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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04. 2024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세상


대학시절에 중국어를 조금 배웠다.

그때 중국어 교수님이 중국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말이 있는데 ‘꾸완씨’라고 했다.

김씨도 아니고, 이씨도 아니고 박씨도 아닌 꾸완씨이다.

우리말로는 ‘관계(關係)’이다.

중국 사람들은 관계가 좋으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도 하고 안 되는 일도 되게 하지만 관계가 안 좋으면 별의별 트집을 잡으며 될 일도 안 되게 한다는 것이었다.

비단 중국 사람들에게만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좋은 관계일 수도 있고 안 좋은 관계일 수도 있고 잘 아는 관계일 수도 있고 잘 모르는 관계일 수도 있다.

가끔 사건 사고 현장에서 상대방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듣는데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맞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전 세계 누구든지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단지 내가 잘 모르는 관계가 있을 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제주도 출신이라고 하면 대뜸 자신이 제주도 사람 중에서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을 아느냐고 묻는다.

제주도 인구가 근 50만 명이 되고 내가 제주도를 떠난 지 30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제주도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다리를 한 다리 두 다리 지나면 다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어느 동네의 누구라고 소개하면 그 동네에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데 그와는 어떤 관계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자기가 아는 형님이다, 동생이다, 자기 친척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 여겨지는 순간이다.

그러니 제주도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못된 짓을 하면 안 된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다리를 하나둘셋 건너면 전 세계 80억 명의 사람들이 다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인간관계의 다리를 하나만 건너면 된다.

나와 친구의 관계이다.

나와 그의 관계는 인간관계의 다리를 두 개 건넌다.

내 친구의 친구가 되는 관계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라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면 전 세계 80억 명의 사람이 다 나와 연결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내가 굳이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그 사람을 만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나와 무척 가깝게 여겨진다.

지구 끝에 있는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

그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나와 무척 관계가 깊은 사람이다.




중국의 오나라와 월나라는 서로 원수지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나루터에서 두 사람이 배를 탔는데 강 한가운데 이르러서 서로 인사를 하고 고향을 물어보니 한 사람은 오나라 사람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월나라 사람이라고 했다.

그 순간 그 배 안의 분위기가 썰렁해졌을 것이다.

원수 나라의 사람이니까 그 배에서 싸워서 죽여야 하는가?

서로 싸운다면 그 작은 배가 뒤집히고 둘 다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원수지간일지라도 같은 배에 탄 운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월동주(吳越同舟)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살아야 한다.

상대방을 죽이면 나도 죽을 수 있다.

원수지간이지만 서로를 살려야 한다.

못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잘 대해주어야 한다.

이처럼 좋은 관계, 나쁜 관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든지 그 사람에게 잘 대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

세상은 나 혼자 잘난 맛에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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