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창가에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여유롭게 차 한 잔 하는 시간을 상상해 보세요. 무척 느긋하고 편할 것 같죠? 요 며칠 몸이 안 좋기도 하고 휴가여서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오랜만에 주어진 나만을 위한 시간인데 왜 저는 마음이 바쁘고 답답할까요.
집이라는 공간은 내가 언제나 편히 쉴 수 있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회사 생활을 하며 낮에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다 보니 집이 잠깐 스쳐가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그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이 어색하고 정신없이 사는 직장의 나의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져요. 알게 모르게 바쁘게 일하는 나의 모습에 중독된 거 같고 그거에 따른 금단현상 같습니다.
집에 있으면 집안일을 해내야 할 거 같은 일종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들어요.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각 종 짐들을 다 제자리에 옮겨 둬야 할 거 같고 청소기, 세탁기, 식기세척기, 건조기가 쉼 없이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저에게 집안일을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그것을 못하는 나 사이에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저는 원칙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정한 것 세 가지만 하자고요. 아침에 먹은 밥그릇 정리 및 식기세척기 돌리기,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건 대충 올리고 로봇청소기 돌리기, 이불 정리 및 환기만 하자고요.
눈앞에 보이는 최소한의 집안일을 하니 집도 나름 깔끔하고 내가 뭔가 했다는 뿌듯함도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노트북을 꺼내서 글을 쓰고 유튜브를 보며 필기하고 궁금한 것 찾아보고 알아보고 외출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하니 여유롭게 하루를 지내도 뭔가 꽉 찬 기분이 들었어요.
공간의 힘과 한계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과 별로 친하지 않은 것 같아요. 길거리에 카페가 즐비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집 안의 거실의 역할을 카페가 대신하는 모습이라 느껴져요. 남이 타주는 커피가 다른 사람이 해주는 음식이 젤 맛있긴 하지만 내 집에서 마시는 커피와 밥이 가장 내 스타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공간이 지니는 힘도 무시할 수 없고요. 아무래도 집과 회사라는 공간은 구분되어 있고 거기서 내가 해야 할 말과 행동이 나눠지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고 어느 공간에서든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디지털 노마드 : 온라인을 기반으로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업무 또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노는 것도,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몸과 마음이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고 급격한 변화가 조금 잦아들면 집에서 생활하기, 집에서 편하게 있기가 익숙해질 거라 생각해요. 아직 저도 연습하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집에서 편히 쉬면서도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열심히 집과 친해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