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 영화 베테랑 -
2020 NOVEMBER
인재채용 컨설턴트로서 처음으로 채용사와 미팅을 했다. 첫 외근이었다.
강남에 위치한 작은 기업이었는데, 과거 직장인 같았으면 법인카드로 시원하게 택시비 결제하고 두 다리 편하게 다녀왔었을테지만, 프리랜서는 법인카드가 없기 때문에, 외근을 가더라도 모두 개인 비용이다. 다행히 9호선 급행을 타고 다녀올 수 있어서 교통비는 왕복 3,000원 조금 안들었다. 비용도 절약했고, 운동도 되었고, 택시타는 것보다 훨씬 빨리 다녀올 수 있어서 일석삼조였다.
교육기간에 배웠던 것 중에 진심으로 느낀 것이 있다면, 절대 '을'처럼 일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거리를 주는 기업이든 훌륭한 인재든 그 가운데 위치한 우리들은 갑, 을, 병, 정도 아니고
모두 대등한 관계에서 전문가로 일하는 마인드셋이 중요다는 뜻이었다.
흔히들 이런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런 기업들을 고객사, 광고주, 혹은 client 라고 부르지만 그 '고객'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굉장히 우월감을 준다. 그렇지 않은가. 고객이 왕이다 라는 말도 있듯. 그래서 나는 고객사보다는 채용사 아니면 기업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쓰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사실 그게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로펌에서 근무했을 때만 해도 client 가 요청한 사항이면 무조건 응답해야 했었다. 17시50분에 고객사 빌링담당자가 전화와서 오늘까지 수정된 인보이스 재발행해서 보내 주세요. 라고 요청이 오면 천재지변이나 경조사로 인한 부재 이외에 그 어떤 excuse도 허용되지 않고 그날은 무조건 야근 각이었다. 고객이 늘 최우선이라는 마인드로 일하라고 했었으니까.
현실적으로 tangible goods 유형의 재화를 제공하는 제조업이나 소비재 아니고서는, intangible goods 즉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설팅 업종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나름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그리고 서로 잘 먹고 잘 살자고 협업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인데, 적어도 17시50분에 전화해서 저런 요청을 할거면 '퇴근시간 다 되서 이런 요청 드려 죄송합니다만' 과 같은 쿠션어라도 좀 달아주는 센스가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 채용기업을 대할 때는 저렇게 로펌비서 신입 때 뭣모르게 탑재했었던 굽신굽신 마인드, 교육받았던 '하라면 해, 고객의 부름인데 맞춰 드려야지' 이런 '을' 마인드는 좀 버리려고 한다. 너무 순수했던 사회초년생 시절이라 아직까지 내 DNA에 저런 마인드가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이 다가 아닌 세상이고, 심지어 지금 하는 업은 선수금 착수금 이런 형태로 가는 것이 아닌, 100% 후불제다. 성사가 되어야 돈을 받는 구조. 그러니 더더욱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 참, 아무리 내가 기업들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위치라는 마인드로 정신무장하고 일 한다고 해도, 표면적인 갑을 관계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겸손해야 하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필수다. 그렇지만 그것도 과유불급. 지나친 겸손, 이해, 배려는 자신의 멘탈에 독이 될 수도 있다. 그것도 정도껏, 자존심은 지키면서, 격(格) 떨어지지 않게.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이 외치던 이런 대사가 생각나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전문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은 지키면서 성장하자.
셀프모티베이터 하얀언니
(사진출서 getty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