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3월부터 요양보호사와 조무사 강의를 시작했다.
임종 간호를 준비하면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떠올라 감당하기 힘들었다. 수업 준비를 하는 이틀 내내 울컥하고, 다운되는 느낌이었다. 13년을 종합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며 많은 죽음을 보고 어느 정도는 마음이 달련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들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나는 내 마지막 모습이 어떤 삶으로 마무리될지 생각해 봤나요?”
“내 삶이 한 달 남았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
이 질문에 누군가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수업을 하는 내내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질문에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임종 증상을 가르치면서 분위기가 다운되기 시작했고, 임종 간호 자료 화면을 보면서 결국에는 20명 남짓 되는 학생들이 다 울어버리고 한 명은 통곡까지 하는 상황까지 생겨버렸다.
지난번 다른 학생들을 수업했을 때도 각자의 잊고 있었던 부모님의 임종, 주변의 죽음이 떠올라 수업 시간 동안 울었던 분들이 많았다. 나도 울컥하고, 수업이 중지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번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수업을 하자 다짐했다. 하지만 마스크 속에 가려진 내 얼굴도 당황하고 울컥하긴 마찬가지였다. 마음속으로는 마스크가 서로의 슬픈 표정을 가려주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 앞에 있던 학생들의 표정을 다 보게 됐다면 아마 나도 그날의 수업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의 중반을 달려온 분들이었지만 죽음은 항상 멀리 있다 생각한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예전보다 고칠 수 없는 병보다는 고칠 수 있는 병이 많아졌고, 평균 수명도 2019년 기준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83.3세라고 하니 대부분 사고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죽음이 내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죽음은 생각하기 싫어요”
한 학생이 이야기했다. 임종 수업을 하니 기분이 너무 다운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한 질문에 뭔가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한 학생과 답을 듣지 못한 나는 그날 흐린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 때문에 더 다운됐나?’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동안 분위기를 다운시킨 것만 같아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시험에 나오는 문제만 가르쳐주고 임종 간호를 가르쳤다고 하기엔 나 스스로 더 큰 짐이 될 거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20분을 달려 집으로 왔을 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를 거쳐 간 수많은 죽음 중 가장 영향을 미친 죽음은 무엇일까?’
며칠 동안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다 나의 병원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쓰지 않으면 계속 나의 머릿속이 꽉 차 버릴 것만 같았다. 글을 쓰고 나의 생각을 비우고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래된 기억을 복기해보았다.
2003년 10월 2일. 비가 오는 날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한 병원의 응급실에 실습을 가게 되었다. 첫 실습 날 다급한 사이렌 소리로 구급차에 실려 온 환자는 자신의 집 앞에서 쓰러진 체 발견된 한 남자였다. 언제 쓰러져서 숨이 멈췄는지도 모르는 그는 이미 사후 강직이 심했고, 검게 변한 모습과 비에 맞아 쓰러진 체 며칠을 그 자리에 있었다.
술과 고된 노동의 흔적으로 앙상했던 그 모습엔 가족의 연락이나 주변의 관심도 없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처음 발견한 이웃 남자는
“ 매일 술, 농사 일지 뭐. 언제 그랬는지. 쯧.. ”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술로 찌든 사람들은 대부분 식음을 전폐하고 결국은 피를 토하고 간경화나 간암으로 죽는 비극적인 결말이 많았다. 나는 18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모습, 냄새,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나는 왜 그 날짜를 기억했을까?’
더듬어 생각해 보면 그날은 노인의 날이었다. 그날 사건을 보게 되어 더 애닳프고, 슬펐다.
노인의 날 어른 대접도 못 받고, 죽은 체 발견된 남자.
21살 간호과 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고, 나의 마지막 순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누구나 우리는 죽음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잘 살고 있는데 죽음을 생각해 봐야 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생의 절반이 가까워져 가면 한 번쯤은 나의 죽음, 마지막 순간은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될지 생각해 봐야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크게 외치게 했다. 그것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통해 지금은 개선장군이지만 너 또한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라는 의미로 생긴 풍속이다. 우리는 죽음을 기억할 때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가끔은 듣기 싫고, 생각하기 싫은 것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죽음이다.
죽음을 항상 기억할 때 특별하지 않은 오늘이 특별해지고,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된다.
나 스스로 ' 망했구나' 하며 마무리했던 그 수업이 그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내가 간호했던 환자들을 통해 어떻게 내가 수업을 할지,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할지 다시 고민해 보려고 한다. 아마 며칠 전 수업은 나를 스쳐 지나간 환자들이 나에게 말해준 건 아닐까?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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