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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y 03. 2024

걱정되고 두려워도 일단 해 보는 거지 뭐

운동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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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 보 넘게 걷고 내처 헬스장도 다녀왔다. 새로 이사한 곳은 볕이 환하게 드는 탁 트인 공간이었다. 층고도 높아져 시원시원한 느낌. 멀리 산이 보이고 천변도 내려다보였다. 자전거를 타는데 절로 운동할 맛이 났다.


나는 대체 무엇을 걱정하고 두려워했던가.


헬스장이 이사를 간다 하니 몇몇 회원들은 대놓고 싫은 소리를 했다. 귀찮은 마음 이해한다. 짐도 다 옮겨야 하고 바뀐 장소와 룰에 또 적응해야 하니까. 나도 몇 번 그런 말을 듣다 보니 귀가 팔랑거렸다. 겨우 적응해서 그나마 좀 다니고 있는데 새로운 곳이라니! 불쑥 싫은 마음이 솟았다.


재등록, 하지 말까?


마침 기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때 헬스장에 붙은 공지가 눈에 들어왔다. 5월부터 가격이 오르니 기존 회원들은 미리미리 등록을 하라는 권유였다. 흠, 이런 홍보 논리에 깜박 속을 내가 아니...


...지 않았다.


6개월 등록을 마치고 영수증을 곱게 접어 지갑에 넣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등록 안 하면 운동 주 0회, 등록하면 그래도 최소 주 2-3회. 마음이 안 내키더라도 일단 머리가 하는 일을 좀 따라가 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게다가 지금 혈당 수치도 높으시잖아요? 그렇다. 이럴 때가 아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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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5월 1일부터 새로운 헬스장에 첫 발을 내디뎠다.  사람들이 뭔가 얼떨떨한 얼굴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운동 기구를 찾아 헤매는 사람도 있었고 엉뚱한 공간에 잘못 들어갔다 나오는 이도 보였다. 나도 내가 즐겨하던 기구를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익숙함을 벗어나는 일이 많이 불편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미있고 즐거웠다.


아! 저기에 있군!


기구를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에 우다다 달려가 세상 열심히 했다. (약간 쇼잉 운동, 쇼잉 독서에 강한 타입) 장소가 바뀌니 기분도 전환되고 왠지 더 열정적으로 하게 되더라는 것. 등 운동을 한 뒤에 창가에 붙어 서서 물을 마셨다.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벚꽃이 피더니 오늘은 진초록 잎들이 휘날리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채도와 명도가 낮아지고 흰빛에 가까워지며 소멸하는 계절이 올 테다. 이 모든 풍경을 공짜로 볼 수 있다니! 게다가 운동도 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로군.


기간이 끝나면 재등록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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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며 곰곰이 그런 생각을 했다.


모든 변화는 필연적으로 '낯섦'을 잉태하고 있다. 나는 이 '낯선 감정'을 '새로움'보다는 '불편함'으로 먼저 인식해 버리는 인간형이고. 이를 어떻게 하면 '불편'이 아닌 '새로움'과 '신기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음, 일단 노력해 보고 잘 안 되면... 또 노력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일단 그냥 한번 해 보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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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잊을까 봐 기록해 둔다.


엊그제 R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와서 전화를 했다. 너무 좋아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집중해 보았다고.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나도 내가 인상적으로 본 부분을 전했다.


바로 배우들의 딕션이었다. 박근형 배우님의 대사 중 흥얼거리듯 부르는 노래가 있었는데 '부엌에'라는 어절의 발음이 귀에 확 들어와 꽂혔다. 많은 이들이 [부어게]라고 발음하기 쉬운데 표준 발음은 엌의 종성 ㅋ이 그대로 연음되어 [부어케]가 된다. 박근형 배우님은 그 많은 대사들 하나하나를 전부, 정확하게 발음해 전달했다. 그게 참 인상적이었다. 한 사람이, 한 명의 배우가 대사 한 줄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기본에 충실할 것.


말은 쉬운데 실제로 지켜 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박근형 배우님, 신구 배우님 그리고 김학철, 조달환 배우님. 이분들의 연기 경력이 얼마나 긴가. 물론 햇수가 전부는 아니지만 이분들의 연기 합을 보면서 그리고 그 뜨거운 열정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이든 정성을 들인다는 게 그렇다. 진심일 때 그 정성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겠지.


R과 이런 대화를 나눌 때 정말 뭐랄까. 희열을 느낀다. 생각을 언어로 표현해 어떤 방식으로든 재정립해 보는 일은 참 중요한 듯하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늘 반겨 대화에 동참해 주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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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정성을 들여 보자. 일단 운동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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