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 보라띠공
작가에게 유럽 여행은 필수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서른을 훌쩍 넘겨 떠났다. 그것도 7개월 된 첫아이를 바구니에 태워서 말이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여정이었다. 남편이 해외 연수 중인 스트라스부르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해서는 TGV로 갈아타 스트라스부르 역에 도착했다. 이 먼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건 예쁘신 친정엄마 덕분이었다. 2주간의 짧은 여행 중 가장 큰 목표는 그림책을 사는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장소는 토미 웅거러 박물관이었다.
토미 웅거러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건 그 마을의 중심에 있는 성당인데, 신기하게도 그 성당은 그의 그림 속에서 신발, 얼굴, 장난감, 연필심, 젖병, 배, 로봇 등으로 변신한다. 특히 그의 작품 중 한국어 판으로 번역된 책이 전시되어 있어 더욱 반가웠다. 지역의 역사적 한계,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에 있었던 그 지역의 이야기가 그의 삽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작품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마주한 풍경들은 그림책 속에서도 많이 등장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지 않은 책들을 일찍 발견하고 사들였다. 두꺼운 하드커버 책들이었지만, 소장 가치가 높은 그림책을 빨간 캐리어에 담아 귀국했다. 그때 나는 학원을 운영하면서 작은 도서관도 겸하고 있었기에 그림책을 수집하는 일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지금은 그 도서관이 사라져 더는 볼 수 없지만,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는 프랑스의 풍경을 담은 그림책들은 특별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유럽의 풍경은 여전히 비슷하다. 그림책 속 파리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게 남아 있다. 다만, 지금의 파리는 검문검색이 많고, 거리에는 경찰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그래서인지 평화롭다는 느낌은 덜했지만, 택시 창문 너머로 보이던 파리의 하늘은 아름다웠다. 에펠탑은 멀리서도, 늦은 밤까지도 볼 수 있어서 기나긴 여행의 마무리를 달콤하게 장식했다.
파리의 돌바닥 길은 유모차를 끌기엔 힘들었지만, 다행히 1층 아파트를 구해 숙소에서의 시간은 편안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커다란 병 전용 분리수거함은 인상적이었다. 오랑주리, 루브르, 오르세 미술관 등을 둘러보면서 유럽의 독특한 분위기에 다시금 감탄했고, 세느강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폭이 좁아 놀랐다. 반면 건물들은 어마어마하게 컸고, 에펠탑은 상상 그 이상의 웅장함을 자랑했다.
개선문 위에서 바라본 에펠탑도 압도적이었지만, 늦은 밤 에펠탑 꼭대기에서 바라본 파리의 야경은 반짝임 그 자체였다. 마치 그곳에서 꿈을 꾼 듯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