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오늘의 삶을 사는 것

by 단단한 뇨뇨

오늘 하루 삶이 소중하다는 것.

누구에게 내가 의미 있는 존재였을 때 내 삶이 소중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15년 전쯤 입원했던 시현 아저씨는 아직도 가끔씩 생각이 난다.

아저씨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누구의 말로는 예전에 유도를 했었다고도 하고, 조직에 몸담았다고도 했다.

땅땅한 몸에 깍두기처럼 짧게 자른 머리, 큰 주먹, 날카로운 눈이 그럴 수도 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가 어쨌든 그 당시엔 그냥 몸이 아픈 환자일 뿐이었다.


술을 많이 먹어서 간경화가 심했다.

입원하면 항상 술 냄새가 가득했고, 매서운 눈이 처음 보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아저씨는 병원에 와서도 몰래 술을 먹기도 했다. 입원 전에 먹은 술이 안 깨서 그렇다고 했지만 몇 날 며칠 술 냄새가 병실을 가득 채웠다. 술에 찌들어 음식이라고는 며칠 동안 먹지 않았고, 간호사들이 주는 약도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탁자에 쌓일 정도였다.

라운딩( 병실 순회)을 가면 히터 바람으로 데워진 다른 병실과 달리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시트 위에 이불도 덮지 않고 창문도 열어둔 체 아저씨는 자고 있었다.

가끔 나이트 근무 때 병실을 가보면 얼어 죽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방이 싸늘했다.

1월의 찬 바람이 병실에 가득했다.

몰래 창문을 닫고 이불을 덮어 주고 병실을 나왔다.

다음 날 낮이 되어서야 아저씨는 술에서 깨어났다.

“ 그러다 얼어 죽어요!!! 밥도 안 먹고, 약도 안 먹고 , 말도 안 들어!!”

나에게 폭풍 잔소리를 듣고 나면 머쓱해했다.


가끔 그의 누나와 엄마가 다녀갔다. 시내 근처에서 작은 식당을 한다고 했다.

두 분 다 말은 크게 없었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이 가득했다.

누나가 왔다 가면 누나가 해준 음식은 손도 데지 않고 간호사들에게 먹으라고 챙겨줬다.

자신은 밥을 먹지 않아도 간호 사실에 와서 끼니때마다

“ 밥은 먹었어요?” 하면서 밥을 챙겨주거나 먹을 것을 해다 날랐다. 어쩌면 간호사들의 식사를 챙기는 것이 하루의 낙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1년 이상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아저씨는 살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어떻게 하면 빨리 죽을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 같았다. 병실 라운딩을 가면 가끔 속마음의 이야기를 간간히 했었다.

“잘 나가던 사업도 망했고, 좋아했던 사람도 이제 떠났지.

하루하루 먹고 살 길도 막막해. 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

매일 술이었다. 정신을 차리면 다시 힘든 하루가 생각나고 그냥 생각하지 않기 위해 술만 먹다 너무 심하면 또 입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잔소리 쟁이도 되었다가 혹시나 나쁜 결심이라도 하지 않을까. 가끔은 아저씨가 걱정되었다.


찬 방에서 웅크려 자는 아저씨를 보면 낮에 본 큰 덩치와는 달리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사는 아이의 뒷모습이 있었다. 창문을 닫아주고 이불을 덮어 주는 것 이외에는 해 줄게 없었다.

낮에 정신이 들면

“ 밥이랑 약 챙겨 먹어야죠!!”

잔소리를 해주는 것.

저녁에 정신이 돌아오면 고민을 들어주는 것.

많은 것을 해주진 못했지만 아저씨는 참 고마워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살아온 것을 돌아보면 굴러들어 온 돌처럼 참 못난 삶이었어.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이 다 잃은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자는 40 이전의 삶은 불완전한 거래요. 40 이후 진짜 삶을 사는 거라잖아요.

이제 반밖에 안 왔는데요. 뭘.

술만 먹지 말고, 따뜻한 밥 한 숟가락 먹고, 허기가 채워지면 또 조금은 하고 싶은 게 생기더라구요"

“ 병원에 있는 동안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밥을 챙겨주고, 잔소리를 해주는 사람은 한 간호사뿐이네. 고마워”

머쓱하게 웃으며 밥을 한 숟가락 뜨곤 했다.


병원을 나오고 아저씨는 보지 못했지만 굴러 들어온 돌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저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삶의 끈을 놓고자 했던 아저씨의 삶이 따뜻한 밥, 따뜻한 이불, 누군가 자신의 안부를 물어줄 사람과 일로 하루가 채워졌을까?

몸이 아플 땐 약이나 치료 외에도 타인의 관심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나의 안부를 매일 물어주고, 나를 응원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래도 일어날 힘이 생긴다고 나는 믿는다.


허기진 마음에 온기를 불어 줄 수 있는 사람.

나는 간호사를 그만뒀지만 병원이 아닌 곳에서 나의 역할이 있다고 믿으며 시현 아저씨도 어디선가 자신의 삶을 의미 있는 하루로 채워가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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