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하게 죽을 권리

by 단단한 뇨뇨


환자들을 간호하다 보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수 많은 환자들을 봐 왔지만 정답처럼 닮고 싶은 마무리는 없었다.

우리에게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다가오고, 존엄하게 죽고자 하는 소망은 좀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했지만 대분의 삶이 준비 없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잘 죽는 것에 대한 논의 , 어떤 죽음이 잘 마무리하는 것인지는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내고 말하지 않는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생명은 연장되었지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축복일까? 아니면 불행의 씨앗이 되었을까?

나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1년 전부터 집에서 의식을 잃어 3번이나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셨다. 그때마다 의사는 다급하게 연명치료를 물었고,

가족들은 당황하고 급한 마음에

“ 환자가 힘들지 않게 해 주세요. 치료해주세요."

적극적으로 치료를 원했다. 90이 넘은 할머니는 기도 삽관을 하고,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면 형광등의 차가운 불빛과 중환자실의 천장이 보였다. 옆을 돌아보면 생을 마감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기도 삽관으로 말을 할 수 없었고, 양팔은 억제 대에 묶여 있었다. 가슴엔 심전도 기계의 선이, 팔에는 수액 주사가, 손가락엔 산소 모니터링 기계가 수갑처럼 할머니의 몸에 채워졌다.

아무리 소리 질러도 기관 삽관을 하고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 이외엔 가족들을 볼 수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눈물만 주르륵 흘리고 소리를 질렀다. 의사는 정신이 돌아오면 더 힘드니 수면 상태가 나을 수 있다고 하며 주사를 처방했다. 그리고는 할머니는 또 며칠 정신없이 잠에 빠져 들었다.


상태가 호전되고 인공호흡기를 뺐다.

그래도 마지막은 집에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할머니의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차가운 병실 침대에서 생을 마무리하셨다.

지금도 문득문득 할머니를 마지막까지 연명 치료를 한 건 어쩌면 남은이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욕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예전에 수년간 자신의 남편을 간호하던 한 할머니를 만났다.

몇 년을 간호하다 보니 많이 지쳐있었다.

간호사실 옆에 전자랜지에 국을 데우던 할머니는 한숨 쉬며 이야기했다.

“아휴. 젊었을 때 그렇게 고생시키더니. 죽을 때까지 이 고생을 시킨다. 쉽게 죽지도 않고. 주사도 산소도 이제 달지 말아라 "

얼마나 힘드시면 부인이 저런 이야기까지 할까?

내가 할머니의 삶을 다 알지 못하기에 공감하지 못했다.

수년간 간호해도 병이 낫지도, 그렇다고 쉽게 죽지도 못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었다.

결국엔 할아버지는 입원 후에도 몇 달을 더 살다 돌아가셨고 남은 것은 할머니에겐 빚과 고통뿐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병원에서의 마지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갑작스러운 응급 상황이나 병의 진단을 받고 대부분 열심히 살아왔듯 죽기 전까지 열심히 치료받다 생을 마감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이 끝까지 연명치료를 하다 나중엔 서로 지칠 때로 지쳐 서로에게 짐이 되어버리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최근엔 가족들이 대가족에서 핵가족화되어가고 1인 가구가 많아졌다. 가족의 연결 고리 또한 느슨해지면서 대부분 함께 사는 배우자나, 가까이 있는 자식이 보호자가 되어 간병한다. 간호를 맡는 사람에게 큰 부담이 되어 버렸다. 끝없는 간호에 지쳐 두 손을 들고나면 치매나 노환 환자의 경우 대부분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전전하다 삶을 마무리한다.


말기 암 환자의 경우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적극적인 치료를 할 것인가 아니면 통증 조절과 마지막 삶을 마무리하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갈 것인지 결정된다. 몸의 이상 신호를 어느 날 감지하고 병원을 찾은 순간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졸지에 시한부 삶을 산다는 것은 날벼락같은 일일까? 아니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일까? 그래도 말기 암 환자의 경우 대부분 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있으면 만나기, 해야 할 일 마무리하기, 보호자들이 환자와 함께 있으며 마지막 순간을 정리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면

(맥박이 느려지고, 혈압이 떨어지고, 의식이 없어지는……. )

다인실에 있던 환자들도 1인실로 옮겨진다. 그들만의 공간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며 마지막을 함께 보내게 된다.

태어난 것은 나의 의지로 할 수 없었지만 죽음 앞에서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의 기간만 연장시키는 의미 없는 치료가 환자와 가족들에게 결국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수없이 많이 봐왔다. 사전에 유언장을 작성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급작스러운 사고나 상태 변화로 병원을 찾으면 연명치료 거부를 선택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의료진은 가족들에게 결정권을 넘긴다.


“ 환자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증상 악화시 적극적인 치료 (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은 하실 건가요? 가족들과 상의해 보시고 하지 않는다면 DNR 동의서에 사인 해주세요.”

서류를 받고 보호자들은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한다. 생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의사를 밝힌 사람이더라도 동의서에 자식들이 사인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아무런 논의 없이 부모의 마지막을 자식들이 결정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극적인 연명 치료를 한다.

‘부모님이 만약 내가 아팠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를 보내진 않았을 거야.’

‘나의 결정이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할 거야’

수많은 생각과 죄책감으로 고민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죽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매번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말기 환자 또는 19세 이상 성인 본인 스스로 연명의료에 대해 의사 결정할 수 있는 경우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이 회복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임종 과정의 기간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에 대한 의향을 작성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를 말하고 점점 고령화되는 시점에서 모든 사람들이 잘 사는 것과 동시에 잘 죽는 것에 대해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

사전 연명 치료 외에도 우리는 어떤 곳에서 생을 마감할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고령화될수록 우리는 각종 질병에 노출되고 이제는 전통적으로 가족들이 마지막을 간호했던 예전과는 달리 병원, 요양원이 그 마지막 장소로 가족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마지막만큼은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다. 많은 환자들이 상태가 조금 호전되면 집으로 가고 싶어 했다.


얼마 전 한 신문 기사에서 미국의 ‘빌리지 투 빌리지’란 마을 공동체에 대한 기사를 봤다. 노인들을 위한 공동체였다. 실버타운 같은 곳이 있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고 우리나라 노인들이 그러하듯 외국의 노인들도 경제적인 면을 떠나 자기 집에서 여생을 지내고 싶어 한다. 이미 가족 돌봄의 동기나 의욕이 갈수록 옅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빌리지 투 빌리지라는 은퇴마을 공동체는 병원이 아닌 평생의 삶의 터전에서 생을 마무리하고 싶은 그들의 바람이 담긴 곳이었다.


마지막이 차가운 병원의 기계음과 각종 선에 구속된 삶이 아닌 내가 살던 곳에서 편히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빌리지 투 빌리지가 꿈이 아닌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적극적인 치료를 하며 나을 수 있다는 희망만 갖고 의미 없이 생명을 연장시키는 삶이 내 마지막은 아니었으면 한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다 꿈처럼 잠자듯 삶을 마무리하는 것. 나의 할머니가 그랬고, 대부분의 환자들이 꿈꿨던 삶의 마지막 순간처럼 우리 삶 속에서도 이제는 잘 사는 것과 동시 잘 죽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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