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은 초록 띠공
2019년 9월, 내가 처음 홀로 떠난 여행지는 뉴욕이었다. 뉴저지 한인회 행사를 이유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맨하탄에 발을 딛자마자 마음은 이미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벽에 버스를 타고 뉴욕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곳에서의 첫 아침은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센트럴파크 벤치에 앉아 스케치북을 펼치고, 눈앞에 펼쳐진 공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침 산책을 하던 뉴요커들이 내게 미소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멋진 그림이에요."라고. 아마 그들에게 이른 아침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겠지. 그 순간이 나에게도 행복 그 자체였다.
맨하탄의 거리 곳곳을 걸으며 느낀 그 자유로움은 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노란 얼굴의 '부르클린 씨'였다. 혼자 걸으며 만난 그곳의 분위기가 그 노란 얼굴 속에 담겼다. 덤보 아래에서 바다를 보며 느꼈던 시원한 바람도, 그 작품 속에 녹아있었다. 다만 그 여행 이후 돌아오자마자 알레르기로 병원을 찾았고, 대상포진까지 겪으면서 몸은 고생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뉴욕에 남아 있었다. 그 경험 이후로 나는 틈틈이 영양제를 챙기게 되었다.
뉴욕에서의 경험은 나의 작품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내가 그린 얼굴 시리즈는 2020년 유나이티드 개인전의 주제가 되었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그리게 되었다. 최근에는 얼굴 대신 손가락을 닮은 형상을 그리며, 손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아마도 나에게 손이 자유로운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면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뉴욕의 건축물들을 떠올린다. 산티아고 깔라트라바의 '더 오큘러스', 구겐하임 미술관, 허드슨 야드의 베쓸, 하이라인파크에서 발견한 작은 의자, 자하 하디드의 오피스 건물들. 그곳에서 느꼈던 자유와 상상력을 담아, 나는 집의 형상이나 건축물을 닮은 그림들을 그려왔다. 그것이 내가 그리는 집 시리즈였고, 이제는 당구공이라는 새로운 소재로 내 생각들을 자유롭게 펼쳐나가고 있다.
당구공 위에 펼쳐진 색과 선들은 현실에서 벗어난 자유의 상징이다. 내가 그리는 형상은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니까,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초현실주의 건축가들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자유로움을 찾는 것처럼, 나도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들을 표현하며 그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
스카프가 당구대 위를 미끄러지듯 펼쳐진다. 그것은 나의 감정을 상징하는 스카프다. 세상은 자유롭고 싶지만, 인간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에 그 자유는 늘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 나는 그림 속에서 그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싶다. 예술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은 바로 그 자유,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찾은 나의 이야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