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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한 뇨뇨 Jan 30. 2022

갑작스러운 죽음이 주는 후회의 순간들

지난해 가장 친한 친구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가족들과 남은 아버지를 챙기면서 그래도 잘 지낸다 생각했다. 오늘 새벽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으로 함께 책 모임을 하던 중 친구는

" 엄마가 봄에 심은 들깨를 가을에 수확하고 들기름을 짜면서 엄마에게  사랑한다 말할 걸, 고마웠다 말할걸, 하지 못해 너무 후회된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 동안 함께 있던 분들이 눈물을 흘리고 마음이 짠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 듯하다가도 불현듯 그 순간이 떠오를 때가 있다.

엄마가 남긴 봄의  부지런함의 흔적들이  들기름의 고소한 향만큼의 시간 동안 내 친구는 울컥하겠지. 아껴두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했던 짧은 순간에 더 잘해 주지 못한 후회로 눈물 흘린 친구를 보면서 병원에서 삶을 마무리했던 환자들의 시간들을 회상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과 갑작스럽게 맞이하는 죽음은 어떻게 다를까?

오랫동안 병원에 근무했던 나에게도 죽음의 순간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매번 찾아오는 환자들의 죽음이 익숙할 만도 하고 무미건조한 사람이 될 만도 했지만 환자의 죽음은 일의 한 부분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의 한 순간을 함께 하고 내가 알아가고 떠나보내는 고통스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그날은 내가 4일의 오프 (쉬는 날)를 보내고 들어오는 밤 근무 날이었다.

50명이 넘는 환자의 상태를 인수인계받는 시간  또한 지루하리 만큼 잠이 쏟아졌다.

" 오늘 입원한 환자 00 님은 오래전부터 Back pain( 허리 통증)으로 치료받던 분인데 며칠 전부터 숨이 많이 차 정형외과 진료 후 내과로 입원하셨어요"


90이 넘는 노인에게 허리 통증은 다반사였고, 숨이 차다고 해서 뭐 그리 대수롭지도 않은 증상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검사 결과 폐에 물이 차있다고 했고 심장도 좀 커진 상태였다.

 인수인계가 끝나고 병실에 갔을 때 할머니는 가슴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옆에는 할머니를 꼭 빼다 박은 듯한 딸이 퀭한 눈으로 할머니를 지키고 보호자 침대에 누워있었다.

" 할머니, 어디가 불편하세요?"

" 숨이 차 "

눕지도, 그렇다고 앉지도 못하고 물에 젖은 이불처럼  할머니는 힘겹게 침대 식탁을 의지하고 엎드려 있었다. 코에 산소 줄을 꼽아 조금이라도 편하게 쉬시라 하고 상태를 보고 나왔다. 내과에서 할머니 같은 사람들은 흔하게 있었다. 환자 상태를 보고도 특별히 나쁘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밤 근무는 졸음과의 싸움을 이겨가며 환자 상태를 기록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서류적인 일이 끝나면 반쯤 감기는 눈을 하고 병실을 일일이 다니며 환자를 살폈다.  

통증 때문에 힘든 환자는 없는지, 수액은 잘 들어가고 있는지, 환자의 컨디션은 괜찮은지..

사이드일을 올려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환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바이탈을 체크하고 병실의 문을 살며시 열고 닫고를 수차례 반복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힘드신지 환자 침대의 식판 위에 베개를 두고 엎드려 주무시고 있었다.

" 좀 전에도 허리도 아프다, 숨도 차다 하고 저렇게 주무시네요"

따님은 인기척에 놀라 일어나 침대에 기대어 할머니 곁을 지키셨다.


3시간이 지났을까?

일이 정리되고 잠깐 책상에 엎드려 있을 때 후배 간호사가 소리쳤다.

" 선생님, 할머니가 숨을 쉬지 않아요"

날벼락같은 소리였고, 달려갔을 땐 할머니는 처음 그 상태로 숨이 멎어 있었다.


서둘러 응급실 당직 의사를 콜했다.

할머니의 얼굴은 이미 검게 변하고 손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딱딱하고 힘없이 굳어 있는 가슴을 수없이 내리눌렀다.

병실로 달려온 의사는 매정하게도

" 이미 숨진 지 오래되어 심폐소생술은 의미 없습니다.

5시 12분 00님 사망하셨습니다"


건조하고 사무적인 투의 사망 진단만 내리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덤덤하게 받아들인 따님과 달리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입원한 지 24시간도 안된 환자를 떠나보낸다는 것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심장이 멎었으면 심폐소생술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가슴 압박을 했다.


" 그래도 뭐라도 해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기도삽관이나 약이라도 써 주세요"

울면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는 나에게

" 이미 사망한 지 오래돼서 사후 강직이 심해요. 입도 벌어지지 않고 몸이 다 굳었는데. 이 상태에선 의미 없습니다'

당직의는 차가운 말을 남기고는 매정하게 응급실 향했다.


'DNR(상태가 안 좋아지더라도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이라도 받았더라면,

주치의가 환자 상태에 대해 악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더라면..'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맡은 환자를 바로 보낸다는 것이 그 당시엔 너무 힘들었다. 옷을 갈아입히고, 몸을 정리하고, 손에 꼽힌 바늘을 빼주고, 산소와 심전도 모니터를 제거하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환자와 하나씩 이별하는 순간이었다.


침대 주변을 정리하고 환자의 마지막을 기록했다. 라운딩 시 환자 상태,  주치의 콜 시간, 심폐소생술 시작, 응급의사 도착 시간, 사망 진단, 영안실 내려감..

종이 한 장에 마무리되어 버린 환자의 입원 시 상태, 데이, 이브닝, 나이트, 17시간 동안의 기록이 전부였다.

딸은 눈물 한 방울이 다였고, 가족들에게 전화한 후 서둘러 이 상황을 마무리하고 짐을 챙겨 영안실이 있는 지하로 사라져 갔다.


' 좀 더 환자 상태를 자주 볼걸.'

'가서 환자에게 말이라도 걸어 볼걸'

'바이탈이라도 더 자주 체크해 볼걸'


나는 허무하게 한 사람을 보내고 몇 날 며칠을 후회하고 또 힘들어했다.

 의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어쩌면 모든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고 믿고, 환자를 살리지 못했을 때는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다 낫게 해서 보내고 싶은 내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긴 병을 앓거나 말기암 환자들의 경우에는 항상 '나의 죽음'을 준비한다. 그들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언제든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다. 하지만 그날처럼 환하게 웃고, 숨을 쉬고 곁을 지키던 할머니가 누구는 잠을 자는 짧은 시간 동안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 버렸을 때의 허망함 겪어 보지 못한 사람알지 못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촛불처럼 다 타 없어지는 것이 머리로 그려지는 '준비된 죽음'에서는 환자의 소변이 줄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맥박과, 혈압이 점점 0을 향해 갈 때 살리고자 했던 나의 욕심도 조금씩 조금씩 내려놓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예견되지 않는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가 아무리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잊어보려고 해도 긴 시간 나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그 시간들을 쌓아 올렸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족이 아닌 나에게도 상처가 되어 지워지지 않고 흔적으로 남았다.


우리는 모든 순간을 살면서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르는 삶을 살아간다. 오늘 아침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래전 기억을 복기하게 되었다.  병원을 나온 시간이 오래되어 아득하지만 그 죽음의 순간들만큼은 더 선명해지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한 할머니의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며 진부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며 나의 사람들에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지 다짐한다.


지금 고맙다고 이야기할 것!

지금 사한다고 이야기할 것!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 할 것!


'그때'  잘 할걸이 아닌 '지금' 잘하기

'할 걸'의 후회가 아닌 오늘 하루 결심으로 내 하루를 채워 가고 싶다.


생사가 오가는 병원을 출근하며 병원 입구에서 나는 주문처럼  외치곤 했다.

' 오늘 내 듀티는 무사히'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오늘 주어진 시간을 최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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