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났고 진급시험이 지났고 학기는 마무리되가고 한 해는 저물어 간다. 수능만을 위해 달려온 교실의 풍경은 환희보다는 무기력함이 가득하다. '인생 목표를 잃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슬프게 들린다. 수능이, 대학이 뭐라고 이렇게 몇십 년 동안 아이들을 몰아세우는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 진급시험 앞에 서 있는 직장인의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능이 뭐라고, 좋은 대학 안 가도 괜찮아.'라는 말이 그 당시 괜찮지 않았던 것처럼 '승진이 뭐라고, 승진 안 하면 어때?'라는 말이 전혀 괜찮지 않게 들린다. 아직 끝난 게 아니고 이후에도 시간은 흐르고 인생은 계속될 것이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냥 이 순간이 그냥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목표들이 전부가 되는 순간, 기쁨보다는 버거움이, 목표가 이뤄지거나 없어지는 순간에는,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미련이 남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 언니와 익선동 거리를 걸었다. 주말 저녁에 종로에 나온 것이 오랜만이었고 눈에 비치는 풍경들이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술잔이 기울어질 때쯤 언니가 남편과 해외 살이를 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영어권 국가의 주재원이라니 다른 사람이 들으면 너무 부럽다고 자랑하는 거냐고 할 일이었다. 그런데 십몇 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다는 것이, 한국에서의 인연을 정리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고 했다. 힘들게 느껴졌던 회사생활이 내 전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떠나가는 발걸음에 미련이 가득하다. 언젠가는 회사를 그만 둘 거고, 내 삶에 회사 말고 다른 인생도 있을 거다라는 여러 이야기들이 실낱처럼 흩어져 버린다. 그 세상에 속해 있을 때는 모르지만 떠나가면 알게 된다. 내 인생에 전부였구나.
내 삶의 전부는?
좋아하는 일. 예전에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4시간 좋아하는 일만 생각하고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고 밤새도록 좋아하는 일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일이 되어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자 내가 없어진 기분이 들었다.
좋아했던 그 사람.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도 항상 처음과 같을 거라고, 우린 다른 연인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사소한 일에도 삐걱거렸고 가시 돋친 말을 내뿜고 있었다. 나의 직장. 회사 이름과 명함이 곧 나를 말해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직업을 말하는 것이 좋았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깊다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말 못 할 고충이 많았다.
소중한 내 아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내 모든 걸 다 주고픈 아이는 그 존재 자체로 기쁨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의 성장이 나의 성적표처럼 느껴져 아이를 채근하곤 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의 전부가 되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그 전부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바다처럼 나를 덮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