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만 남기고 가는 삶

by 단비요가

좋아하는 영상이 있다.

23살, 직장에서 벌 돈을 믿고

워홀간 친구를 보러 캐나다로 여행을 결심했다.


9일 연장 휴일을 빼는 것이

겨드랑이에 땀이

허리까지 흐르는 게 느껴질 정도로

눈치 보이고 무서웠지만


꼭 가고 싶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9일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23살에 본 캐나다의 하늘은 광활했다.

아아, 하늘이 저어기 하늘 끝에서

저어기 하늘 끝까지 이어져 있구나.


그 하늘은 하나의 색이 아닌

하얗고 파랗고 분홍이 아닌

핑크색에 바이올렛 빛이었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페인트통에서

흐르는 여러 색들이 섞인 것 같이

멋있는 하늘을

시애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구경했다.


캐나다와, 국경 넘어간

시애틀과 포틀랜드의 이국적인 모습을

핸드폰으로 가득 담아 영상으로 만들었다.

글쎄 그 영상이 사라진 것이다.


외장하드를 복원하며 영상이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영상은 결국 못 찾고

소중하지 않다고 다 지워버렸던

지난 사진들을 몇천 장 찾았다.


와.. 이렇게 외장하드 메모리에

스쳐간 사진들도 다 복원을 해주는구나,


대학교 시절 사진

첫 직장 때 사진

지금은 안부를 모르는 친구들 사진

엄마 아빠 나의 젊은 날 사진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그건 그리운 기억이 아니라

그때 할 수 있던 가장 찬란한 삶 살기였다.


그리고 이러든 저러든

계속 함께하지 않고

졸업한 것들이기도 했다.


잘 지나왔어.

그리고 난 또 지나갈 테지.


삶이라는 채반 위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굵은 덩어리들만 남기는 기분이다.



f164334056.jpg 영상은 없고, 사진만 남았다.ㅎㅎ 시애틀의 파이크 플레이스




f162361400.jpg 그때 묵었던 시애틀의 그린투어리스트 호스텔, 좋은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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