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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선생 Dec 07. 2020

"그냥 하기 싫어요."

지나친 사교육은 아이를 자포자기하게 한다.

과학전담을 할 때였다. 학기 초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학생 중 한 명의 태도가 좋지 않았다.

“◯◯야 여기 보자.”

잠깐 쳐다보던 아이는 금세 옆 친구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과학 수업의 특성상 규칙과 주의점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기에 나는 다시 한번 그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잠깐일 뿐, 그 아이는 다시 옆 친구와 킥킥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수업을 듣지 않았다.

자리를 옮겨보았다. 앞쪽에 빈자리가 있어 그 자리로 오게 했다. 주변에 친한 친구가 없어서인지, 선생님의 주의를 의식했는지 조용해졌다. 수업 마무리 시점에 실험관찰 교과서에 알게 된 점을 정리하고 있었다. 조용히 아이들은 머리를 짜내며 글과 그림으로 나름대로 표현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 아이를 보니 교과서에 연필조차 대고 있지 않았다. 뭐라고 쓸지 몰라서가 아니라 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를 불러서 이야기를 했다.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지 물었다.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교과서 앞쪽을 보니 새하얗다.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중에도 수업을 듣고 있지는 않았다. 여러 방법을 써보았지만 아이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는 딱 한 마디를 남겼다.

그냥요. 그냥 하기 싫어요.
     

다음 반 아이들이 과학실로 오고 있어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일단 아이를 교실로 보냈다. 다음 시간이 되어도 비슷한 태도였고 아이는 공부를 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평소 이야기를 나눠보면 아주 똘똘한 아이였지만 성적은 하위권이었다. 수행 평가지에도 전혀 답과 관련 없는 답을 조금 끄적였을 뿐이었다.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발달상 문제가 있어서 못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방법을 써보든 기다리든 할 텐데, ◯◯는 할 수 있음에도 본인이 하지 않는 것이었다. 심리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대화를 시도해보고 동기부여를 해보려 했지만 아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칭찬으로도 꾸중으로 소용없었다.

담임선생님에게 ◯◯에 대해 여쭤보았다. 담임선생님께서도 같은 문제로 상담을 여러 번 진행하셨지만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아이는 하면 굉장히 잘하는 능력 있는 아이였지만 하려는 시도도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얼마 뒤 담임선생님은 어머니께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도 같은 고민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야기하셨는데, 유치원 시기와 저학년 시기에 사교육을 너무 많이 시켜서 아이가 힘들어했는데 그 이후로 아무것도 안 하려 한다고 하셨다. 그때 심리적으로 아이가 큰 부담을 가졌나 보다. 아이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조기교육으로 아이는 배움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지쳤고 결국은 모든 것을 거부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에 의하면 저학년 시기부터 ‘근면성 대 열등감’의 시기가 시작된다. 아이는 어떤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면 근면성을 갖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주변 또래 집단에게 뒤쳐진다고 느끼고 자포자기해버리는 열등감을 갖게 된다. ◯◯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것을 하면서 성공 경험을 하지 못했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자괴감을 느끼며 포기해버렸다.

이 아이처럼 극단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것이 흔한 경우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의 흥미와 능력 범위 이상의 것을 부모 주도로 아이에게 하려고 할 때 역효과는 분명 있다.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에 비해 성과는 떨어진다. 어린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세상의 여러 가지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배우고 느껴야 하는데, 그 시간에 학원을 통해 의도적으로 가르치려 하니 아이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   

아이의 배움에 대한 자세로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배우려고 시도하는 것이 좋은 배움의 과정인데, 요즘 교육은 ‘이 시기에는 이래야 한다.’, ‘이걸 배우고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옆집 누가 벌써 배우고 있다.’ 하는 식의 생각에 의해 아이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그렇게 배움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동기가 없이 시작했기에 배움이 흥미롭지도 않고 힘들게만 느껴질 수 있다. 점점 배움을 멀리하는 아이들도 생긴다. ◯◯처럼 말이다.


◯◯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나 또한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의 지속적인 배움을 이끌어주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엄마 입장과 아이 입장은 다르다. 필요한 것을, 필요할 것 같은 것을 아이에게 떠먹여 주면 아이는 그것을 다 소화시키지 못한다. 영양가 풍부한 음식을 아이에게 먹여줘도 아이의 속도에 맞지 않으면 아이는 씹지 못하고 토하기도 한다. 내 아이의 속도에 맞게, 아이의 기호에 맞게 배울 거리를 제공하되 엄마의 욕심과 엄마의 속도가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배움의 주체는 아이이고
배움은 아이의 흥미와 재미에서 출발해야 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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