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 시즌이 되면 미루고 미루던 방학숙제하듯 12월이 며칠 남지 않아서야 정신없이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1년은 12개월이었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뒷전인 게 건강이었을까?
“ 나는 내시경이 무서워서 계속 미루다 지금 왔어요.”
“ 매번 바쁘다 보니 미루게 되네요.”
“ 1년은 12개월인데 왜 다들 지금 오셔요. 다음엔 꼭 일찍 건강 검진하세요. 건강은 미리미리 챙기는 거잖아요.”
이렇게 이야기해주면
하면 다들 부끄럽다는 듯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다음 해에도 그 사람들은 대부분 1년 중 마지막 며칠을 남겨두고 서야 병원에 왔다.
그중 그녀도 아이를 낳은 지 100일이 안되어 아이 돌보느라 건강검진이 미뤄졌다고 했다.
내시경실로 차분히 들어왔던 그녀는 평소에 속 쓰림이 조금 있다고 했다.
내시경이 식도를 지나 위로 들어서자마자
의사 선생님과 함께 있었던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눈만 바라봤다.
모양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불규칙하고 혈관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고약하게 꽈리를 틀고 있었다. 조직 검사를 위해 포셉의 입을 벌려 덩어리를 무는 순간 과장되게 확대된 덩어리에서 무섭게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100일 된 아이도 있다는데. 암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당시 3살 5살 두 아이를 키울 때라 2~3분 동안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해졌다.
“ 조직 검사를 했어요. 위에 약간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요. 혹시 평소에 불편한 게 없었나요? 3일에서 5일 사이 조직 검사가 나오니 그때 다시 확인해 봅시다.”
의사 선생님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는 주며 설명했다.
그녀는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며
“ 그냥 속만 조금 쓰렸어요.”
담담하게 말했다.
사진으로만 봐도 모양이 썩 좋지 않았다.
제발 아니길 선배와 나는 기도했다. 아마 그녀도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결과지를 봐야 할 사람이라 몇 번을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했다.
3일 되었을 때 검사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그녀의 결과는 위암이었다.
“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보호자랑 함께 병원으로 오시겠어요?”
그녀는 전화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병원에 온 그녀는 처음 내시경을 받으러 온 날처럼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진료실에서는 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여기는 작은 병원이라 수술하기 힘드니 큰 병원으로 가시라는 의례적인 말이 이어졌다. 그녀는 큰 병원에 가겠다고 했고 서류를 원했다.
서류가 정리되는 동안 그녀는 친정 엄마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있었다.
2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아이는 누구에게 맡겨 두고 오셨나요?”
“ 어린이 집이요.”
“ 너무 놀라셨죠. 아직 크기가 크지 않다고 하니 큰 병원에 가셔서 치료 잘 받으세요.
아이가 있으니 꼭 치료받으셔야지요. “
그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실 검사 오기 전에도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이 아이 전에 저는 임신을 했었는데 8개월이 다 되어 죽은 아이를 낳았어요.
난 그것도 몰랐어요. 엄만데요.
그 충격으로 1년 정도 제대로 밥을 먹지 않았어요
다시 임신하고도요. 그래서 나 벌 받았아서 그럴 거예요. “
맘속에 항상 돌덩이처럼 안고 있었던 짐을 토해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자기가 암이 걸린 게 당연하다는 듯 자책하며 울먹였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암이라는 선고를 받게 되면 대부분 오진일 거야, 아닐 거야 하며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할 텐데.
암에 걸릴 줄 알았다니.
그 말도 충격이었지만 엄마가 되어 보니 뱃속에서 다 키운 아이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식음을 전패할 정도로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온 아이가 있었지만 그것 또한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출산 후에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고 했다. 단지 스트레스였거니 했지만 그 죄책감과 스트레스가 자신의 몸에 암을 만들어 버렸다.
엄마는 그랬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다치거나 잘 못 되면 다 나의 탓이 되고 마는 유일한 사람.
그게 보통의 엄마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또 다른 자신의 둘째를 생각하며 삶의 의미를 찾았으면 했다.
서류와 검사 영상 CD를 받아 들고 나서는 두 모녀의 뒷 모습이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찼다.
한 동안 모니터의 화면이 정지되어 나를 괴롭혔다.
살아가면서 도무지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도 한 번씩 우리의 삶을 찾아올 때가 있다.
100일 된 어린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내가 암에 진단받는다면?
너무 무거운 일이라 그 충격이 가늠이 안된다.
아마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일 것 같다. 하지만 나를 생각하기 전에 엄마니까 아이를 먼저 걱정하고 있겠지.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느라 우리는 많은 순간을 포기하고 ‘다음에‘라는 말을 쉽게 하며 살아간다. 그녀의 뱃속 아이가 한순간 죽은 채 세상 밖으로 나왔듯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순간만큼은 언제일지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 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그녀가 절망의 끈을 잡지 않고 둘째의 엄마이니까 절망이 아닌 삶의 의지와 희망이라는 끈을 다시 잡았기를.... 너무 큰 충격으로 자신의 삶마저 잊고 온전한 삶을 또다시 미루지 않았으면 했다.
그녀는 검사 결과를 들은 날 이후엔 병원을 찾지는 않았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병을 극복하고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