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태 아저씨

알코올 중독에 관한 글 2

by 단단한 뇨뇨

" 아저씨 , 여기가 어디예요? 여기 있는 사람은 누구예요? 오늘 대변은 보셨어요? 손 한번 들어 보세요"


병원에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 저 간호사는 별걸 다 물어보네' 하겠지만 간경화나 간암 환자들에게는 일상이 된 질문이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간에서 정상적인 해독 작용이 이뤄지고, 몸의 노폐물이 몸 밖으로 배출된다. 하지만 간경화처럼 간 기능을 상실한 환자들은 몸 안에서 발생된 암모니아로 인해 간성 혼수가 오기도 했다.

간성 혼수상태가 되면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가끔은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간경화가 심할 땐 식도 파열로 피를 토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 내가 근무했던 내과 병동은 간경화나 감암 환자가 유독 많았다. 병이 호전되어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하루는 어릴 때 옆 동네 살던 병태 아저씨가 입원을 하셨다. 초등학교 동창의 아버지였던 병태 아저씨는 내가 신입이었을 때만 해도 술병으로 하루 건너 입원하는 단골손님이었다.

' 아저씨 또 입원하셨어요? 그러게 술 좀 그만 드시지 일은 언제 하시려고 또 입원했어요?

농담 섞인 말을 하면 그저 머리만 긁적이면서 쑥스러워서인지

" 면목이 없다" 하고 씩~ 웃기만 하셨다.

그렇게 처음에는 술병으로만 알았던 것이 간경화로 진행되었고, 말쑥하던 아저씨 모습도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낯설게 변했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입퇴원이 반복되었고 1년 후 여름 아저씨가 입원했을 땐 이미 늦은 듯했다. 정신을 놓아 버린 듯 눈동자는 풀려있었고, 배는 복수로 만삭처럼 커져있었다. 온몸은 치자 물에 빠진 사람처럼 노랗게 변해버렸다. 검사 결과 그는 감암 말기였다. 70살 된 노모와 그의 부인, 아들 둘은 아저씨의 병을 알고 나서 병실 밖에서 숨죽여 울고 있었다.

"젊었을 땐 그렇게 속만 썩이더니.. 가는 것도 힘들게 간다. "

동우가 말했다.


동우는 어릴 때 밖으로만 다니던 아버지 때문에 할머니 댁에서 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은 느껴보지 못했다. 형과 할머니, 동우 그렇게 셋이 의지하며 부모님이 없는 어려운 시기를 시골에서 보냈다. 이제 가족이 모여 조금 살만해졌는데 시간은 점점 사라져 가는 듯했다.


그날 입원 후부터 아저씨는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헛소리만 했다.

한 달이 지났을까? 이제는 두 아들을 보고도 누군지 알지 못했다. 복수는 더 심해졌고, 2리터씩 복수를 빼도 소용이 없었다. 금세 복수가 차올랐다. 숨쉬기 조차 힘들었던 그는 결국 며칠 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영안실로 내려가는 동창 녀석의 큰 눈에 원망과 슬픔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몇 년이 지나 버스 승강장에서 우연히 동우를 만났다. 추석이라 아버지 산소에 갔다 오는 길이란다.

" 산소 갔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술이 뭐가 그리 좋아 우리 먼저 두고 갔냐고. 그렇게 마지막엔 후회하고 또 미안해할 거면서.. 그래도 산소에도 술 드시고 싶을 거 같아 부어 드리고 왔어. "


우리는 짧은 대화 후 씁쓸한 웃음을 짓고 헤어졌다.


그 후로도 일하다 술을 좋아하는 환자들을 볼 때면 아빠를 기다리던 동우의 큰 눈동자, 영안실로 내려가며 뚝뚝 떨어지던 눈물이 불현듯 떠 올랐다. 이전엔 그냥 모두 똑같은 환자였지만 술병으로 오는 또 다른 병태 아저씨를 보면 이렇게 말했다.

" 지금은 간경화지만 나중에 후회할 거예요. 술 끊으시고 예쁜 자식들 오래오래 보셔야죠."


가끔씩 우리는 그 끝을 모르고 단지 지금의 달콤함에 젖어 살 때가 있다.

술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또 다른 병태 아저씨를 만나면 기꺼이 잔소리꾼이 될 것이다.

가정에선 멋진 가장, 다정한 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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