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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씨작가 Sep 10. 2024

당신은 어떤 공인가요?

하얀공은 주인공




포켓볼의 하얀 공은 다른 공들과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그 하얀 공이 나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늘도 섞이지 않는 색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색들은 서로 만나지만 결코 섞이지 않는 그 경계를 공 속에 담아내고 있다. 세상은 다양한 색의 공들이 부딪히고 어우러지는 곳인데, 나는 그 속에서 과연 어떤 공일까 고민했다. 결국, 나는 하얀 공처럼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얀색으로만 남을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내 색을 표현하고 싶었다. 섞이지 않는, 나만의 색을.




주인공 _ 40S _ Acrylic & Ink on Canvas _ 2024



색이 회전하는 모습, 공이 움직이는 모습을 내 그림 속에 담았다. 입체적인 구 시리즈를 계속 작업하다 보니, 문득 내가 세상을 어안렌즈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지만, 나 역시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요즘 모두가 도파민의 세계 속에 빠져가는 느낌도 들고, 그런 세상 속에서 나를 표현하는 색 또한 그 흐름과 충돌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 공으로 나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세상이 변하듯, 나도 변해가고 있다.



#Digital scarf _ 112.1X112.1cm __ Acrylic & Ink on Canvas _ 2022



비록 내 몸은 그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구 위에서 공전하고 있다. 태양은 대기 밖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나는 공으로 비유하고 싶다. 예술가로서, 그림과 글은 나의 삶을 기록하는 중요한 도구다. 그래서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데, 그 글들이 결국 모두 나의 말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모노드라마를 위해 준비했던 대본 일부를 그림 속에 담았고, 내 글 또한 공처럼 회전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림 속 사인을 찾아보면, 내 얼굴을 닮은 이니셜이 있다. 늘 웃는 얼굴을 그리고, 그 웃음은 나 자신을 닮아 있다.


(each) 직경 76.2cm _ 당.구.공  Acrylic&ink on canvas _ 2023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넉넉한 시간이 아니라, 오롯이 집중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레지던시 전시를 마무리하며 "주인공" 작업을 통해 나에게 더 집중하려 한다. 세상의 시작과 끝은 결국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포켓볼 속 16개의 공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책으로 정리해가고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포켓볼 대신 골프공을 그릴 걸 그랬다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 어안렌즈 시선으로 보기에 당구공이 더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당구 테이블 위에서 가까이 바라본 그 공들은,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시선에 가장 잘 맞는 대상이었다. 골프와 당구는 모두 구멍에 공을 넣는 목적을 지니고 있지만, 내가 원하는 시선을 담아내기엔 당구 테이블이 필요했다.



내 심장이 손톱만큼 자랐다 (with AI) 14 _ 91X91cm _ Acrylic and ink on canvas _ 2024




 나는 여전히 포켓볼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당구의 이야기가 아닌, 어안렌즈를 통해 확장된 세상의 이야기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다음 전시회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이 시선에 대해 소통하며, 나와 작품이 여러 시선 속에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함께 느껴보고 싶다.





내 심장이 손톱만큼 자랐다 (with AI) 24 _ 91X91cm _ Acrylic and ink on canvas _ 2024 복사




내 심장이 손톱만큼 자랐다.


초록공은 내게 그린라이트였고, 나에게는 사랑이었습니다.


호감을 얻고 끌림을 느끼는 순간을 저는 공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떤 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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