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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한 뇨뇨 Oct 06. 2021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신규 간호사 시절 외과 병동에서 근무했다.

외과가 메인이긴 했지만 시골 병원이었던 터라 모든 과의 환자들이 입원했다. 일명 '잡과 병동'이었다. 간호사라는 일을 시작했지만 나는 숙기 없고 뭐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

그중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었다면 단연코 주사 놓는 일이었다. 일도 익숙하지 않았고 주사 놓는 감각은 더 둔했다.


환자들이 신규 간호사를 피하는 3월이었다.  신규 직원들이 입사하는 달이라  운이 좋지 않으면(? ) 매번 신규 간호사에게 주사를 맞아야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환자가 있다면 50대 중년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한 여자였다. 그녀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온 몸이 붕대로 감겨 있었다.  신규인 내가 주사를 놓을 때도 한마디 말없이 참아줬던 것 같다.

그녀의 히스토리는( 병력) 술 먹은 동거남이 집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여유가 있었다면 전문 화상 병원으로 갔을 테지만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그녀는 시골 한 종합 병원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중이었다.


몸을 감싸고 있어야 할 피부의 대부분이 사라진 터라 그녀는 언제든지 화상으로 인한 쇼크에 빠질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드레싱 카의 덜컥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이미 그녀는 몸서리쳤다. 외과 의사는 드레싱을 공들여 진행했다 몸을 감싸고 있는 커다란 거즈를 벗기고 소독솜으로 이전의 약을 꼼꼼히 닦아냈다. 하얀색 약을 새빨간 몸에 덕지덕지 바른 후 다시 커다란 거즈로 감쌌다. 두 명의 의료진이 30분 이상을 머리를 맞대고 땀을 흘리고 나서야 드레싱 마무리됐다.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30분 전에 진통제를 맞아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화상이 심해  주사 놓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화상이 없는 손등, 손가락, 발가락. 주사를 놓더라도  순환이 안  금세 붓기 시작했다. 주사를 놓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20~30분씩 혈관을 찾기도 했고, 일이 많은 날은 퇴근하기 전에 마음 편이 앉아 혈관을 찾는 것이 더 나았다.

결국엔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어 선배 간호사에게 굽신거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게 태반이었지만 주사를 놓기 위해 오랜 시간 그 환자와 함께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불을 지른 그 남자는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술김에 화가 나서 불을 질렀지만 술을 깨고 많이 후회했어. 미안해”

그 남자는 연신 반복해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매일의 치료 순간이 피부를 벗겨내는 큰 고통이었고, 그녀는 진통제를 맞고도 잦아들지 않는 통증으로  힘들어했다. 두 달 이상 치료받았지만 온 몸은 화상으로 붉은 상처가 남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처음엔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순간의 잘 못된 생각이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되었다. 세상에 함께 정을 나누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그 남자가 유일했을 텐데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원망이었을까? 미움이었을까?


가정 폭력으로 여자들이 입원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술김에 폭력을 저지르고  사과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으마.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모든 일을 덮으려고 했다. 여자들은 그 말을 믿었다. 아니 어쩌면 믿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긴 했지만 좋아했고, 또 사랑했으니까 믿고 싶었을 것이다.

잘못된 판단으로 평생 안고 가야 할 그날의 상처가 20년이 넘은 30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 그녀는 지워졌을까? 화상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여전히 살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살면서 순간의 욱하는 감정으로 했던 행동이 상대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곤 한다. 화를 내고 , 사과하고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믿지만 결코 한번 생긴 상처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조금만 상대를 더 생각했다면 엄청난 몸과 마음의 상처는 입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때의 환자가 생각날 만큼 그 상처는 선명했다. 그녀도 상처를 볼 때마다 그날의 악몽이 선명하게 떠오르진 않을까?


그 당시 나는 보이지 않는 혈관을 찾아 30분 이상을 끙끙거리며 그녀의 몸을 살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랜 시간 끝에 작은 혈관에 수액을 공급하고, 진통제를 놓고 나면 그녀가 끔찍한 시간을 버틸 수 있게 간호사로서 작은 내 몫을 해냈다는 안도감을 받았던것 같다. 지금 병원을 나와 다른 일들을 하고 있지만 간호사로 근무하며 만난 사람들을 통해 조금은 사람의 마음을 보는 눈을 갖게되었다.

오늘을 살면서 누군가에겐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실낱 같은 혈관을 찾아 주사를 놓아주던 그 시절의 나처럼 작은 희망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상처 받은 사람도 누군가에겐 소중하고 지금의 나로 살아갈 충분한 자격은 있으니까.


나는 지금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하지 않았나?

나의 처음 다짐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만난 많은 환자들을 돌아보며 내 삶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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