거라 나와 쿠는 거실 겸 부엌에서, 부모님은 한칸에서 주무시기로 했다.)을 '우도 이중섭 체험'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작은 집에서도 행복했던 이중섭 가족을 본받자며 우리끼리 억지로 지어낸 말이기도 하다. 여하튼, 쿠는 지금 이곳에서도 코를 골며 잘 잔다. 적응력이 빨라진 원인이 도대체 뭘까? 생각하다가 알아냈다. 가족이 다 있기 때문.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제주에서는 항상 쿠와 함께한다. 새로운 곳이지만, 전혀 쿠가 두렵지 않은 까닭은 '가족'이 함께이기 때문이다. 누나도 그렇다. 외롭고 어색할지 모를 제주 생활에서 우리는 가끔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서로 도와가면서 알콩달콩 지내고 있기 때문에 제주에 무러무럭 적응하고 있다.

[바닷물이 무서워서 한 발 들고 있던 겁쟁이 시바 하쿠.

하고수동해수욕장은 이름은 어렵지만 모래가 매우 곱고 아름답다.]


여행이 편해지고 익숙해지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또한 그렇게나 애착을 갖고 있던 공간에서 벗어나도 이렇게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행복은 내가 갖고 있는 것들 때문이 아니라, 내게 있어 필수적인 사랑하는 이들 덕분에 보장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섬 속의 섬, 집 떠나 집 떠나 집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다. 내게 있어 집은 가족이 있는 공간이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일의 중압감 때문에 집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적었다. 집은 어쩌면 일상적인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이자 안식처로만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집은 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공간이며, 물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여러 곳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여행을 통해 배웠다. 용기는 덤이다.

[엄마가 찍어주신 사진 어느샌가 내 팔을 베고 자는 쿠와  잠에 깊이 든 나.]

[같이 일어나서 일출도 함께 기다리기.]


# 천진난만한 멍멍이들의 동네, 하고수동해수욕장

제주의 신비롭고 빼어난 자연환경을 보았기 때문에, 작은 섬 우도는 모든 곳이 귀여울 따름이었다. 돌담으로 구분 지어진 청보리밭이나, 곳곳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해변. 캠핑족이 모여있던 비양도. 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우도에서 자유롭게 다니던 순한 강아지들이다. 작은 섬이고, 배를 타야(배는 배표가 필요한데, 아직 멍멍이들은 신분증이 없다.) 제주로 나갈 수 있으니, 보호자들 또한 크게 걱정하지 않고 풀어놓는 듯하다. 또한 우도는 차편이 매우 적고 (우도로 갈 수 있는 차는 제한적이다.) 섬사람들 또한 강아지들을 잘 대해 주는 듯, 멍멍이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쿠는 덕분에 순한 강아지들을 여럿 사귈 수 있었는데, 작은 유토피아를 본 것 같았다.

[우도는 섬 속의 섬이라 그런지 동네를 돌아다니는 멍멍이들이 많다. 해변에서 만난 이 친구들도 어디선가 와서는 쿠랑 재미나게 오랫동안 놀았다. 미역도 어디선가 건져와서는 모아두기도 하고 바다를 첨벙첨벙 돌아다니는 이들을 따라다니느라 쿠도 어느샌가 파도가 덜 무서워졌다.

이들은 나타났을 때처럼 어느샌가 또 사라졌다. 아마 여행견이 익숙한가 보다. 행복해 보였다.]


# 분주한 아침의 섬, 비양도의 일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보니 등대는 밤새도록 일하고 있었다. 비양도에서 일출 보기는 구름 때문에 실패했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물고기를 잡고 날개를 말리는 건 봤다. 비양도는 일출 명소답게 백 패킹하는 분들이 많았다. 새벽에 본 알록달록한 텐트에는 일찍이 맛난 걸 얻어먹기 위해 마실 나온 멍멍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쿠는 오늘도 비양도 친구들과 잘 놀았다. 이곳 강아지들은 다 순하고 행복해 보인다. 새벽에 일출을 보기 위해 하나 둘 텐트 밖으로 나와 조용히 하늘을 지켜보던 사람들과 멍멍이들, 동물들이 모두 조용히 분주했던 풍경이 인상 깊었다.


# 산호가 부서져 만든 아름다운 놀이터. 사빈 백사

산호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산호해변. 모래가 아니라 작은 돌들로 구성되어 자글자글 소리가 난다. 담에서 뛰어내리다가 넘어졌는데 쿠가 웃고 있는 것 같은 건 기분 탓?! 팝콘 돌로 유명한 돌은 하얀 산호가 부서진 탓이다. 쿠는 웬일로 해변에 친구가 나오지 않아 엄마품에 꼭 안겨있었다.


# 신비한  동굴 탐험, 검멀레 해수욕장

여기는 해수욕장마다 모습이 다 다르다. 검멀레 해변은 진짜 검고 큰 돌이 파도에 깎여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아쉬운 점은 큰 동굴 안에 파도에 쓸려온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예쁜 와중에도 마음이 불편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살짝 돌아가다가 새로운 동굴을 발견했다. 캄캄한 와중에 바닷물이 더 차오르는 것 같아서 심장이 쫄깃했다. 나 드디어 동굴 탐험해봤다!


# 눈과 입이 모두 즐거운 우도 여행

바둑판처럼 돌담으로 구분 지어진 계단식 청보리밭과 알록달록한 집들, 관광 명소답게 입과 눈이 즐거운 음식점과 상점들. 작은 섬이지만 일박이일 동안 옹골차게 힐링하기 딱이다.


# 이외 가보면 좋은 곳

작은 섭지코지,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우도등대.


# 우도 안녕!

일박 이일 간 우리의 또 다른 집이 되어준 우도야, 고마워. 우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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