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기가 팍팍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건의 자살에 관한 신문 기사나 뉴스를 마주하게 된다. 하루는 SNS에서 ‘자살’의 반대말은 ‘살자’라는 글을 보았다. 그 글자를 물끄러미 보던 나는 20년이 다되어 가지만 자살을 시도하여 병원으로 실려 온 한 환자가 떠오른다.
대학교 2학년 응급실 실습 때였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119가 들어왔다.
할머니의 등장과 함께 토할 것 같은 역한 냄새와 입에서는 푸른색 구토물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히스토리( 환자에게 병이 발생하여 병원에 오기까지 증상, 과거력 등을 묻는 과정)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평소 우울증이 있고, 가족과 불화가 있었던 할머니가 ‘그라목손’을 마셨다고 했다.
2003년 당시 시골에서는 그라목손이라는 제초제를 흔하게 사용했다.
그라목손을 잡초가 있는 밭에 뿌리면 2~3시간이 지나 풀들은 누렇게 말라죽었다. 농민들이 값싸게 살 수도 있었고, 자신들의 일을 덜어주는 약이라 농촌에서는 필수 약이었다. 집집마다 하나씩은 구비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그라목손은 ‘푸른색의 악마’라 할 정도로 맹독성이 강하고, 한두 모금만 물고 있다가 뱉어도 결국엔 고통스럽게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입에 닿는 양으로도 식도, 장기, 폐가 서서히 타가며 죽게 했다. 구토 유발제와 악취 유발제가 포함되어 마실 수 없게 만들었지만 술김에 홧김에 약을 먹고 의식을 잃은 채 구급차에 실려 오는 환자가 많았다.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환자에게 의료진은 다급하게 위세척을 실시했다. 역한 내용물이 나오지 않고 의식이 조금 돌아오고 나서야 입원 수속을 밟았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치료는 많지 않았다. 숨이 찬 환자에게 산소는 기본이지만 그라목손을 마신 환자에게 산소를 줄 수 없었다. 산소를 주게 되면 폐섬유화가 빨리 진행되어 마치 활활 타는 불에 폭탄을 넣는 격이었다. 결국엔 의료진과 가족들은 한 사람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몸부림치다 죽는 것을 봐야 했다.
적게는 3~4일, 많게는 일주일 정도 살아 있었다. 들리는 소문엔 그라목손은 죽어야 고통이 끝난다고 했다. 한순간에 숨도 쉴 수 없는 환자도 지옥 같은 시간이었고, 죽어가는 환자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지켜만 봐야 하는 의료진과 가족에겐 지울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 되었다.
그 당시 자살 환자에게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1주일 정도 살아 있게 된다면 엄청난 입원비로 남은 가족들에게도 가정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보호자는 그렇게 죽은 가족을 원망하게 하는 것이 그라목손의 결말이었다.
입원 후 최소한의 수액과 대증치료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할머니는 결국 3일째 되던 날 마른 풀이 마르듯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어떤 죽음이든 간호사를 택하고 일하면서 그냥 지나간 죽음은 없었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그만둔 지금도 나에게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는 항상 함께 한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는 어떻게 살고, 마지막 순간은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내 옆을 지킨다.
누구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 못 할 고통과 문제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 할머니에게 삶은 아침 이슬을 맞고 시작해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손톱이 닳도록 흙을 만지고 손에서 풀물이 단 하루도 씻겨나가지 않는 고단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잘 살려고 발버둥 쳤지만 삶은 항상 가난이란 굴레를 벗지 못했다. 내막을 구석구석 알 수는 없었지만 결국 현실도 고통이었고 마지막 또한 고통으로 마감되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어쩌면 좀 더 잘 살고자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자살’이라는 글자의 순서를 바꾸면 ‘살자’라는 의미가 되듯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 아닐까? 현실은 고통스럽지만 행복은 나의 선택이다. 잠시 그 충동을 억제하고,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삶의 결말도 달라졌을 텐데...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노라면 죽어가면서 다시 살고자 했고, 살려달라고 짐승처럼 애원하던 그 할머니가 지금도 불현듯 떠오른다.
* 그라목손은 강력한 독성과 농촌 노인들의 자살에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2012년 법적으로 사용 금지가 되었다. 그 후 농촌 자살률이 낮아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고, 최근에는 농약을 먹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확연히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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